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나무

우두망찰 2005. 6. 23. 13:24

 

 

 

 


 

이유1.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참 편안해집니다.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슬몃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그냥 닮고는 싶어집니다.


나무를 잘 그려내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다가

그림은 못 그리니, 편한 사진이라도 찍자 하여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 사진도 나무의 품성을 담아내기 내 실력이 턱없이 부족해

늘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그 중 수피 사진이 제일 나무본성에 근접하는 것 같아 좋았고

또 중요한건 그들의 질감, 색감, 느낌 같은게 무척 조화롭고

편안해 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또한 그들의 물성

-표피, 단면 같은 것을 확장하거나 축소 조합하면 세상 많은

아름다움이 그 속에서 무한정 쏟아져 나올 것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된장 간장 고추장이라 이름 했습니다. 보이십니까? 소금 깨소금 후추....ㅋㅋ

환(環)

 



이유2.

그러나 먹고사는 일이 항상 우선이니

일주일 중 진득이 뭘 하나 끄적이기 하루 이틀도 여의롭질 않아

나머지 날은 대신 나무를 내보냅니다.

나무, 그가 가진 덕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의 권력에 기대어 그냥 그늘이 되든지.

아님 설렁, 흔들리는 바람에 잠시 나뭇잎이 되어드린다면 좋겠다는 심뽀로.

말없이.

때로는 어떤 의미로 설명되기보다 말없는 배경이 되어줄 때가 휠씬 더

관계에 필요하기도, 좋게도 하지요.

공(空)

 



이유3.

세상에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가

가진 만큼, 노력한 만큼 정당한 평가,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나무를 좋아한다면서도 너는 나무를 망치고 있지 않은가?


사진을 좀 더 잘 찍으면 좋겠다는 바램 중 가장 우선되는 것 중 하나가

어쩌면 바로 이 ‘나무를 제대로 찍고 싶다.’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나무가 가진 만큼, 나무가 가진 덕만큼.

그러나 항상 내가 나타내는 사진은 그 나무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사진기 탓을 했습니다. 


‘나를 스쳐 지나는 한순간 아쉬움을 잡아두는 작은 수단이면 돼. 사진은.

스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리 알고, 이리 하겠다 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NG(National Geographic)

사진 같은걸 평생에 꼭 한번은 찍고 싶다는 열망... 그 대척점에서. ^^

순전히 나무를 위한다는 핑게로 나의 만족을 위해 15-30, 12-24, 10-20,

10-22efs 온갖 기계적 암호 투성이 광각을 찾아 헤매고.

또 한편으론 ‘아, 무지 성가시고 귀찮아.’ 꼭 나를 구속하고 노예 질 시키는 것 같애.

모두 처분하고 8800하이 엔드, 똑딱이 하나면 충분해..... 갈등하기도 합니다.

욕(慾)

 



이유 4.

굳이 이유랄 것은 읎고. ^^

그러다, 이 공간에서 정말 우연찮게 한 사람 지인을 조우하게 됐습니다.

그것도 나무가, 나무사진이 인연이 되어. 바로 어제.     


‘귀룽나무’란 나무이름을 따라갔다 어느 분을 만났고.

또 그 인연으로 여러분들을 만난지도 모르지만.

짐작컨대 그 분이 맞을 것입니다.

한 이십여년 전 직업적 이유로 처음 조우해 몇 년을 잘 지냈고, 또 얼마간 소원하다

십여년전에 만나 또 몇 년을 잘 지냈고, 그리고 또 일년? 이년여전 정말 또 우연히

만나 나무 보러? 한겨울 이박삼일 남도여행을 함께 했었지요.

돌아와 그때 찍은 나무사진을 보내주며 덧붙여 내가 찍은 사진

몇 장도 곁들였더니.

.

.

.

그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그가 다시 돌아올 줄이야.

그가. 그 나무가. 인연도 이런 인연이...



“히야, 참 세상 좁구만 좁아!

K형, 오랜만입니다. 잘 계시죠?

이게 또 뭔 얽키고 설킨 전생의 연인지. 기념으로 우리 

빨리, 퍼뜩 만나 쐬주 한잔 합시다. ㅋㅋ ”

喜!



이 귀한 인연 모두가 나무 탓입니다. 나무가 베푼 은혜 탓입니다.

나무 이야기를 쓰는 오랜 친구를 위해.

예전에 쓴 나의 졸시 하나 바칩니다. ^^

 

 

 


나는 나무 한그루 심고 싶었다.                         1999. 7. 20


 

 

나는 나무 한 그루 심지 못했다.


내 취미가 나무 심는 것인데도


나는 무얼 하며 살았을까?


생각해 보면 할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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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記

- 원래는 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처음 눈을 맞추고 서로 웃었을 때

  어쩌다 혼자 깊이 생각해 볼 때에도

  나는 나무가 심고 싶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나무 한 그루 심질 못했다.

  나무를 심는 기쁨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

  얼마나 가슴 뿌듯한지 잘 알면서도


  나무는 보이지 않게 소리 없이 자란다

  나무는 말없이 속 깊게 자란다

  세상 소중한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하게 자란 나무를 대할 때나

  울창한 숲에 들어 그들의 향기를 맡을 때마다

  나는 한 그루 나무를 심지 못한 나의 잘못을 뉘우친다.

  그것은 내 인생이 잘못되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쓸쓸하게도 한다.

 

  그렇다

  한 그루 나무를 심지 못한 인생이 무슨 값어치가 있을까

  한 그루 나무를 키우지 못한 영혼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나는 지금도 생각을 한다

  나무를 한 그루 심는다면 참 좋을 것이다

  나무를 한 그루 심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세월은 가는데

  내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늘

  푸르게 푸르게 아쉬움으로만 자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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