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바다-1 (1~3) 1.오늘 난 한 마리의 고기를 잡았다. 날씨는 맑았다. 바다는 좀체 실체를 들어 내지 않으려는 듯 완강히 푸르다가, 멍든 듯이 검게 푸르다가 한낮 햇살에 겨우 몸이 풀려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이윽고 나중에는 웃기까지 하였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바다의 기색을 살폈다. 물빛이나 파도의 높이, 조류의.. 걷기 2005.09.16
남쪽바다-2 (4~7) 4.오후에는 맥낚시를 하기로 했다. 이건 비과학적 비문명적 낚시기법이다. 그러나 보다 철학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 전에, 나는 아쉬운 듯 웃통을 모두 벗어 땀을 말린다. 논 슬립 핀이 박힌 갯바위 장화를 벗고 양말도 벗어 밀폐되어 눅눅해진 발을 드러내어 말린다. 시원하다. 일시에 땀이 가신.. 걷기 2005.09.16
남쪽바다-3 (8~11) 8.살림망 속에서 마지막 잡은 한 녀석도 그렇게 한다. 잘 가라. 산다는 것도 이런 건지 모르니. 바빠지는 마음을 다스리며, 나는 마지막 일몰을 완상하려는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는 시간의 실체가 가장 분명히 보이는 때가 지금이리라. 거침없이 유연하게. 태양은 그 옛날 군주들처럼 한낮동안은 .. 걷기 2005.09.16
남쪽바다-4 (12~13) 12.만월이 떠 있었다. 육지는 바다와 친해지려는 듯 낮게 엎드려 있었고 해안은 굴곡이 심하여, 내가 있는 곳은 깊숙한 내만. 그래서 바다는 밀려났다 다시 들어 올 때에는 멀리서부터 흰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며, 악동처럼 그 길목의 온갖 쓰레기들을 깃발처럼 흔들며 들어오곤 했다. 그러나 물은 맑고.. 걷기 2005.09.16
남쪽바다-5 (~) 14.아침엔 심하게 안개가 끼었었다. 어제 날씨가 너무 푸근하여서인가? 나는 어젯밤의 그 미몽과도 같은 안개 속을 헤메이며 낚시를 하였다. 안개 낀 날은 날씨가 맑다는 상식적인 기대를 갖고서. 안개는 열 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걷히며 첫 햇살이 바다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빛이며 색깔이 어젯밤 .. 걷기 2005.09.16
3월28일 생강나무-9(끝) 9. 우리는 이미 어두워진 산하촌. 번잡하던 한 낮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이제 한적하기조차 한 그 산하촌에서 조촐한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내려오며 우리가 나눈 얘기는 주로 어릴 적 얘기들이었다. 몇몇 지기들 얘기도 나왔지만 대부분 내가 전해주는 쪽이었고. 그녀는 그녀에 관한 .. 걷기 2005.09.14
3월28일 생강나무-7, 8 7. 드디어 징집 날이 한달쯤 앞으로 다가 온 어느 날. (돌이켜보니 확실한건 그 날이 13일이었고, 금요일이었고, 그 5월13일의금요일이 입대일. 내 징크스 시작일임이 이를 기화로 확실해졌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그랬는지를. 왜 그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던 그녀가 하필 그때 불쑥 생각났고 .. 걷기 2005.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