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남쪽바다-5 (~)

우두망찰 2005. 9. 16. 15:36
 

14.아침엔 심하게 안개가 끼었었다.

어제 날씨가 너무 푸근하여서인가? 나는 어젯밤의 그 미몽과도 같은 안개 속을 헤메이며 낚시를 하였다. 안개 낀 날은 날씨가 맑다는 상식적인 기대를 갖고서.

 


 

 

안개는 열 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걷히며 첫 햇살이 바다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빛이며 색깔이 어젯밤 꿈에 나타났던 그 해변 유적지의 푸른 대리석 길처럼 보였다. 오래 전 잠시 북 아프리카 근무 시에 보았던 실재한 로마유적의 모습이다.


오후부터는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다는, 파도가 점점 높아져 난 바다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려는 듯 거칠어지고 울부짖어, 나는 겸손히 그 바다의 뜻을 따라 뒤로 물러나 하염없이 생각만을 하였다. 

 


 

다음날.

내가 철수키로 예정한 날이다. 나는 내가 왔다간 자취들이 남지 않도록 깨끗이 뒷수습을 하고 나서 산 위로 올라가 처음으로 문명의 이기를 빼들어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배는 - 느리지만 듬직한 목선이 아닌 그 배는 속도만 빠른 FRP로 제작된 것이어서, 거친 파도로 접안은 엄두도 못 내보고 멀리서 빙빙 돌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사라져 갔다.


이제 비상식량을 점검 할 때인가?

나는 전화를 걸어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내가 속한 집단에도 연락을 취하고 싶었다. ‘여기는 이상 무. 이곳은 결코 가슴 저밀 드라마도 없고 가슴 벅찰 큰 고기도 없음. 그리고 인간이 그리운 염소가 몰래 숨어서 숨바꼭질하듯이 나를 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기바람.’


그러나 스스로의 지능으로 최선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이 기계의 무모한 노력으로 -잦은 기지국과의 교신으로 예상보다 빨리 소모된 배터리 문제로- 나는 대신 131서비스를 택했다. 그 목소리는 나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끊어질듯 이어지며 간간히 들리다가 이윽고는 바람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_____.


나는 할 일이 없어, 내 영혼을 꺼내어 하얗게 바래고 표백되어 지도록, 다시는 생각으로 물들지 않도록 바위에 널어 말리고 있었고 - 울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바다는 또 하릴없이 내 흔적의 부스러기가 아직 남아있기라도 한 듯, 다시 한번 점검하듯 차례차례 지우고. 확인하듯 다시 지우고. 그도 부족해 이윽고는 그 모든 것들 위로 장엄히 넘치며___. 한 점 남김없이 깨끗이, 티끌하나 남김없이 지워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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