걷기

플라타나스

우두망찰 2005. 7. 7. 15:09

(이건 순전히 증거용^^)




2. 광장 - 아쉬움의 공간                                  



내가 처음 보았을 때

광장은

2월 추위가 녹아 가는 맑은 오후 나절이었지

햇빛은 아직 힘이 없었지만 투명했고

싸늘한 바람

머잖아 움틀 생명의 따뜻한 숨결 하나는 숨겨 놓고 있었었지

내겐 정신처럼 보였어



-中略 -



광장 지척 여기다 터 잡아 살며

지나는 사계 바라보길 십 수해

구름 흐르듯 많은 이들 몰려들고 흘러갔지만

늘 허전하고 허허로와 아쉬움 남았지만

이 촌놈 보기 이 광장

도시 속을 흐르는 강철의 강 같아


지글지글 끓어 넘친 7,8월 염천에는 찜질하여 시원했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 속 여름밤엔 장쾌하여 시원했고

소리 없이 퍼붓는 함박눈 속 겨울광장은 모든 사념 덮어 시원했다네

뉘라 이 사막같이 준엄한 정신의 향연장을 파괴할 것인가


이건 순전히 내 사사로운 취향과 감상의 소치이지만 말이야

사실 난 여기다 플라타너스를 심고 싶었었지

내 살이가 조금 피이고

내 아버지에도 부끄럽지 않을 고행의 수련이 끝나는 날

난 여기다 휴식의 플라타너스를 심고 싶었어


그래서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께 자랑하고 싶었어

왜 아니 가능하겠어

누가 한진  모르지만

튼튼하게 이미 아스팔트 깔려 있고

매일 보는 이 광장, 텅 비어 심심할 때가 많아

내 보긴 비워진 캔버스 같았거든


이 넘치는 양기 짝으로는

짙은 녹음 음기가 제격일 테니

실속과 실리의 플라타너스를 심은들 문제될 것 있으려구


더불어 자라기엔 질서가 필요하니

정방형 형태로, 열을 지어 연속해서

남의 탓, 도움 없이 마음껏 자라볼 수 있게

충분히 넓혀 공간 주고

돌봐 주듯 가지치길 잊지 않는다면 야

이 나무 강인하여 십 수 미터 쯤이사 소나기만으로도 단숨에 자라서는

거기부터 팔을 벌려 저네끼리 어우러져 장관을 이룰 테니


난 장관이 좋아

우리 아이들 튼튼히 자라듯 한 이 장관이 나는 좋아

하늘 온통 가리우는 짙은 녹음 싱그럼과

늠름하고 믿음직한 힘찬 열주들이 그러하고

광장 또한 그 넓이 그 품대로 시원하게 살아 있어

이 또한 그러하니

이제 남은 건 즐기는 일이었을 뿐


이 세상 모든 사람 일생에 한번쯤은 꼭 한 번 와 보고 싶어

꼭 한 번은 와 볼 테니

그들 위해 뒤쪽 나무 두 세줄 사이

노천 까페 길게 길게 이쁘게 한 줄 만들어도

뛰놀 공간 충분히 있을 테고

난 이 넓은 광장 앞마당 삼아

녹음 뒤덮인 아스팔트

그 건조하고 신비스런 상쾌한 조화 즐기면서

파도처럼 푸르쏴한 바람소리 즐기면서

어디선가 분명 들려 올 클라리넷 음색은 덤으로 즐기려했다네

가을엔

가을엔 뒹굴다 못해 푹푹 빠지게 낙엽들 쌓아두고

한 잔의 차를 놓아두고 혹은 인생을 음미하고 혹은 사랑 깊어질 테니

난 여기 앉아 노트북 피시로 일을 하고, 시란 걸 써도 부끄럽지 않았으리

이 나무들 두어 아름쯤 늠름하게 자랐을 때...


아, 이제 어디로 가나

이제껏 준비해 온 성숙한 정신들은 어디로 가나

세상은 이리 어지럽고 가릴 그늘 하나 없이 삭막해져 가는데

지척인 물가에다 친구들 불러 놓고 낙엽들 모아 쌓아

세상에도 자랑코픈 불놀이 기원제는 물 건너 갔음인가

정신은 사라지고

강인한 야성 같던 아스팔트 이미 벗겨져서

여인네 분단장 같은 유약을 바르지는 않는지

부권은 사라지고 성숙한 정신 사라져서 마침내

양육되어 물러 터져 오늘

짜잔하게 자라는 우리 아이들처럼 되지는 않는지

심히 염려스러웁지만


울안에 들어앉아 알 수 없어 답답하고

보지 못해 안타까웁다네






後記


98년 7월 어느 날 오랬만에 이 곳을 지나다 쓰다.

공사 중이었다.


이 땅에 이 넓이가 또 어디에 있으려는지?

남산에도 소나무들 울창하게 심으려는지?

지금 형편에 가당키나 한 처산지

모쪼록 지금 심는 이 소나무들 튼튼히 들 자라기를


재후기

(97년까지 한 십오년여 여의도광장 부근에서 일함.

98년 그 어려운 시기.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조경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할 말 없었고 가끔씩 꿈꾸든 플라타너스

푸른 수해의 바다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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