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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ion. 어른을 위한 동화1

우두망찰 2013. 1. 7. 14:49

 

 

 

 

 

 

 

 

 

 

 

 

어른을 위한 동화, 한때 영화/음악 이야기

 

 

                                                        

 

                                                          注  : '   ' 대부분 특정노래제목 또는 노랫말

 

 

 

1.
 그 해 겨울은 눈이 많았다.
춥고도 긴 겨울의 한 중간이었지만 소년의 가슴은 좀 들떠 있었다. 진학을 위한 예비고사

발표와 함께 방학이 시작되었고, 당연한 결과겠지만 1차 시험은 낙방을 했고, 2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곧이어 졸업일 것이다. 졸업하니 <졸업>이란 영화가 그때 나왔던가 말

았던가? 이때까지와는 분명 다를 불확실한 미래. 영화 속 더스틴 호프만 같은 불안정한 심

리.  ‘스카보로 페어’ 청년일까? 소년일까? 그래서 답은 이도저도 아닌 청소년이었겠지만.
 그런 와중에 이질스런 이 마음결 하나. 설레임같은 거. 소년은 메주콩 삶는 가마솥 장작

앞에 앉아 두 뺨이 빨갛게 잉걸불에 익어서는 점점 굵어지는 눈발을 보고 있었다. 소담한

눈이었다.
 가마솥이 휘파람 소리 같은 김을 내뿜으며 눈물을 흘렸다. 소년의 어머니가 불이 너무 싸

며 타는 장작 몇을 옆 아궁이로 옮기고 뚜껑을 열어 긴 나무주걱으로 저었다 다시 닫았다.

하얀 김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가 처마를 타고 다시 내려와 사방에 퍼졌다. 콩 삶는 냄새

가 구수했다. ‘파슬리 세이지, 비록 로즈마리 다임’은 아니지만. 이제 됐다고 소년의 어머니

가 말하자 소년은 아궁이의 잔불을 다독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침 라디오에서 당시 대

유행이든 영화의 ‘눈싸움’이란 음악이 시작되고 있었다.
 소년은 빵모자를 눌러 쓰고 집 뒤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은 감싸 안듯한 반원형 대숲과

돌담 너머 오솔길은 언제나처럼 고즈넉했다. 눈 오는 날 특유의 약간은 푸근한 날씨. 뺨에 와

닿는 차가운 공기는 상쾌했고 발밑에선 벌써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났다. 가만히 멈추어 본다.

세상이 숨죽인듯 한 이 차분한 고요. 하염없는 눈. 가만히 듣자니 세상이 온통 소란하다.

누에가 뽕잎을 먹듯, 먼 소나기 소리를 듣듯, 천지에 가득한 이 소리. 이 소란의 정체는 뭐지?

정색해 귀 기울이니 그것은 눈 오는 소리였다. 처음 눈이 댓잎에, 마른 풀잎에 내려앉으며

자리를 잡는 소리. 그건 새 학기 첫 교실, 참새 떼가 대숲에 깃들어 재깔거리는 것처럼 잔치

앞둔 한참 고조된 소란스러움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들으면 침묵. ‘침묵의 소리’
그 노래는 감미로운 멜로디와 달리 ‘어서 오게 어둠, 내 오랜 친구여.’ 로 시작되었다.


 

 

 

 

 

 

 

2.
 “너, 형에게 한번 다녀오지 않으련?”
소년이 존경해 마지않는, 좋아해 마지않는 숙모, 작은 어머니가 한 부탁의 말. 어린 시절 첫
외지,

 도회생활 2년을 이 숙모 집에서 보내며 초등학교를 마친 소년에겐 엄마 다음으로, 어쩌면  엄마

만큼 정서적 유대관계가 깊은 분이었으니 소년에게 선택의 여지는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갓 시집와 6.25로 남편을 잃고 유복자로 키운 아들 하나가 지금, 군대 대신 당시제도 ‘부선망 단

독자’ 즉 ‘아버지를 일찍 여윈 외톨이’에게 주는 혜택? 으로 강원도 산골짝 모 산업체에서 대체근로

복무를 하고 있었으니 거기 면회를 좀 갔다 오라는 말씀. 그리니까 소년에겐 종형. 나이는 4살 위

요새말로하면 절친이기도, 한편으론 깍듯한 형으로서 소년의 나머지 삶을 관통하여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든 멘토. 하지만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 둘 4촌 형제사이에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될 필연의 또 한 이가 있었으니 일단은 여자.
나이는 그 둘의 중간. 집안으로도, 관계로도 막역했고, 많은 시간을 함께 했고, 잘 어울려 다니기도,

 무엇보다 함께 사춘기를 보냈으니 처음가본 다방, 처음가본 음악 감상실, 처음가본 콘서트 장…….

–지방도시에서 그때 통기타 가수 이장희를 처음 봤다.― 이 모두가 이들과 관련이 있다.
영주누나. (줄 바꾸어 부른다.)
 이 가족 역시 아버지를 일찍 여윈 가계로서 타향인 도회지에서 숙모님과 이웃으로 근 15년을 함께

산,  어머니들끼리는 피붙이 친동기간이나 다름없이 막역했던 사이.
그뿐이었을까? 지금 들어 생각해보면 거기엔 아마도 숙모님의 깊은 성찰, 숙고, 배려, 어쩌면 어떤

기대같은 것도 은근 숨어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비록 군대는 아니지만 학업을 중단하고 홀로 강원도 산골짝에서 밤낮없이 고생하는 단 하나뿐인 자

식이 느낄 심사, 외로움. 바람. 그리고
사흘이 멀다 하고 제 집 드나들 듯 찾아오는 저 애물단지 조카 놈. 결코 밉지만은 않은. 요새 저 녀석

처진 어깨도 영 꼴 뵈기 싫고.
“영주야 니 내 딸 맞제? 엄마에게 얘기했으니 저 상준이 데불고 오빠한테 한번 다녀오렴.”
당신 자신이 봐도 눈부시게 피어나는 이쁜 딸아이. 재수하여 이제 막 진학을 앞둔. 둘이라면 아무

래도 불안하고 셋이라면 지들끼리는 더없이 좋을 환상의 짝꿍일 이 조합. 숙모님은 과연 어떤 생각,

무얼 기대하고 이 여행을 기획하고 주선했을까?(아직 살아계시니 물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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