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입동 무렵부터
서울구경을 한번 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리하여 첫 번째로 택한 것이 청계천변 시장들.
항상 매스컴으로만 피상적으로 접하고
어깨너머 주워들은 황학동 풍물? 벼룩시장 이런 것들도 궁금했고
서울이란 동네를 처음 올라와 2~30년 전에 한두번
그야말로 한두번 바삐 스치며 곁눈질로 보든
그곳들의 활기가 아직 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제 세상의 끝 같은걸 본 듯한 느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게 광막한 황무지든, 그림 같은 초원이든
도원선경, 죽음의 사막, 고행의 설산. 태초 극지. 이런 자연
세상- 세련. 풍요. 문화. 문명. 인간. 역사.......
아무튼 인간이므로 항상 뒷눈으로도 그를 의식하는 연장선 끝에
내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있었으므로.
어쩌면 이것은 궁극의 변화, 이행의 작은 첫걸음일지도 모르지만
그 떠나온 점. 나는 왜 인간을 떠나왔을까?
모든 길의 답은 사람에게로 통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이런
당연하지만 상투적 명제를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꼭 끝을 직접 찍어봐야겠다
승패가 결정된 만용의 결과를 안고 굳이 먼 길 에돌아 대상으로가 아닌
그 안의 삶, 나를 너를 사랑해볼까? 이런 막연한 생각의 시점? 회귀?
이로서 다시 서울구경 세상구경, 사람구경?
예상대로였다. 한두 번
겨울로 접어든 날씨처럼 새초롬하고
휴일 철시한 시장의 썰렁함으로 더욱 깊어진 그곳 그늘 추위처럼
그건 재미 하나 없고 을씨년스러운 마음의 짐, 고통의 광경.
한나절 답사 이후의 귀가 길은 늘 피곤하고 무거웠었다.
그 옛날 영화는 다 어디로 갔는가?
활기 하나 없이 근근이 버티는 자들의 초조한 눈빛들만
불안하게 방황하는 곳.
철공소 공구상 전파상 인쇄소 타올 우산집, 포목 신발 가방 시계 귀금속 집.
모두 싸구려 악세사리처럼 밑천이 보여 애잔하고 가슴 시린 곳.
영화 피에타 배경이 너무 극화로 과장됐다가 아니라 사실적이란 사실이
닻처럼 무겁게 바로 가슴으로 내려앉는 곳
그러다 기어이 감기를 얻었다.
구정 무렵
그나마 감기한번 하지 않고 이 겨울을 나니 다행이라 여겼는데
한번 든 감기는 거의 한 달이나 머물고서야 겨우 빠져 나갔다.
그러구서 다시 괜찮아진 2월 어느 주말 오후
다시 찾은 이 여정의 마지막 코스 동묘 앞 청계7가? 8가?
이곳이 황학동인지? 풍물시장인지도 모르고 난생 처음 가본 곳.
어떻게 이런 폐품도 거래가 될까 의아할 만큼
거의 넝마에 가까운 의류 신발 가방들. 땅바닥 난전에 그냥 부려져 있고.
조악한 모조품. 이제는 형벌이 된 욕망의 파편들.
그나마 가게에 들어앉은 오래된 가전, 생활용품들.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욱 낡아서임이 분명한 그를 부리는 사람들.
표정. 형색
늙고 병들고 세상 끝으로 내몰린 남루
생기 하나 없이 회색으로 풀죽은 여기 과연 무슨 빛이, 희망이 있을까?
충격이었는데....
돌아오는 길
동대문 거대의류상가 요란한 불빛이 마치 백화점 조명처럼
상대적으로 세련되고 호사스럽게 보이고
그야말로 별천지 딴 동네인양 딱 한 골목 비켜선 한켠 –광장시장 빈대떡 골목-만
주말을 맞아 입추의 여지없이 몇 군데 외국저널 카메라 취재도 있었는데
그 북새통에 잠시 안도하며 끼어 앉아 남들처럼
빈대떡 한 접시 막걸리 한통을 마시고
덩달아 마약김밥이란 수식이 도발적인 김밥 몇 줄도 사 집으로 왔는데
다시 감기에 걸렸다. 첫 감기 그물에서 빠져 나온지 딱 10일만.
다시 20여일을 목에 코에 진저리를 치고 나니
봄이 왔는지 갔는지. 세상은 매웠다. 새삼 씁쓸하고서.
<안다- 포옹>
<비탈에 서다>
<일곱 별>
<한 상 받으시다>
<관심>
*
<< 동백에게 >>
내년 봄
네 꽃잎 질 때 다시오마
(후기)
그람 못 오시겠구랴
필 때도 아니고
나는 꽃잎지지 않고
꽃 체 지니
지금 아니면
전부 아니면
꽃잎 나누듯
나눌 마음
남아있지 못할 것이기
....................
<약속을 지키다>
지난 약속
이미 약조된 약속도 약속이지만 벗의 청유
따라 나선 남도길.
이도 세상구경, 사람 사는 일이겠다.
본다고 다 같지 않을 것이며 예전과 다를 수도 있을 것이기
동백하면 2월 동백
늦더라도 매화 필 무렵까지
뭇 봄꽃들이 다투어 피기 전
뭇 풋것들이 다투어 돋기 전
언제부터인지 이런 기준들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여긴 이미 산 벚마저 지는 초여름 빛
외려 나았다고 해야겠다.
백련사 동백 숲도 그러려니와
시인의 생가 뒤뜰 툇마루에 앉으니
절정이 지난 한적
고만 다른 것 다 취소하고 한나절 그곳에만 앉았다 오고 싶은 심정
사람이야 거기 찾아오는 사람들만 봐도 세상구경까지 충분할 테고
동박새 다툼 활달하고 꿀벌까지 정신이 혼미하도록 잉잉거리니
거기 온통 환한 세상
사람 살고 싶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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