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
류시화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니(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 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니(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꿀 것이라(꾸리라)
------------------------------
(원본) 시
색깔 : 필자 임의로 변용한 부분
(내 취향으로 한두마디 여기서만 각색하니
원저자 시인분께 양해를 구한다)
겨울 아침
아침 다섯시반
눈을 떴다.
퍼뜩 '새를 보러가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여섯시반까지 기다려 나섰는데
다행히 하늘에 별이 한둘 총총였다
흐리지도 짙은 농무도 아니니 다행
이른 새벽 빈들을, 강가를 어슬렁거렸지만
그 많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가고~
풍경이 하, 수상하여
이십수년전 그래도 팔팔할때 본
한 시가 생각났다
그래 우에다 옮겨 적는다
시인의
여행을 떠나는 아침이 이랬을까? 하고
나머지 겨울아침 들판 풍경들도 한번보자
소요
가능한 같이 한번 걸어봐도 좋겠고
집에 가자
집에 가자
햇살 퍼졌으니
서리 태 푸른 콩 놓아 따뜻이 밥 짓고
된장 풀어 시원한 배춧국 끓여 놓았을 테니
둥글둥글 두리반 함께 둘러 밥을 먹고
이제 하루를 시작해야지
신음소리 한 번 없이
어떤 추위도 이 땅은 다 견디고
또 다시 새 생명 길러낼 테니
나는 때 되어 피고
때 되어 지면 그뿐
내가 할 일 그리 없고
그로서 족한 세상
얼마나 다행인지
다시 새 아침 이 땅의 일 아버지 일
이제 흙을 닮아 갈 때가 된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