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동화, 한때 영화/음악 이야기
3.
예스 예스 예스
어떠한 난관도 없이 이 계획은 추진되고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형에게 갖다 줄 밑반찬. 음식. 식혜. 과일. 기타 양말 내의 옷가지들. 여행이 일상적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자가용 자동차란 그림의 떡. 웬만한 간선도로는 왕복2차선. 거개가 비포장신작로.
여행가방도 용품도 의류도 흔치않고 여행이란 접두수식 자체가 낮 설든 시절. 여전히 변함없
는 건 떠난다는 설렘. 미지에 대한 호기심. 그 기대감으로 이미 꽉 차버린 그 생애 첫 여행 4박
5일. 다행히 형이 근무하는 곳은 국가기간 산업으로서 신축사택을 여러 채 지어 그중 한 채를
배정받아 살고 있다 했으니, 내일 모레 목요일 출발. 월요일 귀가. 하지만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를 빼면 그곳에서는 3일.
“내가 책임지고 누나를 잘 보호해서 다녀올게.”
4.
기차는 여덟시에 떠난댔나? 여행의 시작은 아침 7시, 이른 시간이었다.
날이 그리 맑지는 못했던 것 같고 맵고 싸한 날씨. 하지만 영천으로 가는 그 대구선 완행열차는
난방이 너무 과하여 좀 덥기까지 했다. 거기서 10시까지 기다려 다음은 중앙선 영주로 가는 기
차. 승객이 너무 적고 틈날 때마다 멈추어서, 단조롭고 따분했던 시골 풍경을 한없이 지켜보던
외 특별히 색깔 있는 기억은 없다.
오후 3시쯤 도착. 첫 여행의 과도한 긴장과 기대, 배고픔으로 이미 많이 지쳐있었고 매식의 경
험도 별로 없어 국밥 한 그릇을 대충 먹고 보호커녕 보호받으며 대합실 난로 가에 앉아 나른히
북적이던 인파를 바라보던 기억. 당시만 해도 대부분 사람들의 이동수단이 기차나 버스, 그중에
서도 장거리는 기차였던 관계로 중앙, 경북, 영동 세 철도의 교점이었던 이 영주역은 제법 붐비
고 활기에 차 있었다. 물론 아직 서울도 못 가본 열아홉, 소년도 청년도 아닌 어중떼기에겐 충분
히 낮 설었고. 다시 4시쯤 기차를 타고 봉화 거쳐 강원도 태백에 이르기 전의 한 시골 면소재지.
주요광물을 제련하는 국가기간시설이 있다는 그 최종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어느덧 짧은 겨울
해가 땅거미를 내릴 무렵. 사촌형이 그때 막 켜지기 시작한 가로등 불빛만큼이나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맞아주었다.
5.
그해 겨울, 그곳에서의 기억이 모두 선명한 것은 아니다.
다만 도착 첫날밤부터 손님으로 이집 저집 불려 다니며 밤늦도록 놀던 기억. 그 수십 호 새로
지은 국민주택? 문화주택? 같은 집들엔 똑 같이 생긴 구조만큼이나 공통점이 많았는데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다.
첫째 모두가 외지인이라는 점. 둘째 연령대가 대부분 2~30대 초반이라는 점. 대체로 하나같
이 신혼이라는 점. 갓난쟁이가 하나 있던가 뱃속에 있던가. 한 직장 한 동료라는 점. 그래서
모두 우호적이란 점. 직장 외 할 일이 별로 없다는 점 -아마도. 그러면서도 앞날의 삶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는 점.
어찌 보면 이런 조합에 소년의 형만 좀 이질적 존재. 거기다 방문객 둘의 면면이라니. 더군다
나 영주누나의 한 미모 한 세련하는 외모는 매일 밤 똑같은 놀이 얘기꺼리에 좀 지쳐있을지도
모를 그들에겐 눈이 반짝 뜨일 만큼 신선한 관심, 호기심꺼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짐을 들여놓자마자 형은 오늘 몇 호집 초대가 있는데 늦었다며 어서 같이 가자하였다.
얼떨결에 따라간 둘은 나이차를 잊고 그들의 룰의 따라 소개하고 술을 한두 잔 받아 마시고
노래하고 함께 왁자 떠들고 웃다가 11시쯤 돌아왔는데, 형이 야간근무를 가야할 시간이었기 때문.
중요한 광물을 제련하는 그 산업체는 그 광산 가까이 생산시설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24시간 3교대로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하필 그 주가 형이 밤샘근무를 하는 주.
무료로 무한정 공급해주는 연탄으로 어느 집 어느 방이나 절절 끓던 집안에서 나와 콧속이 쩡
달라붙을 만큼 곧바로 달려들던 바깥 추위의 상쾌함. 깜깜한 어둠속 낮선 산들의 실루엣. 눈밭
위 몇몇 가로등의 만화 같이 동그란 불빛. 비로소 낮선 여행지란 느낌이 그대로 몸속으로 이입
되던 신기한 기억. 그날 밤을 어찌 잤는지는 기억에 없다. 새벽 인근 역 첫 기차의 기적소리,
철거덕 철거덕 바퀴 하나하나 굴러가는 소리, 엔진 출력을 높이는 디젤기관의 아지랑이 소리도
소름처럼 피부에 고스란했던 것 같은데 잠을 깬 것은 8시. 야간근무를 마친 형이 샤워를 마친
말쑥한 얼굴로 아침바다 생태를 들고 들어왔기 때문. -고개를 넘으면 바로 동해바다.
열차가 아침마다 이 산골에다 싱싱한 아침바다를 넘치도록 한가득 배달해 준단다.
쌀뜨물 받아 무우 빚어 넣어 끓인 생태 탕. 갓 지은 밥. 가져온 김 멸치 무말랭이 반찬. 이웃집
에서 준 김장김치. 어린 시절 후 참으로 오랜만에 밥상머리에 함께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는 형
은 잠을 자러 들어가고, 할 일 없는 둘은 동네 한 바퀴를 둘러보러 밖으로 나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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