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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 가수

우두망찰 2005. 12. 1. 20:05
 

그 여 歌手


조명이 어두워지고

그 여가수가 무대에 나왔다.

“안녕하세요.”

안녕 못한지, 아니면 딱히 묻는 어투가 아니어선지

의례적인 박수가 나오고 그녀는 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그녀만을 감싸 동그랗게 공중으로 띄워 올린 한점의 스폿 라이트.

악기편성 하나. 건반악기. 디지털 피아노. 미니멀. 그러나 꽉 찬다.

편곡이 서사 없이 간결하다.


그녀는 아무런 옷도 입지 않은 듯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아무런 치장 없이

그런 꾸밈의 부질없음, 한계를 이미 아는 듯

본래의 이미지, 맨몸 -자신만으로 노래, 리듬의 강물에 든다.


덧없는 세월 속에서 거친 파도 만나면

눈물겹도록 지난날의 꿈이 그리워

은빛 찬란한 물결 헤치고

나~는 외로이 꿈을 찾는다.


맨살에 와 닿는 이 강물의 느낌.

자신을 해제하고 무방비로 와 닿는 그 음률의 느낌

물의 근육.

그녀의 손가락이 허공에다 물결을 그려낸다.

노래에 못다 한 이야기가 그 손끝에서 잡혔다

다시 선율을 타고 손끝 어떤 파장으로 피어난다.

마음을 따라.


*

“내 뱉는 숨소리 하나까지 노래이고 싶습니다.”


첫 노래를 끝낸 그녀가 말했다.

‘그러시우’


안다면 다 알고 모른다면 또 다 모르는

동료들, 사회적 동료들. 체면과 위신, 내면과 진실.

늙음에서 젊음까지 두루 섞여 한자리에 한 그 묘한 분위기

‘완행열차’

‘건널 수 없는 강’

사이마다 짤막하게 그녀는 노래에 대해 얽힌 얘기, 소회를 이야기했다.


그녀의 노래는 울림이 깊다.

그래, 그 울림이 너무 깊어 때론 부담스럽기도 하지. 

한없이 가라앉아, 세상의 끝을 내다보고 앉은 듯한


“누구 없소?” 


“여기요” “저요”

“이 예~” “나, 여깃어요.” “손들었어요.”


“거기 누구 없소?” 하면 이리 화답하라 그녀가 얘기를,

부탁을, 요령을 말해주었건만


그러나

반응은 시원찮았다. 굳이 무관심 무취향이어서가 아니라

경화되어서이리라

대신 젊음인지, 서비스정신인지 모임의 장소를 제공한

호텔 젊은 종업원 이십여명이 뒤에서 일렬로 도열해

백 댄서나 되는 양 환호와 열광 -반죽으로 화답했지만

호스트들의 무딘 반응에 도화선이 되기엔 역부족.

그래서 그녀는 할 수없이 또다시 그 노래를 참 그 노래답게

한없이 가라앉아 불렀다.


노래를 끝 낸 그녀 “과묵하시군요.” 웃음

우리, 애매한 웃음 아니 수줍은 웃음.

“공연문화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흑백사진을 배경으로 촌스런 작부차림의 한복만

붉고 노란 필터를 끼워 앨범 재킷으로 촬영한

CD 한 장을 얼마 전 선물로 받았다.

그 CD를 준 이가 올드미스 여서 마음이 좀 아렸지만.^^


“1925년부터 1955년까지 우리가요 트롯을 제 식으로

리메이크했답니다.”

‘그래요. 나도 그 음반가지고 있답니다.’

이리 말해주었다면 그녀의 마음이 잠시 따뜻했을까?

아니다. 줄 곳을 별로 찾지 못한 그 장미묶음 한 다발 모두 다

내차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선창’

‘봄날은 간다.’


마음에는 있지만 적절히 표현하지, 쏟아낼 줄 모르는 어리보기 관객과

내재된 마음은 아는데 쉬 따라오게 못 만드는 -아니 안 만드는

그 가수의 개성이 이루어내는 그 묘한 어색함. 

우리는 포기했다.

무대에 올려 세울 게스트를 찾느라 술래잡기가 벌어지고.

“노래나 열심히 부를께요. 어디 신청곡 없어요?”

“루씰” 

누군가 용기 내어 소리쳤다.

“아, 그 노래도 아세요.”

그녀의 표정이 잠시 밝아졌다.


“다음은 ‘소금에 상처를 뿌린 듯한’.....”

상처에 소금을 뿌려야 맞지, 소금에 상처를 뿌릴 수는 없는 일.

그러나 그 표현이 그녀에게 어울린다. 시적이다. 잠시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소금에 상처를 뿌린 듯이’ 그렇게 한걸음 물러서

담담히, 객관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울림 깊게.

이미 그녀도 그 나이는 아니지.

요즘은 그림을 그린 댔나. 도자를 한 댔나, 아니면

환경운동을 한 댔나, 한참은 밝으니 불혹인지 지천명인지

아직도 그 냄새가 덜 가셨다면 매력 없지.


멋없는 친구들 그러나 순진한 친구들

소비에 미숙한 친구들. 문화 소비에 문외한인 친구들

그래도 나는 이 친구들이 좋다. 한없는 무덤덤, 그 맛없음이 좋다.


마지막 곡을 굳이 신청곡으로 하겠다는 그녀에게

선곡 하나만 잘해주었어도.

녀석, 마음 아프면, 상처 있으면,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그렇지. 속으로 삭이지. 한잔 술, 술 같지도 않은 포도주 한잔에 그게 뭬야.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니 “에라이 나가 주거라.”


그래도 그 가수는 그 노래를 그 가수보다 더,

아니지 자기 식으로 훌륭히 소화해내 불러주었다.

비로소 열광적, 상기된 환호가 터지고....


그녀는 우리 맘을 알까?

우리의 아픈 맘을 알까?

프로에게 마지막 피날레를 뺏은, 자존심을 건드린

그 무신경함을 우매함을 무례함을 그 순수를 많이 미안해한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안다.

괜한 기우다.

그녀가 누군가.

그녀에게 축복 있으라.



 

(전에 쓴 글이다. 오늘 어느 블로그를 방문해 읽은 글이 못내 맴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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