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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3 길을 잃다

우두망찰 2006. 10. 11. 11:40

 

 

 

그러나 시간이 늦었다.

잠이 왔으므로 중간 중간 두 번이나 토막 잠을 잤더니 열두시에 출발하고도

현장에 도착한 시간이 다섯시가 넘었고

입구주차장 부근 일주문에서 본 절에도 들리지 않고 바로 돌아 내려왔음에도

벌써 어둑어둑 여섯시가 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제대로인 꽃무릇은 없다.

황망히 담은 빛이 부족한 위 사진 몇 장뿐.

마침 택시가 도착해 콜한 손님을 찾는지 기사양반이 전화를 하고 있었다.

주변지리야 이분들 보다 나은 사람이 있을까. 말을 부쳤다.


“혹시, 주변에 하루 유숙할 적당한 곳이?~”

두말 않고 영광읍 터미널 부근 새로 지었다는 모텔들이 시설이 좋다며 엄지를 세워 추천한다.


“그런데 말고 경치도 좀 그럴싸하고 조용한 곳으로.”

이상한 사람 다 봤다는 듯이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단호히 그런데는 없단다.


“듣자니 무슨 해안도로가 좋다던데~”

“아, 백수해안도로. 거기는 여관이 없어요.” 하더니 손님을 태우고 휭하니 가버렸다.


좋다.

모처럼 이 느낌. 적막한. 허전한. 외로운.

대한민국이 어떤 나란데 없긴 왜 없을려구.

더욱이나 경치가 좋은 해안 일주도로라 하지 않더냐.

애초 생각하던 낙조는 아숩게 놓쳤다 치고 헤메다 보면 하룻밤 이 한 몸 의탁할

그럴듯한 숙소하나 없으려구?  



백수해안도로

며칠 전 아침시간 TV화면에서 얼핏 본 그 해안도로 풍경을 떠올리며 무턱대고 출발하다.

또한 이곳은 변산반도, 선운사, 내소사하는 유명짜한 곳에서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은

한적한 미답지란 점도 마음에 들었던 터다.

 

결과부터 먼저 말하면 대 참패다.

차량용 네비게이터, 축척 높은 지도 한 장 달랑 믿고 호기롭게 출발한

그 멋진 해안도로의 굴곡, 일망무제 갯벌은 전조등 불빛에만 한정되어 갇혀 초라하고  

가도 가도 황무지. 물먹은 어둠 속에 동서남북 방향감각마저 놓쳐버린 것이다.


그러한 도로를 수십키로를 갔을까?

1~2키로 간격으로 드문드문 인가가 나타나는 그 한적한 곳에서

아까부터 계속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내는 선전 문구로 그 시간 이 세상  

마지막 종착역 같은 느낌을 들게 하던 그 카페, 언덕에 도착한 것이다.

위에는 무슨 전망대도 있는 모양이더라만 사방이 어둠뿐이니 짐작조차 할 수 없고

노을이라 옥호를 장엄하게 써 붙인 그 카페는 이외로 마당에 차량도 제법이고

대형리무진에 고급 외제 차. 내리면서 얼핏 보니 종업원도 정장차림으로 문 양옆에

두 명이 황급히 도열하며  여차직하면 구십도 각도로 ‘어서 옵쇼’를

큰소리로 외칠 태세였다.


그리고 길옆 소로로 ‘마파도 가는 길’ ‘영화촬영장소’ 이리 써있는 것도 보였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헤메기로, 이 분위기, 영 내 취향이 아니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마파도란 영화가 아마도 김수미, 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도금봉 닮은 그 장군의 딸 등이 나온 영화인거 같은데 이 한적한 곳에 왠 정장이람.

미련 없이 돌아 나왔다.

그리고 말은 안했지만 아무래도 잘한 것 같았다.

그 분위기. 그 지역을 할거하는 행님 군웅들 마침 회합 장소인 듯도 했으니.

 

다시한번 써먹지만   

이 시간, 이 나이에 무작정 세상 끝으로는 갈 수 없으니 

오다 발견한 몇 군데 불빛 빤한 회집 겸 민박이라 써 붙인 집을 떠올리고

다시 되집어 나가기로 하다.


첫 번째 집. '식사는 되지만 잠자리는 안되는데요.'

영업을 마치고 집으로 철수하며 아무도 안 잔단다.


두 번째 집은 겉보기와 달리 도로확장공사 인부들의 밥집이며

숙소를 겸하는 듯 입간판과 달리 민박은 안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집은 그 사이 불이 꺼져 있었고


제법 동네 같은 면모에 바단지 저수진지 물가 옆에 장어집이 있고 그 옆에 카페

그 밑에 쓰인 민박 싸인.

옳거니, 술을 한잔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기로 아순대로 여기서 식사하고

잠은 저기서 자면 되겠군 하며 간판 전화번호로 숙박가능여부를 먼저 타진하려는데

지역번호를 모르겠다.     


그사이 장어집 주인장이 나와 여차저차하다니 모다 여기 모여 있으므로

-카페주인도, 꺽정 말고 들어오란다.

꽤나 시끌벅적한 걸보니 아마도 계추나 동네축하잔치인 모냥.

먼저 손님이 들었다 주인장 안내로 카페주인이라며 육순의 노인장 한분이

내려와 예를 차리는데 확실히 요즘 풍속과는 다른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이 묻어나더라.

황급히 배꼽 손으로 답하며 난방은 안 되고 온수도 없는데 괜찮겠느냐 묻길레

아직 춥지 않는데 어떠냐며 우선 식사부터 하겠다했다.


다시 식당 안주인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주문을 받으러 왔다.

그래 장어가 바다장어냐 물으니 민물 양식 장어란다.

멋대로 바다장어려니 짐작다가 양식 장어란 말에 고만 영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로 주인도 나도 너무 번거로울 것이란 핑계도 생각나

얼핏 본 백합칼국수는 되냐 하니 바로 된다하여 비로소 안도하고 그걸 시켰다.


솔직히 주인장 및 그 가족의 친절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더라만서도

풍짝풍짝 흘러간 유행가 메들리의 그 정신하나 없는 소란과

온 동네사람이 모여 들며나며 흘끗힐끗 찾아든 길손을  쳐다보는

눈길이 부담스러워 그 국수 맛이 어떤지는 잘 모르고

그냥 대충 쓸어 담는 것으로 넘겼다.

다음, 그 카페주인장을 찾아 여차저차 아무래도 안 되겠다 미안하다

말씀드리고 그 동네를 떠났다.


그리하여 다시 생각난 것이 무안 백련지였는데 지도를 보니 지척

‘무안백련지’라 입력하니 그런 지명 없다 기계가 답하니 못가고

할 수 없이 문명세계 빛고을 광주로 나가기로 하다.



길을 잃다.


그런데 어지간한 소로 길도 다나오는 그 기계가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도

그만 들판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렸다.

길을 잃다니 이럴 수도 있는가?

하늘서 내려다보면서도 이럴 수도 있는가?

예전에 이런 것 없을 때도 지도 한 장으로 어디라도 다 잘 다녔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


그럴 수도 있었다.

그 밤, 길을 잃기가 그 한번만도 아니고 두 번이나 더 였으니

들판 한가운데 어느 집 마당으로도 들어 그 가족이 놀라 다 나오게도 했으며

멍하니 홀로 들판 한가운데 서있기도 했다.

생각 같아선 밤새 그 들판에 서 차츰 배불러오는 달구경이나 싫 컨 하며

맞짜이라도 한번 뜨고 싶더라만서도

혹시 누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까 봐 사진 한 장 찍고 그냥 돌아 나왔다.


그 길이다.

 

 

갈대가 무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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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꽃 무릇

2. 마파도. 백수해안도로

3. 길을 잃다.

4. 주암호

5. 꼬막

6. 순천만 갈대

7. 남해

8. 새들은 모두 해뜨는 곳으로 날아갔다.

9. 세상에 가장 친절한 안내판

10. 미조

11. 물건

12. 남해 편백 자연휴양림

13. 엇갈림

14. 10.3일 새벽

15. 10.4일 on Air

16. 을숙도 몰운대 다대포 하단

17. last day

18. 나의 첫 바다

19. 동해남부선

20. 아, 간절곶

21. 영광 고리 월성 울진

22. 온산

23. 정자 처용 대왕암

24. 구룡포

25. 구룡포 해수욕장

26. 등 뒤가 뜨거워지고 있다.

27. 석병리 가는 길

28. 바람-1

29. 돌지않는 풍차

30. 영일만 구만리

31. 바람-2

32. 만의 가장 깊은 곳

33. 7번국도

34. 바람 -3

35. 바다 -1, 2, 3, 4, 5, 6, 7.......

36. 산으로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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