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동화. 한때 영화/음악 이야기
10.
그날 밤 돌잔치인지 백일잔치에서 일찍 돌아온 다음날 아침.
겨울치고는 모처럼 밝고 따스한 햇살이 담뿍 내리는 플랫폼 지붕에서 고드름 녹는 낙숫물이
반짝 수정처럼 빛날 때, ‘내 어께에 내리는 햇살’은 가슴 속 레일을 따라 흐르고 , 건너 산허리
를 감고 기차는 더운 김을 뿜으며 다가왔으니, 기차는 따뜻했다.
기차는 적당히 붐볐고 따뜻했다. 자리에 앉아 창에 맺힌 물기를 닦자 기차는 곧 출발했다. 기
차를 타면 아직도 신기한 것이 나는 가만있는데 산들이 나무가 자꾸자꾸 뒤로 물러난다는 것.
깊은 계곡을 따라 반은 터널인 철길을 기차는 차근차근 달려갔는데 철암 태백 통리 나진 도계
...... 시커먼 사내들. 온 몸으로 세상을 살아내는 사내들. 탄광촌. 철도 옆 누더기 판자촌. 시
멘트 블록으로 막 지은 듯 단순한 집단주택들. “세상을 알겠느냐?” 이 모두를 열심히 설명한
형 말의 한마디 완결 축약본.
묵호. 곧 바다였다. 형은 한두번이 아닌 듯. 알고 있는 부둣가 식당, 선술집으로 둘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늘 그런다는 듯 싱싱한 문어숙회 한 접시를 시켰다. 막걸리와 더불어. 새콤한 초
장 맛. 멍게 성게의 깊은 맛을 소년은 그땐 몰랐고. 뜨거운 연탄난로. 동해 겨울 붉은 게로 끓
인 국물로 좀 이른 점심을 먹고 막걸리로 적당히 취기가 오르자 그들은 질척이는 시장 통을 빠
져나와 등대가 있는 항구 뒤편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바다. 그 바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바다는 무지 감동스럽다.
다닥다닥 골목길을 한참을 걸어 누구나 그러하듯 다음으로 그들은 바닷가백사장으로 나갔다.
‘겨울바다로 한없이 달려가고파 파도가 숨 쉬는 그곳. 끝없이 넓은 수평선너머 넘치는 기쁨을
안고’ 아니다.
‘너에 그 모든 슬픔 괴로움들을 파도에 던져버려 잊어버리고‘ 왜 항상 회상에는 그 시절 ’고래
사냥‘ 대신 한참 후 이 노래가사가 따라붙을까?
그 시절 겨울바다에도 사람들이 연인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형의 심부름으로 소년이 담배를
사오는 동안 둘은 앞서 걸었고 그야말로 보이는 해변 끝까지 걸었고 소년도 곧 뒤따랐고 함께
나란히 돌아왔다. ‘퍼스트타임에버라이쏘우유어페이스’ 오후가 들자 바다 날씨가 점점 강팔라
졌다. 해무가 서서히 끼이고 바람이 일고 파도가 흰 어깨 깃을 세웠다. 따뜻한 찻집에 앉아 이
풍경을 바라보던 그들은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할 때임을 알았다. 술이 깨고 있었고 기분이 좀
울적해졌다. 역에 도착했을 때 눈이 시작되었고 다시 영 넘어 출발역에 돌아왔을 땐 어둠과
함께 앞을 분간하기 힘든 함박눈으로 변해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여기를 떠나는 것이다.
그 형은 또 아침 일찍 출근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며~~~ 그들은 모두 말수가
줄었고 내색들은 안했지만 쉬 잠들지 못했다.
11.
아침이 밝았다.
밤새 눈이 엄청 왔었나보다. 싸인 눈 위에 다시 30센티쯤, 그나마 티끌마저 하얗게 지우고
세상은 첫 아침인 듯 고요하니 맑고 햇살 밝았다. “조심해 가거라.”
벌써 일어나 밥해놓고 작업화 끈을 조이며 어른처럼 형이 말했다.
그렇다. 그 4박3일 동안 형은 형답게 무게 있고 책임 있게 성실했고
동생은 고분히 착하게 잘 따랐으며, 그 사이 꽃피듯 영주누나는 충분히 꽃다웠는데 이를테면
잘 웃는다든가 좋은 냄새가 났다든가 따뜻했다든가 사려 깊고 친절했다든가 뭐 이런 거 말이다.
12.
닥터 지박고를 영화관에서 한다고, 사람이 너무 많아 지박고 들어가야 하니 지바고가 아니라
지박고로 불러야 한다고, 중학교2학년 때 소년의 짝지가 말해주었는데. 한없이 착한 눈매와
단정한 용모 흰 피부를 가져 그의 가난이 더 슬펐던 그 짝지. 새벽 신문배달을 한다던 짝지.
도시락 반찬으로 늘 무짠지만 싸오던 짝지. 코로나 자가용 반짝이는 크롬도금 안테나를 몰래
부러뜨려 와서는 악동들에게 뒷거래도 하던 그 짝지. 아, 인생은 왜 이리 슬프지? 느끼게 해
주던 그 짝지. ‘섬훼어마이러브’ 라라의 테마. 왜 여자아이 이름은 리라나 라라로 지을까?
그래서 어쩌겠다구? 그보단 영주가 훨 낫지 않은가? 구슬보다. 곧고 둥근 기둥처럼 또렷하고
똑똑하고 한 주체 한 자아 한 인격하는 한 사람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니. 세상 모든 여자가
천사이든 시절.
‘웬 눈은 또 이렇게 흠뻑지게 와 가지고설랑…….’ 기차는 마치 영화 속 그 장면을 달리는 듯
온통 눈 세상. 곧 파묻힐 듯, 쏟아질 듯, 사라질 듯. 두고 온
지금 생각하면 이 세상 아닌듯 그 어릴적 섬같이 동떨어져 고스란한 하얀 순백 눈나라 하나.
“이쁘구나.”
평생을 사랑할 짝을 찾지 못한 모든 영혼은 쓸쓸하다. 이 무슨 가슴 무너지는 섭한 말씀.
누나는 그저 누나이고 싶었던가 보았다.
< 끝 >
注 : ‘ ’ 대부분 특정 노래제목 또는 노랫말
- Sky borough fair –Simon & Garfunkel.
- 눈싸움 Snow frolic –Love story OST
- 침묵의 소리 The sound of silence –Simon & Garfunkel. The graduate OST
- A time for us – Dony osmond. Romeo & Juliet OST
- one summer night – Cheisie & Abi
- 묘비명 epitaph –king crimson
- 자정이 훨씬 넘었네 –이장희
- Close to you –Carpenters
- 왜 불러 –송창식
- 바보 –윤형주
- 내 어깨에 내리는 햇살 Sunshine on my should –John denver
- 겨울바다 –유영석
- 고래사냥 –송창식
-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Roberta flack. 어둠속에 벨이 울릴 때 OST
- Somewhere my love –Doctor zhivago OST
'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기 (0) | 2013.04.17 |
---|---|
즈므해변 (0) | 2013.01.23 |
Faction. 어른을 위한 동화3 (0) | 2013.01.09 |
Faction. 어른을 위한 동화2 (0) | 2013.01.08 |
Faction. 어른을 위한 동화1 (0) | 2013.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