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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난 한마리의 고기를 잡았다.

우두망찰 2005. 6. 16. 13:30

 

 

 

 

 

 

 


 

 

 

오늘 난 한 마리의 고기를 잡았다.


‘날씨는 맑았다.

바다는 좀체 실체를 들어내지 않으려는 듯 완강히 푸르다가,

멍든 듯이 검게 푸르다가 한낮 햇살에 겨우 몸이 풀려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이윽고 나중에는 웃기까지 하였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새벽.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을 헤메이다 배는

결국 우리가 목표로 한 섬을 찾지 못하고 도피하듯 내린 곳이 바로 ‘흰여’.

- 난 처음엔 ‘망여’로 들었다.


360도 회전 가능한 강한 서치라이트 불빛과, 주변 섬/ 암초들의 상황이

원근과 농담으로 그대로 화면에 나타나는 첨단 네비게이터 항법장치가

무색케 되는 짙은 안개 속에서, 갑자기 코앞으로 불쑥 닥치던 검은 여들과,

속도를 줄이면 부드러운 너울로만 만들어내는 장난 아닌 좌우15

30도의 롤링.

그리고 그 정적.... 모든 걸 빨아 당기는 듯한 저 조용한 물소리는 또 뭐지?

- 전날은 주의보 상황이었고, 뱃전을 잡고 서 있던 나는 몇 번인가 그대로

시커먼 물밑으로 잠수하는 줄 알았다.

 

아니 이 바다를 자기 집 안방, 건넌방, 사랑방 보듯 훤히 알고 있어야 할

저 선장님 얼굴 좀 보소.

“ 여그는 망여인데 날씨도 싸납고 하니 그만 내리씨요” 

“ ....................”

왜 하필이면 그 좋은 이름 다 두고 이름이 ‘망여’ 야.

누가 망했나. 망하는 꼴을 보려나?

궁시렁궁시렁.

“ 선장님 이 여에 나무 있어요?”

“ 나무는 없지만 파도는 안 넘응께 꺽정 안해도 되아요.”

‘우이 씨, 나는 나무 없는 여는 안 내리는데......’



그렇게 해서 이 고기를 잡았다.


낚시질 이십년 만에 처음으로 잡은 4짜다. 낚시를 즐겨하지만

그리고 열심히도 하지만 조과를 연연해하지 않으므로(증말?^^)

이때까지 잡은 감성돔 기록어는 고작 30전후 일 것이다.

물론 제어보지 않고 고기 들고 사진 찍는 게면쩍은 일도 없어서

정확치는 않지만.


나와 함께 한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약간 흥분을 했다.

나중에, 뒤의 사진처럼 내가들고 무슨 의식처럼 사진을 두어 장 찍고

모두들 한 장씩 어떠냐고 물으니, 전부들 화들짝 놀라 화안하게 웃으며

“아니 내가 뭘” 하며

한사코 사양하는 품새로 봐 충분히 짐작은 간다. ^^


한참을 망서렸다.

불룩한 배. 곧 쏟을 것 같은 무수한 예비 생명들......

우리는 일년에 두세 차례만 낚시를 다닌다. -원도 출조를 한다.

그건 고기에 비해 낚숫꾼 숫자가 너무 많을지도 모른다는

나름의 우려와 같잖은 평소 지론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그리고 봄에는 이 고기를 잡은 적이 한 십여 년 내 한번도

없었으므로. 설마?

- 물론 이번에도 일행 통 털어 이 녀석 한 수가 전부다.


축복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정돈된 그 평온을 깨트리는 얄궂은

애물단지라 해야 할지....

또는 일행을 소리쳐 불러야 할지, 전화를 해야 할지.

그도 아니면 빨리 몇 녀석 더 조용히 끌어내야 할지.......

(우리는 작은 몇 마리에도 기꺼이 즐겁다.)


망설이는 사이 물가에 둔 뜰채 안에서 녀석은 활개를 펴고

뒤척임 한번 없이 즘잖게 끔벅이고 있었다.

아니, 안보는 척하며 그야말로 나는 조용히 방조. 유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결과가 그러하니.


‘최고의 예우를 해주자.’


먼저 손가락 크기의 예리한 주머니칼을 펴 아가미. 꼬리부분을 가볍게 스몄다.

녀석은 이해하는 눈으로 가만히 있었다.

일행을 불렀다. “햐” “gi"

(원래 발음만으로 '지'는 독일어로 가장 ‘친근한’ ‘애정 어린’ ‘허락한’ 사이에

통용되는 호칭 앞의 접두사라고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헝가리어 라던가? 이 역시 정확하지 않지만. -이 글에서 정확하게

'gi'는 '햐'의 영문 타 다. ^^)


비늘하나 다치지 않고 그 흰여인지 망여인지의 정상으로 올랐다.

제천제?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이상하게 평소의 버릇과 달리

카메라를 가져오고 싶었었다. -꺼내었는데 웬걸 작동이 되질 않는다.

랜턴의 배터리와 바꾸어 보았다. 역시 불능. ‘우째 이런 일이’


그러나 다음 상황을 보면 녀석이 이해한 건 확실하다.

일행 중 나를 따라 올라온 모모씨. 시간이 없어 업무용 디지털 카메라를

그냥 여기까지 가져왔다 질 않는가!! 꼭 짜 맞춘 듯이.

부처님, 용왕님, 하나님. 이것은 쾌재를 부른 게 아니고

내 속으로 읊조린 조의제문이다. 


물 없이 깨끗이 포를 떴다. 꼬리는 잘라 바위에 널어 말리고

머리와 뼈 그리고 기타 곤은 한 점 남김없이 알뜰히 탕으로 끓여졌다.

그리고 세 시간 동안 우리 일행은 경배하듯 천천히,

수도하듯 경건히, 그리고 음모하듯 깨끗이, 깨끗이 먹어 치웠다.

지금, 우리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이 몸과 함께 살아있을 것이다.

부끄럽지 않도록 하자.

최선의 보답일 것이며, 녀석이 진정 바라는 바이기도 할 것이다.

왜냐?

그는 알만큼 알고 살만큼 살아 깨끗한 승부를 원했을 것이기 때문이므로.   


황혼이었다.


‘그날 날씨는 못나게시리도 끝내 아침 농무를 걷지 못하고

가끔씩 인근 섬을 감아올리고, 한낮에도 갑자기 침침한 울타리로 우릴 가두었으며

왼 종일 후덥지근하다가 그 무렵에야 선듯 선듯 바람으로 깨어나고 있었다’ 


“ 역시 대물은 대물이야. 이 바람으로 풀어주고 풀려나며 바다를 웃게 하는

저 통 큰 기질을 좀 봐 ” ^^




(사진의 날짜를 보니 91년이네^^. 요즘 나는 거의 낚시를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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