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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ion. 어른을 위한 동화3

우두망찰 2013. 1. 9. 12:44

 

 

 

 

 

 

 

 

 

 

 

 

 

어른을 위한 동화. 한때 영화/음악 이야기

 

 

 

 

6.
 하지만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산은 생각이상 높고 가파르고 계곡은 좁고 깊었다. 계곡 중앙 시내 이쪽 낮은 사면으로 다닥

다닥 수십 호의 구거지. 그 위로 밭을 일구던 터를 닦아 지금의 사원주택을 지었고. 반대편

사면 중턱엔 기차역. 그 아래 몇 동의 공동주택. 우측으로 들어가는 계곡을 가로막아 이 사람

들이 기대어 사는 거대한 산업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 모두는 눈에 함빡 묻혀 있었다.
같은 시골출신이지만 다년간 도회생활에 물든 이 철부지 포시라운 아이들에겐 여기 눈은,
산은, 추위는 모두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다. 1970년대. 지구가 뜨거워지기 전 이 한반도는 얼

마나 춥고 눈이 많이 왔던가.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아니 그 곳이 없었구나.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배를 깔고 그들은

책을 보았다. 여전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 또한 당시는 책, 활자매체가 여가 놀이 소통 문화의

중심이기도 했기 때문. 상당한 독서가였든 형이 그곳에 보유하고 있던 책 중에 니체도 있었고,

죽음에 이르는 병 키에르케고르도 있었고, 아주 두터운 국배판 셰익스피어도 있었는데, 소년은

그 중에서 과장과 형용으로 화려하게 극화한 중세적 대사가 지나친 양념처럼 입에  맞지 않고

우스꽝스럽다 여기면서도 –이 문장처럼, 그 현란한 수식과 은유, 번역의 문제일거야. 묘한 매력

에 빠져 틈틈이 책 읽기에 열중했는데. 올리비아 핫세 주연의 그 영화는 그때 나왔든가? 말았든

가? 한참 나중의 원썸머나잇 같은 언제우리 어타임포러스. 돌아와 그 전집을 다 읽게 되는 계기

가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얘기와 낮잠. 특히 잠을 많이 잤든 것 같다.

 

 

 

 

 

 

 

 

 

 

7.
 잠을 많이 잤다. 사실일까? 자신이 없다.
1970년대. 지금말로 베이비부머세대. 7080세대. 그들이 나고 자란 시대적 정서적 배경은 뭘까?

사람은 기필코 시대적 산물이므로, 환경의 산물이므로, 교육의 산물이므로 가장 축약된 본보기

는 그 시대 초중고 교과서의 지문들일 것이다. 일제36년의 결과 –수탈, 울분. 좌절. 열패감.

6.25 -좀은 맹목적 이념의 대리전, 하수인으로 치른 동족상잔의 어처구니없는 희생양. 지금까지도.

유교적 생활관습 –다분히 내 것 아닌 남의 시선에 무게를 두어 그리 위로가 되지못했든 가치. 서구

문명 -점령군 따라 물밀 듯 들어와 단번에 주인 행세하는 서구문물. 문화. 외래종교인 기독교적

가치. 그리고 큰 세계전쟁을 두 번이나 거푸 치른 이 인류의 공통된 문명환멸 사조. 나약한 지식층.

무엇보다 피폐한 경제. 근엄과 경직과 도식 이런 ‘묘비명’같은 구도 속에 생명, 원초적 욕망 열망들.

이 모든 것들이 뒤엉키고 버무려지고 용해되어 표출되는 게 대중매체. 방송. 그 시대 유행가 가사

만 봐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하는 건 잘못이다. 반만 아는 것이고 반만 얘기하는 것이다. 토양이 그렇더라도

언제나 새싹은 바탕인 아래 흙을 헤집고 그를 밑거름삼아 새롭게 돋아나는 법. 그러니 그것은 이미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지금의 현재가 그들이 이룬 것이라면. 현재 이 바탕을

딛고 지금 세대가 다가올 앞을 주시한다면. 어쨌거나 그건 이미 지난 구세대의 것. 그들은 이미 다른

세계를 살았다. 비록 몸은 아버지 어머니, 당시 현재에 있었지만 시선은 다가올 신세계를 향하고

있었으니.   
이는 여담이지만 말난 김에 70(칠공) 세대를 정의하는 한마디는 뭘까? 80, 90세대가 그들 말로 민주

화의 희생양이라면. 60세대는 근대화의 희생양. 70세대는 경제화의 희생양. 밀레니엄 00세대는 기득

권층의 희생양. 이러고 보니 모두 희생양인 불쌍한 처지들이다만 70세대, 어쨌든 그들은 일 하나는

열심히 했다. 그런데 그때, 정말 잠은 많이 잤을까? 


 

 

 

 

 

 

 

 

8.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해떨어지기가 무섭게 빨리 안 온단 성화에 쫓겨 징발되듯 간 또 다른 집에서 2십여명. 모두들 함께

떡국을 먹고 승부욕에 흠씬 빠져 치기만만, 열광의 윷놀이를 마치고 온 밤. 형은 벌써 출근을 했고

놀이의 흥분이 쉽게 기라 앉지 않았는지, 아니면 낮잠을 너무 많이 잔 탓인지 잠은 오지 않았고 라

디오를 켜자 ‘자정이 훨씬 넘었는데 도대체 잠은 안 온단’ 푸념. 마찬가지다. 외진 산골 이곳도 이런

저런 얘기. 비현실적 꿈같은 바람을 담은 각색된 얘기. 거식증에 끝내 목숨을 버린 카렌 카펜터, 그

민감한 고운음색이 부르는 노래 ‘크로즈투유‘ 그러다 너무 덥다며 함께 나가 바라보았던 그 산. 우람

한 산. 위용 찬 산. 아버지 같고 할아버지 같고. 흰 눈. 흑백. 무채 동양 수묵에 달빛 하나만 더하니

어떻게 저런 색이 나올까? 청람 담채 신비로 우뚝하던 겨울 산. 그 너머 정말 새파랗게 흑요석처럼

살아 빛나던 별빛. 아, 크게 소리 지르면 온산이 굽이굽이 메아리로 화답할 것 같은 차고 맑은 겨울밤.

약간은 불편하던 더위가 가시자 오소소 들어와 비로소 편히 잠들었던 기억 

 

 


 

 

 

 

9.
 다음날 오후, 둘은 기어이 그 낮선 이방지를 한 바퀴 둘러보게 되었다. 대신 밋밋한 운동화와 굽 높은

당시로는 최신유행 가죽부츠를 벗어던지고. 형의 작업화 워커 작업방한복 야상 두툼한 장갑 온갖 방한

용품을 있는 대로 착용하고 둘러서는. 그래봤자 손바닥만 한 공간. 조금만 길을 벗어나면 눈은 쉽게 무

릎높이를 넘겨 완강히 더 이상의 접근을 거부했고, 냇가 얼음은 한 번도 녹지 않아 위로만 키가 자라 곧

넘칠 듯 보였으며, 길들은 빙판이었지만 그나마 다닐만했는데 연탄재를 시루떡처럼 켜켜이 뿌렸기 때문.

 

 

 

 

 

모두 일들을 갔는지 밤의 그 활기는 어디로 갔는지 동네는 조용했고 무연탄을 실어 나르는

화물 열차 외 하루 몇 차례 서는 기차가 유일한 외부로의 소통 수단으로 그때만 반짝 활기

를 띄는 모양. 서로 손을 잡아주고 끌며 탐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잠에서 좀 일찍 깬 형이
 “일요일이니 내일 우리 영 넘어 동해바다로 소풍갈까?”

원래계획에는 없던 제안.
 고래사냥이란 영화가 나오기는 분명 이로부터 한두 해 후일 텐데 왜 갑자기 시간질서를 무

너뜨리고 뜬금없이 ‘왜 불러’란 창식이 형 노래가 영화도입부처럼 느닷없이 흘러나올까?

‘오랜만에 보내온 짧다란 사연하나’ 자칫 이 여행이 윤형주 서정여성성으로 잔잔히 흐를 뻔

하다 갑자기 속이 뻥 뚫리는 폭발가창력, 시원한 남성성으로 바뀌며 소년의 가슴이 쿵쾅거

릴까?
겨울, 동해. 바다여행. 당시로는 이 얼마나 호사스럽고 사치스런 말이더란 말인가.
‘자꾸자꾸 설레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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