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3월28일 생강나무-5, 6

우두망찰 2005. 9. 12. 10:48
 

5.


찌어찌 진학을 한 나는 드디어 성년이 된 기념인지,

아무리 못 된 학이시습지 라도 몸소 체득해야 비로소 산지식.

온통 새 세상에 빠져 개망나니 짓으로 정신을 못 차렸었는데.

이윽고 이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징집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휴학. 그리고 조용히 입대 전 몇 달을 시골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연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우물 안 개구리, 제멋에 취해 상대적으로

새로운 산업시대에 참여가 늦은 집안도 그때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막내인 나는 가족들 모두가 도회지로, 출가로 떠나버린 빈집에서

그 봄의 몇 달을 어머니와 단 둘이 참 참담하게 -외양상으로는 화려하게 보냈다. 


을은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되어가고 있었다.

우선은 집집마다 그득하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이 사라지니 그 특이한 씨족사회, 공동체 문화,

나름의 미풍양속은 화려한 봄볕 속에 속절없이 바래어가고.

나는 아무런 대책 없이 그저 바라만 보는 방관자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아침마다 하얗게 비질되어 정갈하던 그 마을길들이 어느새

보도 듣도 못한 온갖 야생 초화들로 초토화되어가는 걸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일견 신기하고 경이로운 눈초리로. 

그리고 그 텅 빈 마을에

얼마 전 가세(家勢)기운 일가 형이 石山개발업자에 넘긴 건너편 선산으로,

불한당 외지인들이 중장비를 몰고 진주군처럼 쳐들어오는 걸 - 어릴 적

그리도 교육을 받았건만 - 불한당소리 한번 못하고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그 조용하던 산골마을이 착암기 소음으로 시도 때도 없이 경기를

일으키고, 사대조 덕숭공 할아버지가 무덤을 박차고 일어나 노발대발

호통 치듯 한 다이너마이트 폭파음도 못난 자손 꾸중 듣듯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시 나는 아버지 삼년 빈소 방에 혼자 기거하고 있었는데

-마치 불세출 효자마냥.-  무얼 하나 끄적인답시고 철저한 저녁형

인간으로 살았다. 그래서

아침이면 어머니가 빈소 제상에 소찬 곁들여 상을 올리고 나가시면

느지막이 해가 중천에 이르러야 일어난 나는 혼백상자 뚜껑을 열고

아버님 그리 좋아하시던 절 -이배(二拜)를 하는 대신 닫고.

한줄기 향을 사르는 대신 이미 다 타 재만 남은 향로 뚜껑을 닫는 것으로

의식의 예를 다하고.

아버지 먼저 흠향하신 그 음식을 내려 혼자 아침 겸 점심으로 먹곤 했다. 


아, 지금도 생각난다. 그 사월아침 하얗게 빈 마당에 어른거리던

감나무 새순, 뭉툭한 그림자의 형언할 수 없는 외로움이.


아, 지금도 생각난다. 그 사월봄밤, 물먹인 어둠의 들판과 흙냄새.

터질 듯 통통 살찐 보리밭 녹색 융단의 처절한 슬픔이.

 

 



(내게 이런 여린 감성적 소양, 눈물, 우유부단, 연민, 소심 등의

일면이 있다면 그것은 그 시절 정서에 영향 받은바 크다. 물론

더 깊이는 일찍 슬하를 떠나 생긴 애정결핍, 정서불안에 뿌리를 두겠지만)



........................................................................

 

 

 

 

 

6.


음으로

또 다른 불한당, 나의 대처 친구들은 -내가 청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떼거지로 몰려와서는 며칠씩 그 빈소에서 나랑 죽치며

식음 전폐, 오로지 음주에만 몰두하다 돌아갔다.

그럴 듯 과장하여. 그럴 듯 가장하여. 시대의 울분, 적당한 자아도취,

적당한 자기 연민, 적당한 자기기만으로.


아무리 유붕이 자원방래했기로서니, 그리고 아무리 접빈객에 소홀함이

없어야 함을 유구한 역사적 전통, 생활신조로 알았기로서니

당시 이미 환갑을 넘기신 나이로, 당신 자신 손수 닭 잡고 소 잡는

(여기서 소 대신 돼지로, 돼지 대신 돼지다리로 고쳐야겠지만 ^^)

수고로움을 결코 마다 않으신 어머님 즐거움은 당연 어머니 몫.

혼자서 다 누리시도록 것도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이 세상 분 아니어 비록 위폐로나마 밤낮없이 우리의 그 작태를

지켜보고 계셨을 아버님에 대한 도리만큼은 결코 소홀하지 않았으니

때로 음주가 지나치면 가끔 그 영전(靈前)에 ‘禮는 樂으로 완성된다.’

공맹(孔孟)을 쫒아 가무 공연을 열어 그 영혼을 위로해 드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도 不世出 孝라 할지, 불세출 아니 불효라 할지.

세상이 정의하겠지만.... 내가 왜 그랬을까? 아니 우리는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그때서야 막 깨달은 뭘 읽는다는게 악덕이란

사실을 몸소 실천으로 증명해야한다는 갸륵한 사명감이었단 외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사실 나는 너무 일찍 홀로된 탓으로 너무 쓸잘데

없는 책을 많이 보았고, 너무 쓰잘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너무

쓰잘데없는 고민에 깊이 빠져있었다. -그러면 뭘 하나. 그래야 결국 小說.

대설大說 아닌 것을. 공부 아닌 것을. 무엇보다 사실 아닌 거짓/작위인 것을.)

그래 그 도가 지나쳐 가끔 환시 환청 환영 같은 것에 빠지기도 했는데

유유상종, 친구들 역시 비슷한 무리였다.

일테면 한 녀석이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 요강에다 오줌을 누며

‘일어나. 저 산 너머 저 태백준령 넘어

동해 푸른 파도 들판까지 밀려 왔나니

이제 일어나 우리 푸른 혁명을 해야 할 때.’

하여 일어나 보면 몽땅 보리밭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것 아니고야 어떻게 그 작태를 설명할 수 있으리.


쨌거나

그 중 한 두 녀석은 내가 군에를 간 이후에도 가끔씩 찾아와 아직도 있었을

그 아버지 빈소 방에서. -그것도 혼자. - 마치 제 어머니 대하듯 밥 달라

하여서는 가끔 향도 사르며. 며칠씩 빈둥거리다 돌아갔다는데. 어머님 말씀으로.


- 물론 그때마다 어머님이 -그 어머니의 시어머니, 그 시어머니의 시어머니

그 시어머니의 시어미들이 -그래봤자 결국 나으 할매들이- 남기신 그

온통 애제라, 통제라 따위 터무니없이 과장되고, 터무니없이 운율적이고,

터무니없이 천편일률적이어, 어쩌면 나른한 주술, 어쩌면 집단체면 같던

그래 아무데나 막 굴러다니던. 그래 엄니 당신자신만 이제 외로이 가끔

내어보시던. 그 두루마리 가사 집을 하나둘 곶감 빼먹듯 내다팔아 용돈

주신 것으로 내가 바꾼 서양귀신들 넋두리도 하나 둘 따라 사라졌지만.

그 서양귀신에 씌여 함부로 방자히 내갈긴 내 넋두리들도 함께 몽조리

사라졌지만. 아무려나. 항개도 나는 애통치 않다.

왜냐면, 어머니는 이미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란 사실을 몸소 실천하시며

믿어 의심치 않으셨으니 되었고. 녀석들 또한 그 어머님 말씀에 충실했을

것이라 믿으니 되었고. 나 또한 그 후로 녀석들 애지중지하는 것을 비슷한

방법으로 보상받을 기회가 충분히 있었으니 되었는데. 내가 굳이 애달플

이유가 어디 있는가? 암만.

세상은 늘 좋은 것이 좋은 것이고, 사람 또한 서로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하여거나, 그랬거나 말았거나, 기특도 하지 녀석들. 그 일로 하여 내 위상

또한 내가 원치 않았음에도 한껏 올라갔으니.

“어느 집 자손은 그 친구들까지 못다 한 자식 효를 대신하러 불원천리 오더라.” 



 



*

(어머님께도 그때가 무척 힘든 시기였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가내 사정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익숙지 않은 가장의 부재, 내보내 키운 막내자식의 막무가내

방황도 낮 설었을 것이고, 평생 근면함과 여문 손끝 탓에 덤으로 맡겨진 집안

대소사 일까지 무리하게 감당하시느라 당신자신의 무릎관절도 고장 나 잘

걷지도 못하실 때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어려움을 정면 돌파로 이기신 강단 있는 분이시기도 하다.

자신의 무릎에다 직접 쑥뜸을 놓아 지금의 첨단 의학으로도 완치가 어렵다는

그 관절염을 말끔히 자가 치료하신 것이다. 그래 지금도 그 흉터가 깊게 무릎에

남아 있지만 -자신의 살을 태우는 고통을 참으며 흘리시던 눈물이 지금도 기억난다.

여직 눈과 귀가 밝고, 허리가 꼿꼿하신 이유도 절제와 소식, 그 후로도 계속된

노동의 근면함과 무리함 없는 마음 씀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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