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연암이 중국사신으로 가며 요동벌판을 보고
열하일기에서 '눈물 흘리기 좋은 곳'이란
기록을 남겼다는 옛사람 말을 방송으로 듣다.
(그 내용을 잠시 빌리면)
*
초팔일 갑신(甲申), 맑다.
정사 박명원(朴明源)과 같은 가마를 따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십여 리 남짓 가서 한 줄기 산기슭을 돌아 나서니 태복(泰卜)이
국궁(鞠躬)을 하고 말 앞으로 달려 나와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큰 소리로,
"백탑(白塔)이 현신함을 아뢰오." 한다.
태복이란 자는 정 진사(鄭進士)의 말을 맡은 하인이다. 산기슭이 아직도 가리어
백탑은 보이지 않았다. 말을 채찍질하여 수십 보를 채 못 가서 겨우 산기슭을 벗
어나자 눈앞이 아찔해지며 눈에 헛것이 오르락내리락하여 현란했다. 나는 오늘
에서야 비로소 사람이란 본디 어디고 붙어 의지하는 데가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
말을 멈추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이마에 대고 말했다.
"좋은 울음 터로다. 한바탕 울어볼 만하구나!"
정 진사가,
"이 천지간에 이런 넓은 안계(眼界)를 만나 홀연 울고 싶다니 그 무슨 말씀이오?"
하기에 나는,
"참 그렇겠네, 그러나 아니거든! 천고의 영웅은 잘 울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지만
불과 두어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을 그저 옷깃을 적셨을 뿐이요, 아직까지 그 울음
소리가 쇠나 돌에서 짜 나온 듯 하여 천지에 가득 찼다는 소리를 들어 보진 못했
소이다. 사람들은 다만 안다는 것이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칠정(七情)
중에서 '슬픈 감정[哀]'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 알았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
내는 줄은 모를 겝니다. 기쁨[喜]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노여움[怒]이 사무
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樂]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사랑[愛]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미움[惡]이 극에 달하여도 울게 되고, 욕심[欲]이 사무치면 울게 되니,
답답하고 울적한 감정을 확 풀어버리는 것으로 소리쳐 우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
은 없소이다.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뇌성벽력에 비할 수 있는 게요. 복받쳐
나오는 감정이 이치에 맞아 터지는 것이 웃음과 뭐 다르리요? -후략-
*
옛사람 마음 한 자락이 굳이 무지개 아니래도
허공을 타고 여기 나와도 맞닿아 있음을 알고
외롭지 않다.
또한 이곳에 가면
비오는 날 발을 벗어 그 옛날 공룡들이 이곳에 알을 낳아 그 뜻을 알렸듯
몇 억년 후 새 사람에게 나란 존재를 영겁으로 이룬 이 비할 데 없는 부드러움
화석으로 알려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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