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시를 가게 되면 난 거기에 가기를 즐긴다.
단순히 즐긴다기보다는 웬만하면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일삼아 들르는 편이니, 그 장소에 대한 내 생각이
짝사랑만큼이나 좀 일방적 사모일수도 있겠다.
시간은 대체로 오전.
가능하면 한적한 평일.
계절은 가을부터 삼월정도까지가 적기라 생각되지만
한겨울, 성하(盛夏)에는 들려본 적이 없고
좀 이르거나 늦더라도 괜찮을 것이지만
이 계절 날씨는, 아무래도 좀 밝고 시원한
바람 부는 그런 날이 좋으리라. (내가 갈 때마다 그런 날이었다. ^^)
여행지는
특히 낮선 도시는 사람을 달뜨게 하는 묘한 기운을 숨겨 놓고 있다.
익숙치 않는 곳. 그러나 그리 낮 설지만도 않는 곳.
목적은 있을 것.
그러나 일은 쉽게 처리되었거나, 가볍게만 남아있을 것
걱정거리는 없을 것.
시간은, 마음은, 주머니는 조금은 여유가 있을 것.
우리는 그런 도시에 황혼녘에 도착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방의 거리, 낮 섬. 호기심, 익명성이 주는 자유로움, 외로움 따위가
하나 둘 켜지는 도시의 주홍색 불빛에 녹아들면
우리는 그 거리를 걸어 그 도시 속으로
형체도 없이 빨려 들어가 이런 곳을 찾아야 한다.
엄숙하거나 처연하거나 밀폐되지 않는 곳.
음악 없는 곳. 가끔은 막막한 곳.
그러나 바람막이는 있고 남포불 아니 백열등 나신은 밤새 빛나고
앉으면 엉뎅이가 따뜻한, 번잡하지 않고 왁자지껄한 곳
쐬주 한잔을 시킨다.
혼자여야 좋다.
그래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분위기이니
그 도시에 오랜만에 회포 풀 친구가 있으면 더 좋다.
적당히 취기가 돌면 이제 주인장께 슬슬 말을 부친다.
아자씨도 좋고 아줌니도 좋다.
그러나 경험법칙상 아자씨가 더 좋다.
그 아자씨 술이 취하면 자기도 한잔 낸다.
그러나 아줌니가 한잔 내겠다고 하면 극구 사양하여야 하고
자리를 옮겨야 한다.
인문, 역사, 사회, 지리, -정치/ 갱제는 빼고 -고담준론을
횡설수설 하지 말고 그냥 말없이 경청한다.
졸리면 주인이 소개하는 이웃 숙소에 가 잠을 자고
아침은 당연 어제 그 집에 가 칙사 대접으로 해결한다.
아침
이슬이 떨어진다.
나는 이제 택시에서 내렸다.
포도는 아침 안개, 물기에 약간 젖은 듯 정갈하고 한적하다.
한 시간 길.
이곳저곳 눈길을 주며 천천히 걷는다.
가뇽 쯤, 단순 멜로디 하나가 당연 따라붙는다.
햇빛이 맑다. 완만한 오르막, 기온 탓인지, 어제의 술 탓인지
등허리에 땀이 조금 솟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해
정신을 맑게 한다. 생각하라. 느릿느릿 걷는다. 즐기라.
늦으막한 동백이 아직도 수줍은 꽃술을 터트리고 있다.
붉디붉은 그 선명한 색깔. 윤기 도는 잎새.
잠시 눈길을 주어야 한다.
그 곳에 이제 이런 집이 들어있어 그 길이 더욱 빛난다.
자연색. 동화, 흡수되어 힘주어 나타내지 않지만
분명히 그 존재가 인식되는 집 한 채.
그 집이 있어 더욱 어울리는 풍경이 되는 그런 집 한 채.
그 길에, 난간위에 들어서 있다.
우리도 이제 그런 집들을 가져야 한다.
저 놈의 스텐레스 번쩍거림 없다면야
저 집처럼 무채색 도장이었다면야.
주인 행세를 공무원이 하지 않았다면야
(이 집-화장실, 상을 작가를 제치고 공무원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