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Memory-3 어떤 편지

우두망찰 2006. 4. 19. 16:44

 

 

 

 

 

 

빗 속으로 젖는 봄날을 잠시 잊은 듯

4월 청명함이 계속되는 요즘,

그 4월 한 복판도 서서히 벗어나게 하는 오늘입니다.


어제는 모처럼 이곳 친구가

간단한 도시락까지 싸들고 찾아와

자기 차에 나를 밀어넣습니다.


5분 거리만 벗어나도 흰눈을 허옇게 쓰고

엎드려 있는 로키산이 병풍처럼 둘러있어

180도 각도를 눈 돌리며 바라볼 수 있는

거대한 산 foot- hill의 마을 캘거리,

여기에 몸을 담고 있음이 꿈만 같다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달립니다.


햇살이 강한 언덕과 들판에서

여유로움으로 거니는 방목된 소떼들과

반짝되는 윤기를 찰찰 흘리는 말떼들의 자유,

아직 푸른빛을 다 안지 않은 누런 들판의

마른 건초들이 부드럽게 바람에 누워 있습니다.


나무들도 침엽수 외에는

참새 혀만큼의 삐죽삐죽한 눈들을 튀우며

아스펜 나무들과 포푸라 나무들이

느린 걸음으로 오는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긴 겨울을 눈의 무게에 눌리고

잔인한 바람에 시달렸다 해도 제 날을 기다렸다는 듯

어린잎들 상큼한 모습으로 걸어 나오는 이 봄,


요만 때쯤 내 뿜는 파스텔 화풍의 봄색 한 걸음,

아 - 자연은 이런 것이라는 화사함으로

긴 겨울 깊게 여며놓았던 눈빛 한번쯤

와르르 무너져도 좋을 봄날들,


만화방창한 조국 강산의 colorful한 빛이 아니어도

남루한 채 인색한 채 로키산자락을 쓸어내리는

내 투정부림의 4월 꽃잎이 아니어도

바람이 순한 성질로 끝없는 들판의 변속을 부추기며

흰눈으로 덧칠한 산의 모습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더군요.


좔좔 흐르는 눈 녹은 물소리에 귀와 눈이 맑아짐은

움츠렸던 마음 구석구석으로

호수에 비친 투명한 빛 조각의 편린들이

조용히 춤추며 가슴으로 마구 꽂혀댑니다.


가까이 가지에 매달려 있는 잎눈을 손끝으로

몇 개 만져보며 촉감끼리 부딪는 봄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알맞은 시어들을 건져내지 못하더라도

생의 눈빛을 이렇듯 신산함으로 담아낸다는 것이

시의 계절 맞지요!!


바람이 달게 내 몸을 핥아내며

흰머리를 날려주는 벤취에 앉아

green salad 와 spring roll 튀김으로 싸온 도시락을 펼쳐 놓고

따스한 봄볕을 조물거리며 입에 섞어 넣습니다.

그 맛의 달디 단 미각,

봄살이 오를 것 같습니다.


잠시 나이를 뚝 떼어내고

내 아직 살아있음의 자리가 푸름을 전하고 싶은

봄날의 환희를 전해 드립니다.

 

 

 

 

 

 

*****

이 글을 쓰신 분은 예순중반의 

이국에 사시는 여성분이신데 <좋은 산문>의 본보기처럼

여겨져 비오는 날 내 인색한 옛 창고를 뒤지다 발견 

먼지털어 올립니다. 

조금이라도 가슴 따뜻해지신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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