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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본 김에

우두망찰 2005. 6. 11. 13:28

 

 

 

 

 

 


 

 

4. (죽령 5월 3일)


소백산 자락에 살기에는

나는 아직 준비가 필요하다

내 아이를 양육하는 아버지의 일과

내가 약속한 내 아내의 일

그리고 둥지를 틀 공간도 마련하여야 할 테니


풍기에서 바라보는

연화봉 두솔봉 아래 연봉들은 충분히 높은데도

고래 등 같이 원만하고 부드러운데

그 아래 산맥이 장대히 팔 벌려 내달리고 나면

그 품은 넉넉하여 

세상 전부를 담아내도 모자라지 않을 여유가 있나니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너는 지금 여린 찻잎 순 같은 생명들을 키우며

사슴녹각 솜털 같은 은녹 빛으로 뿜어 나고 있구나


소백산 자락에 살기에는

나는 아직 준비가 필요하다

아직은 안주치 못하는 내 젊은 혈기를 소진하는 일과

내 영혼이 유영할 자유를 살, 일을 하는 일

소백산 자락에서는 쩨쩨하게 살고 싶지 않아

거침없는 영혼으로 살고 싶어


세상이 만만하고 분별 또한 있다면

저 산은 아이들께 큰 바위 얼굴이 되어 줄 터이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고

나 또한 부족해

아직은 때가 아냐


먼 훗날

영혼이 가난할 때는 찾아와 주세요

지친 영혼 하룻밤 안식할 집 한 칸 마련해 놓을 테니

그래도 시렵거던 내 거처의 문을 두드리세요

벗되어 드릴 테니

아니 물이 되어 드려야 겠구만

아니 바위가 되는 게 좋겠어

어쭙잖은 관심은 나도 질색

그러나 당신이 필요로 한다면

말없이 차 한 잔 되어드리는 건 나도 찬성

사람이 사는 건 적당한 소란스러움이 있어야 하거늘

살아 있음으로 나 또한 많이 적적해 할 거외다


이거 좋은 생각이야

소백산 자락에 살기에는

여기

밤이면 별빛이 맑아 하늘은 창대히 열리고

온갖 신비의 교신들로 가득할 테니

내 미혹의 둔감한 안테나만으로도

정상 천문대를 중계소 삼아

영혼의 불꽃을 우주로 쏘아 보낼 수 있으리이니

Emotional technology


소백산 자락에 살기에는

나는 아직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오늘

스쳐 지나며

다만 눈으로 인사할 뿐

내 사랑 가득 담아

다만 눈으로 인사할 뿐

 

 

 

 

******

웹 서핑 중 '소백산 자락'이란 말을 우연히 접하고

7~8년전에 쓴  연작 중 덜 떨어진것 하나를 찾아 

먼지 털어 올리다.

 

이제 이 게시판 블로거 생활도 한달이 넘어가니

슬슬 요령도 생기고

사람 사귀는 방법도 보이고

평소 관심은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접하지 못했던 모르는 것들도 알아가고...

 

무엇보다 

사람 사귀는 방법은 

책속에서 책을 소개받듯 

이미 아는 이의 방명록속에서 찾으면 

좋다는 것 ㅎㅎ

그것 하나 오늘 깨닫는다.

 

즐건 주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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