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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눈물

우두망찰 2013. 12. 17. 11:09

 

 

 

 

 

 

 

 

 

 

 

 

 

 

 

 

 

 

 

 

 

 

 

 

 

 

 

 

 

 

 

 

 

 

 

집으로 가는 길

 

 

영화를 봤다.
일요일 아침.
무겁지 않는 것.
자극적이지 않는 것. 끝이 슬프지 않는 것.
rest. relax. healing. 굳이 sweet일 필요는 없지만 약간의 감동은 환영.
일없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 잠자리 끝
늘어진 심신으로 한번 보면 왠지 하루가 좋을 것 같은 영화.
그런류는 만화영화들이 많고, 요즘은 그런 장르로 분류된 카테고리도 있는 것 같은데.
신작에 gravity는 없고, about time은 봤고...
리모콘 춤을 추다 멈춘 곳. 이 영화. 마침 무료, 덤이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전에 봤다.
개봉 당시. 그러니까 한 1999년이나 2000년쯤일 것이다.
삼성동 코엑스 멀티플렉스- 이런 류 영화관도 그때가 효시였겠지. 아마?
친구사무실 단체 영화 관람 guest로 초대되어. (뒤풀이 술값이 몇 배 더 들었다. ㅠㅠ)

 

 

오랜만에 보는 영화였다.
그러니까 십수년만. (대충이라도 계산해보니 18년만)
물론 중간 중간 한두 편 본 영화는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서편제’나
종편제? 뭐 이런 국민영화? 같은 것. 아니다. tv ‘주말의 명화’도 있구나.
어쨌거나 그 시절, 정식으로 영화관을 찾아 본 게 손꼽을 정도니
내 생에 군대 다음 불모지 같은, 문혁같은, 어쩌면 그래서 가장 건강한 시간.
그때는 일만 하던 시절이었다.

 

 

두레박만한 팝콘통도 생경했고
서넛이 나눠마셔도 충분할 것 같은 미국처녀 허벅지둘레 콜라 컵도 신기하고
-요즘은 이 사이즈 커피도 벌컥벌컥 잘 마시는,,, 나도 그런 세대가 되었다.
도대체 그런 분위기. 젊은 친구들과 어울려 보는, 외국 영화, 중국영화, 장예이모 영화.
(개혁개방? 홍콩 아닌 대륙.  붉은 수수밭 너머가 궁금하던- 들을 건 다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만 그럼에도 불구, 난 살짝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다시 보니 장쯔이는 당시 꽃띠, 꽃처럼 이쁘더만 이쁜줄 몰랐고
몽골리안, 아니 차이니즈. 남주인공 외모가 좀 더 세련? 로맨틱하지 못하다 불만족이었으며
의도가 덜 가신, 봄의 기대로 초봄에 선, 사회주의 출구에 선, 약간은 상기된 좀 들뜬 영화.
특히 장쯔이 연기가 연기 같아 5%쯤 자연스럽지 못하단 생각도 기억되는데

 

 

더 욱긴 건 이 영화.
화면 하나하나의 영상미.
걸핏하면 요즘 내가 사칭해 걸고 너머지는 나무, 자작나무. 숲,
울타리마저 영화 전편(全篇)에 울타리 쳐져 계절마다 다른 표정으로 배경으로 둘렀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간과하고. 기억에 한 줄기도 없었다는 사실.

이로 하여 명백해졌으니 그때 –2000년.

 

 

 

 

 

 

 

 

 

 

 

 

 

 

 

 

 

 

 

 
내 의식에 가치에 관심에 희구에, 영상도 색깔도 나무도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
심지어 눈물이 많이 났다는 젊은 아이 후평도 과잉감정이라 내심 동의되지 않았었고,
그릇 꿰 메는 장인, 그 문화재급 신기도 사기요강 질그릇 철사 땜 떠올리며
별무 감흥이라 했으니
모든 건 불모지 맞았다.
안목도 감성도 심성도 문화도...    인간도.
아, 나는 그때 왜 영화의 백미, 그릇 깨고 우는 장쯔이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이 울음하나로 이 영화의 모든 부 자연은 용서된다.)

 

 

 

 

 

 

 

 

 

 

 

 

 

 

 

 

 

 

 

 

 

 

 

 

 


그런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2000년에서 2013년 사이.
이천년, 그때 나에서 지금의 나로 되었으니 (지금 여러분이 아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건 ‘2,000년대’가 아닌
‘2,000년동안’ 만큼이나 다른 이질스러움 일수도 있는데……. 

 

 

 

눈물이 났다.
그건 참을 수 없는 눈물이었고
엄청나게 나 주체할 수 없었고, 기어이 목구멍을 타고 꺽,꺽 넘어갔으니
일 년에 흘릴 눈물 대부분을 영화를 보며 흘렸을까?
된 밥 삼키듯 한 그 불편한 소리에 놀라 눈뜬 마눌에게
다시 되돌리기로 보여주며 장면마다 새삼스럽다는 듯 또 다시 눈물이 샘솟았고
영화의 작은 장치 하나하나, 색깔들, 의도들, 호흡들, 배우의 감독의
숨소리가 고스란히 들렸으니 지금이야말로 과잉?

 

나는 왜 울었을까?
아니다 운건 아니니
나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다시, 왜 눈물이 났을까?
꿀꺽 꿀꺽 목 메이게 했던 요소.
그때는 무얼 보고 지금은 무얼 보고 있을까? 늙었을까? 비로소 자신에 도착했을까?
그때도 나이고 지금도 나인데 이리 다를 수 있을까?
그건 분명 내 인생에 없는 아쉬움

때문 아닐까? 아쉽게 지금이라도 고백해야하지 않을까? 자신에. 솔직하게
메이킹 러브. 어바웃 타임도 그렇고.

 

 

 

 

 

 

 

 


 

 

 

 

 

 

 

 

 

 

 

 

 

 

 

 

 

 

 

 

 

 

 

 

 

 

(요즘 전도연 주연의 또 다른 집으로 가는 길이 또 눈물 바가지리고. 나는 왜 하루에 같은 제목
영화 두 편을 내리보게 되었냐고 마눌이 그러더라만, 난 뒤에 것은 아직 안 보았다. 그것이
무겁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고. 끝이 슬프지 않으면 앞으로 보아야겠다. 생각을 해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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