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3월28일 생강나무-1

우두망찰 2005. 9. 8. 16:21
 

1.


오후가 이은 시간 청계산을 올랐다.

시간으로는 평소대로 원터골에서 매봉을 올랐다

숨 한번 고르고 곧바로 내려와야 더 알맞았겠지만

운동량이 특별히 더 필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굳이 그 이수봉 코스를 택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평소 이십분이면 충분하던 그 길을

그날따라 대중교통을 이용해야지 하는 웬 기특한 생각에

두 시간이나 걸려 지례 지쳐 도착한 그 종점 마을은

이미 하산한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는데

은연중 그 번잡함, 음식냄새, 소음들을 피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 매번 쳐다보기만 하고 한번 가봐야지

생각으로만 하던 그 길을 가보자는 순간적인 생각에

난 곧바로 우회로를 따라 능선 길로 올라섰다.


은 날씨

햇볕은 벌써 따갑고 대기는 무척 건조해있었다.

옮기는 걸음마다 마른 먼지가 풀썩풀썩 일어나 아랫도리에 달라붙는다.

붐비진 않았지만 그 시간에도 하산 객들은 꾸준했고

때늦게 나처럼 오르는 이들도 간간이 있어 심심하거나 한적하지는 않았다.


등산로가 이외로 완만하다.

초입에 가끔 보이던 진달래는 중턱 이후로는 아직 꽃망울도 없고

생강나무 노란 꽃들만 온통 회색 바탕에 선명하니 도드라져 상큼하다.

흐르는 땀. 한 겹 티셔츠로 가볍게 차려입은 복장이 알맞다.

비가 와 땅이 촙촙한 날이면 꽤 괜찮겠는걸.

누구랑 드문드문 얘기하며 오르기도 괜찮겠고

혼자 쉬엄쉬엄 생각하며 오르기도 괜찮겠고.


소나무 군락도 제법 운치가 있다.

올곧게 쭉쭉 뻗은 심산 소나무 자태야 하랴만

그래도 온갖 공해로 찌든 도심서 지근거리인 이곳서

수피 붉은 적송이 그런대로 건강히 무리지어 자란다는 게 어딜까.


릿느릿.

오를수록 인적이 드물어야겠지만 중간 중간

사이 길도 많아 그를 이용하는 이들로 별로 그렇지도 않고,

풍경도 뭐 특별한 변화 없이 매 일반이다.


나보다 더 천천히 걷는 몇 팀을 앞지른다.

‘이 시간에 여자들끼리도 산에 오르네. 웬일?’

그러고 보니 오르는 이들 중엔 여자들이 더 많은 것도 같다.

아무려나. 그들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한가하고 나도 한가롭다.


시야가 점점 트인다.

그러나 둘러보아야 도시화된 근교의 그 무미한 회색 풍경들.

아직 초록새순 하나 없음에랴.

그래선지 오후햇살에 예의 그 생강나무 꽃들만 더욱 이채롭게

신선한 빛을 더한다.


이제 일차 이수봉 정상.

평소 같으면 어쩔 수 없이 그 특유의 찌든 듯한 쉰 냄새가 싫어-토양오염으로

못마땅해 하며 돌아갔을 테지만 어제는 왠지 그 정상부근 잔술 파는

막걸리 통 앞에 나도 서보고 싶었다.

파장분위기라 한가롭기도 했고.


날씨가 너무 메말랐음인가, 탁배기가 시원했다. 

시커먼 막 된장. 대가리만 남은 멸치 통. 시든 풋고추.

양파 쪽. 안주통도 바닥이다. 이천 원. 주인이 돈을 샌다.

누구는 놀이삼아 부러 라도 땀을 빼고, 누구는 한말들이 생활의

무게를 지고 몇 번이나 오르내렸을 그 팍팍한 육백고지의 땀이

이 오후엔 불룩하니 그의 주머니마냥 만족하니 되었다.

하기사, 늘 오늘 같다면야.


이.”

땀을 씻고, 남은 한 모금을 마저 들이키고 돌아서려는데

등 뒤에서 긴 숨 내쉬는 소리와 함께 “여기도 한잔 주세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쩔 수 없이 잠시 눈길이 스친다.

올라오다 언뜻 스쳐 지난 기억이 있는 붉은 상의의

모녀지간쯤이겠거니 생각했던 커플이다.

그리 보이지는 않는데, 모녀지간으로, 용감하기도 하시지.

그런데 뭔가가 이상하다. 왠지 낮이 익다싶고, 모자를 썼지만

정면으로 잠시 일별한 모습으로는 어린 쪽 나이가 이외로

들어 보여 아무래도 모녀지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쩔 것이냐.

뭔지도 모를 불확실한 느낌 하나로 다시 쳐다볼 수도,

“저…….” 말을 붙일 수도 없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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