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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하류

우두망찰 2010. 11. 2. 18:07

 

 

 

 

 

 

 

 

 

 

 

 

한강 - 하류  : 묵시의 공간                                   1998. 6. 15




저문 나절 한강 하류에 서

강을 내려다본다.

해는 강을 건너 북서쪽으로

행주산성 너머로

뒤편 통일 전망대 너머로

개성 송악산 너머로

끈임 없이 져 마침내

이 강이 바다와 만나는 시원으로

그 소용돌이 아우성 속으로

장엄히 낙일 되겠지만

난 아직 보질 못했어.


아직은 그 여운이 서쪽 하늘에 남아 있을 때

그 합일의 충일로 생겼음이 분명한

참으로 아득하고 먼 박무에 싸여 있을 때

나는 강의 소리를 듣는다.


하루 일상이 끝나는 이 시간

성산대교 지나 목동 진입로 그 밀리는 차선에 잠시 멈추어서면

낮 동안의 분주한 마음은 옆 차선의 바쁜 흐름을 따라 나가고

비로소 휴식 같은 너의 흐름으로 내가 정리될 때

나는 여기 머물러 한참 동안 너를 바라보고 싶어진다.


강은 소실점을 찾을 수 없는 넓이로 누워

먼 상류로부터 비롯한 온갖 얘기를/ 희열을 /아픔을 /눈물을 /웃음을

그래서 사연을, 쌓여서 역사를 담아

모든 걸 이해하는 현자의 얼굴로 흐르는데

나는 그 넓이를 몰라 그 깊이를 몰라 애써 무심하고 태연할 뿐


강은 아무도 보는 이 없이 외면당하고

강은 아무도 찾는 이 없이 버려 져서도

여기 이렇게 누워, 전설 같은 얘기를 들려주고 있구나


너는 보았느냐

이렇게 넉넉한 흐름이

이렇게 유장한 흐름이

이렇게 무심한 흐름이

이 많은 사람들 가슴 가운데로 흐르는 것을


이만으로도 너는 은혜이며 풍요이고 베품일지니

내 마땅히 화답하고 싶으나

마땅한 대구對句가 떠오르지 않는

한낱 부족하고 어리석은 인간일 뿐

제 무게가 겨운 모순덩이 인간일 뿐


그러나 강은 이해한다

(나의 경우 없음과 무례를) 이해하고

(나의 안목 없음과 치졸을) 이해하고

(나의 무책임과 탐욕을) 이해하고

(나의 횡포와 억지를) 이해하고

(나의 오만과 나태를) 이해하고

(나의 어처구니없는 무지를) 이해하고

(나의 살이가 아직 이 정도인 것을) 이해한다.

그래서 여기 제 몸의 아픔을 감추고

이렇게 무심한 관용의 넉넉한 품으로

오히려 나를 위로하며 흐른다.


네 발원은 분명 높은 산 한 방울 영롱한 이슬로 시작하였으리라

네 처음은 분명 깊은 골 한 줄기 깨끗한 시내로 시작하였으리라

하늘의 점지로

우리가 태어나듯 순수한 영혼으로 우리가 시작하듯

너와 나는 시작하여

너와 내가 노래하고

너와 내가 꿈꾸었던 빛나는 이상으로

우리는 모든 곳을 가 보았으며/ 모든 것을 경험하였으며/ 모든 것을 섭렵하였노라


(금강산 만폭동에서 설악산 수렴동에서

화천 구만리에서 인제 내린천에서

사북고한 동남천에서 정선여랑 임계천에서

소양강 홍천강에서 주천강 섬강에서

가평 청평 춘천에서  충주 제천 여주에서

팔당 덕소 미사리에서 송파 노량 마포에서)

부딪히고 깨어지고 엎어지며

때론 분노하고 소리치며 미망에 빠지다가

너는 있는 데로 오욕을 담아내고

나는 있는 데로 오욕을 뱉어내어

너는 낮은 데로만 흘러 아름다워지고

나는 높은 데로만 흘러 고약해져서는

이런 운명적 해후를 하고 있다니


우리네 형편 같고 우리의 누이 같은 강이여

우리네 살이 같고 우리의 어머니 같은 강이여

양안의 가로등은 어느 순간 켜지지만

제 앞길 가리기 바쁘고 제 속 헤아리기에 바빠

이 시대 무력한 아비처럼 방황하는 오라비처럼 대책이 없어

진정한 뉘우침이 되지 못하고

너는 어둠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있구나


이 시각 도시 골목골목엔

이국의 강들이 이국스럽게도 몇 번씩이나 고상하게 흐르는데  

나는 가난하여 노래하지 못하고

너는 이해하지만 너는 죽어가고......




그래 길을 내는거야


이 단절의 강둑길이 끝나는 행주다리쯤에다

아무나 아무 때나 이용할 수 있는 넓은 주차장을 만들고

거기서부터 

자전거 전용 도로를 내는 거야

잡초 우거진 방죽길 위에

포장은 담갈색으로 이 강의 끝까지


물가 연안엔 그 옛날처럼  떡 버들을 심어도 좋겠지만   * 2)

가로 연변엔 요란하지 않도록 우리네 꽃씨를 흩뿌려 두면 더욱 좋겠지만

한참 높은 이 도로 가로수는 꼭 미루나무를 심어야 해

열 지어 한 줄로/ 강 반대편 가로로/ 한 10m간격으로.


이 나무를 여기 꼭 심어야 하는 이유는

(이 나무는 모든게 하늘로만 자라기) 때문이고

(이 나무는 제일 높이 자라기) 때문이고

(이 나무는 막심어도 제 알아 잘 자라기) 때문이고

(이 나무는 여기같이 트인 공간에 열 지어 서있어야 제멋이 나기) 때문이고

(이 나무는 아무리 커도 시선을 비워주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고

(이 나무는 그 밑의 여린 생명에도 햇볕을 나눠주는 넉넉함이 있기) 때문이고

(이 나무는 또한 그 기품에 비해 요즘 잘 볼 수가 없기) 때문이고

(이 나무는 이 강 하류 토양성분과 너무 잘 맞아 서로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고

(이 넓이 수평에는 이 높이 수직이 필요) 하기 때문


그러나 무엇보다 여기 이 나무가 있어야하는 까닭은

이쯤부터는 강을 환송하여 주고 싶기 때문

그의 자양분으로 자란 이 나무로도

환송하여 주고 싶기 때문


여긴 언제나 하늘이 놓아기르는 바람이 있어

그 바람 항상 이 나무에 훌륭한 조언자, 연출가.

흔들리는 잎새소리, 키 높이 높낮이로

바람세기 리듬으로 음악이 되고

그 운율에 너무 잘 맞는 너무 꼭 맞는

이별의 손흔듬 같은 환상의 군무

그리고 그 속에서 반짝이는 햇빛들의 박수는


그러나 축제 같은 환송의 절정은

봄부터 여름까지 온 정성 다 모은 가을날이지

이른 아침 대지가 미혹의 안개 속에 잠들어있을 때

거룩히 홀로 상반신 내밀어, 일찍 온 햇살에 정갈히 몸 씻고

조용한 침묵의 아침 기도 후

약간은 쓸쓸한 맑은 오후 양광이

무반주 첼로 음처럼 쏟아질 때면

끝간데 없는 하늘 언저리서 나비처럼 날아서

피아노 선율로 떨어지는 네 노란 낙엽들의 인사는


이윽고 이별의 아쉬움으로 긴 겨울 내내

네 가지의 쓸쓸한 잔영처럼 속 깊은 울음을 울지만

다 나눠준 홀 가뿐함이 보여주는 또 다른 빈 미학이 있기 때문

다 나눠준 나무와 다 담은 강의 궁합이 맞기 때문


가로등은 필요치 않을 거야 하지만 형편이 닿는다면

이 나무 사이사이로

하늘로 빛 나가는

키 낮은, 너무 밝지 않은 것이 좋을 거야


중간 중간 강안으로는 단정한 사각 발코니 쉼터를 만들어야 해

바닥 마감재는 목재를 써야 하고

둥글고 산뜻한 파라솔은 펴도 되겠지

그래서 쉴 사람 쉬고 /바라볼 사람 바라보고 /말없을 사람 말없고

그래서 음미할 수 있었으면 해


다시 

중간 중간 강안으로는 타원형 발코니 공연장을 만들어야 해

심오한 깊이와 장중한 감동은 이 강의 몫이니

여기는 좀 가벼운 소품이 좋겠어 하지만

키 낮은 20cm 무대를 만드는 건 아름답고 순수한 열정을 기대하기 때문

뒤턱은 없이 /강철 로프만 가늘게 강하게 /직선으로 안전하게

객석은 뒤쪽으로 조금 높았으면 좋겠지만 그건 비용이 많이 들 거야

그래서 나중에/ 지금은 평탄하게/ 열 줄 남짓 반원형의 목재 의자면 될 거야

하지만 편안해야 돼

바닥 마감재는 물론 목재를 써야하고 하늘을 가리는 건 싫어

하지만 출연자에 대한 경의로 무대만큼은 흰 천으로 조금 가려도 좋겠지


조명이나 기계음은 필요 없지

여긴 소음도 번잡도 없고, 오로지 태초의 것들만 있어

가식도 권위도 짙은 분장의 과장도 필요 없으니. 시연은 언제나 여기서 하는 것

가난하지만 준비된 자 있어

빠져들 매혹과 감탄할 영감과 멋진 세련이 있었으면 좋겠네

그래서 기쁨을 얻었으면 좋겠네

싹트는 시작을 보았으면 좋겠네


(이 모든 조형물은 전체가 약 3Km 간격이면 될 거야 *3)




이 시대 우리는 강 따라 바다까지 가는

밀리지 않는 길 하나는 가져야한다.

이 시대 서울 사는 모든 이는 강을 보아야하고 느껴야하고

바다까지 뚫린 길 하나로 해방되어야하고 

땀 흘리며 보호받지 않으며 생각하여야한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가야한다.


그리고 결정하여야한다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이 강이 알려주길

‘ 너희 시작처럼 되거라

  너희 모두 전부는 조금씩만 버리고 조금씩만 취했으니

  너희가 버리고 취했던 그 불편함은 되돌리면 되는 일

  잊지 말지니

  중요한 건 모두이고 조금씩이니 용기를 잃지 말고

  그리하면 지금의 고통도 어떠한 어려움도 모두가 풀릴지니

  이 강이 맑아지는 만큼이나 문제는 간단하니‘


그건 정말 하기 쉽고 우리도 익히 알아 우리 모두 바라던 일

눈물을 씻고 준비가 되었으니....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네가 네 시원의 소용돌이 속으로 해를 끌어안고

그 거침없는 자유로/ 막힘없는 해방으로

그 힘찬 바다 근육의 우람한 꿈틀거림 속으로

전율 같은 안개를 피워 올리며

할 바를 다한 진정한 승자가 되어 악수하고 포옹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너를 볼 수 있으리


다시 새아침

또 다시 시작하는

우리를 볼 수 있으리


   






* 1) 강을 찬양한 이국의 음악을 연상함. 그러나 반감은 없슴

* 2) 안전에 대하여 土木水理學에 확인이 필요함

* 3) 형태를 비롯해 이 모두는 전문가가 알아서 할 일임.




98년 시대의 우울 I,m F

그 비분강개의 시절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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