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마음
지난여름이었던가 보다.
날씨가 쾌청했는지, 아니면 그냥 보통의 날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바람이 제법 시원했는데도
강변 산책로 걷기가 그리 녹녹치 않았으니
꽤 더운 날씨였음은 분명하다.
평소, 휴일이면 가끔 그 강의 둔치에 나가 걷기를 즐기는지라
그날도 집 앞 지천에 나왔다 내쳐 지류로,
다시 본류까지 이어진 길을 따라 나와 잠시 땀을 식힐 요량으로
그 곳 작은 섬, 수양버들 그늘에 들어 쉬고 있었다.
일요일.
한 낮 더위 속에서도 강변은 아이들 뛰노는 소리와
가족소풍객들로 넘쳐났지만
그늘 아래 한걸음 물러나 바라보는 세상은
강한 햇빛과 열기에 하얗게 증발하는 듯 아른거렸는데
문득 그 아른함을 뚫고 낮선 풍경하나가 걸어들어 왔다.
웬 초등학교 삼사학년쯤의 아이가 오리를 몰고
물가 옆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오리가 물로 헤엄쳐 오는 것도 아니고
겨울이면 여기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작은 몸집, 쇠오리 류도 아니고,
사람을 잘 따라, 집에서도 많이 내놓고 키우는 거위도 아니고
몸집도 웬만한 청둥오리? 개리? 야생의 모습인데
‘요즘은 애완동물로 오리도 키우는 모양이지?’
뒤뚱거리며 꽥꽥 걷는 모습이 귀엽고도 신기해라.
아이는 엄마와 뭔 말인지 쉴 새 없이 주고받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리를 몰고 있었다.
주변의 호기심어린 시선에 아이는 조금쯤 으쓱해 있으리라.
“얘야, 사진하나 찍을게.”
내 앞까지 왔을 즈음 나는 아이 엄마께 목례로 가볍게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셔터를 눌렀다.
걸어가는 모습. 오리만 클로즈업한 모습.
엄마와 함께 손짓하는 모습...
아이가 냉큼 오리를 안았다.
오리가 별 까탈 없이 쉽게 안기는걸 보니
그들은 오랫동안 신뢰관계를 구축한 사이임이 분명하다.
그도 한두 장 담고.
겨우 일이 분, 급히 서두르느라 올바른 사진하나 없을 듯한 짐작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 무슨 실례야,
내가 어색해서라도 더 이상 그들을 붙들 수가 없었다.
“고마웠습니다. 오리를 키우시나 보죠?
혹시 원하시면 사진을 부쳐 드릴수도 있습니다만…….”
그때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다만 서로가 조금은 어색해 전화번호 하나를 급히 받아 적고
그 후 사진파일을 이메일로 보내 주었을 뿐.
모습이 참 특이하고 좋았는데,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없어 미안했고,
아쉬웠고, 또 오리와 어떻게 연을 맺었을까? 이 도시에서 과연
어찌 키울까? 그것이 궁금했던 기억만 있다.
그 후로 일년이 다 된 오늘 아침.
5월 모일 여름 아침.
간밤에 가득한 스팸 메일들을 지우다 막 어떤 글이 떠오르는 걸
보면서도 그냥 관성으로 지워버렸다. 낮선 이름이기도 했고.
다시 지운 편지함에서 ‘영원히 삭제하기’ 란 버튼을 누르려다 말고
이상한 느낌에 다시 그 편지를 클릭하게 되었다.
지난여름 오리 사진을 찍어주셔서 감사해요.
아이가 오리 안고 찍은 사진이랑, 방학 숙제로 오리 키운 사연을
사진을 곁들여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냈답니다.
그 후 우리 사랑이는 무사히 야생 훈련을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지냈답니다…….
그러면서 오리가 알 낳은 사진,
야생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헤엄치는 사진 몇 장이
함께 와 있었던 것이다.
고마웠다.
이제 내 기억의 저편으로 희미하게 사라져가던 옛일이
이 여름 같은 봄 아침.
마치 움트는 새싹처럼
파란 희망의 메시지로 다시 돋아나다니.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늦었다고만 할 수 없어.
이 강이 이리 묵묵히 흐르듯 이 이웃들, 이 좋은 사람들이 있는 한
철새가 다시 날아올 수도 있는 일.
그 철새, 그 오리가 새 가족, 새 친구들 모두 데리고
하늘 가득 무리지어 다시 날아올 수도 있는 일.
*
지금도 거길 가면 그 오리 볼 수 있으려나?
그 분의 메일 성함이 바로 ‘파란마음’ 이었고
주소 창은 비어있었다.
파랗게 살자.
그날 찍었던 개망초 사진하나 곁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