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그곳에 가면-3

우두망찰 2005. 8. 19. 17:42
 

팔월하순 즐기기


오늘은 금욜이다.

대체적으로 주말이며

비가 오니 올해 휴가도 이 비로 대충 파장일 것이다.

그래선지 희안하게도 어제는 새벽에 춥더라.

이제 아이들도 졸린 눈을 부비고 일어나

밀린 숙제를 바라볼 것이며

어른들도 새삼스레 화들짝 놀란 시늉으로 주변을 둘러볼 것이다.


달력을 다시 보니 추석이 채 한달도 남지 않아 때 맞춰

돈 줄 걱정, 받을 걱정, 자리를 고쳐 앉게 되고.

다음 주부터면 또 고향선산 조상님 머리도 깍여 드려야 할 터.

밀릴 도로에 대한 기억도 미리 떠올라 분명 한 몫 거들리라.


어쨌든 년 중 그때가 명절보다 더 밀린다 경험상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건 매우 일상적. 너무 의례적 당연한 일.

일삼아 말하기엔 그렇지 않은가.

그러기엔 우린 너무 전문스럽지 않은가?

-나이가. 살이의 속성, 힘듦이. ㅋㅋ (아님 말고~~)


하므로 그런 건 순식간에 해치워버리고,

이 팔월하순엔 우리 한강으로 나가야 한다.

쓰리빠 끌고. 아무 일 없는 듯 시치미 뚝 떼고.

이 맘 때쯤. 토요일 오후.

적당히 구름이 끼어 직사일광을 가리고

바람은 소소히 불어 옷깃을 펄럭이며, 강물은 또 은근한 기대로

은빛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오후 네시 쯤.

 

뒤 트렁크에는 길거리서 파는 나이롱 삼단접이 비치의자를 싣고.

바삭 구운 마늘 빵. (히야시 입빠이 된) 오렌지 쥬스병, 포도 한 송이

소형 아이스박스에 담고. 문고판 책 한권. 썬 그라스. 반바지 차림으로.


그리고는 광나루, 아차산 아님 뚝섬이 건너다보이는 한적한 강가에다

의자를 눕히는 것이다. 그리고 강물의 기울기로 내몸도 

눕히는 것이다.

한번 그래봐라.

현대판 신선이 따로 없고 서울판 귀족이 따로 없다.

하지만 아무도 돈 안받고, 누구도 뭐라지 않으니

책을 보다 설핏 잠이 들어도 되고, 배고프면 빵을 씹어도 된다.

아참 빼뭇다. 아이리버 엠피뜨리를 들어도 되고

조용한 강물소리를 들어도 된다. ^^


날씨가 시원하다.

도대체 이 강을 누가 만들었지?

이런 보다 근원적, 원초적, 허리상학적 질문을 쎄가 빠지게 하다가

-실은 보다 고상한 밥벌이 걱정을 철학적으로 하다가

조용히 돌아오고 싶지만, 해가 지면 또 우리는 이런 요지경 같은

다른 얼굴의 서울을 거기서 만날 수 있다.


.


강물도 이제 낮게 흘러 잠들어야 할 시간. 하지만 

아무리 좋게 봐도 세계유수 조명회사 -팔립소? 알통? 시멘소? 등등의

살판난 잔치. 무한한 시연장. 초호화 놀이터. 선전 전시 쑈가 그때부터

다리발마다 요란히 한점 틈없이 요화처럼 피어나는 것이다.

그 요란뻑적지근한 불야성에 그만 정신없이 홀딱 빠져들다가도

한편으론 또 왠지 입맛이 씁쓸해지기도 한다.

 

조캤다. 너거떨.

중동도 아닌데. 아랍왕족에나 필적할 저 엄청난 구매력. 무한정 소비력.

작은 칭찬에 그만 정신 못 차리는 통 큰 호구. 위대한 우리 셔블이 있어서.

이 시간에도 유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간다는데

강물은 현란한 색색 불빛으로 잠 못 들어 피곤하고

그 불빛에 자극받은 젊음들은 밤새도록 못 견뎌 소란하고

돈은 또 가난한 내가 다 낸다. 빚 얻어. 

 

뿐이랴. 경박단소. 표피적 유행통신. xx자본주의의 꽃. 원색. 

얼마나 착한 백성들인가. 관까지 앞장서니 개발회사, 뒤질수없지.

뻘쭘한 높이의 주상복합 건물. 천편일률 저 이마디자인들은 뭐며

자극적 붉고 푸른 불빛 띠는 또 어느 나라 어느 머리서 나와

저리도 흥분해 도발적인가?


‘고마 해라. 마 마이 뭇다 아이가.’

가 아니고

‘고마 해라. 마 너무 지나치다 아이가.’

이제 나도 좀 멋있다. 쎄련발 받는다. 이런 말 함 들어보자.

서울.

주민들이 나서야겠다.

그래 스스로 이마에 씌워진 오명을 벗고 명예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왜 내가, 우리 가족이 이마에 붉은 띠두른 택도 아닌 곳에 살겠으며,

뭣도 없는 빚 살림에 방마다 있는 데로 전등 못켜 안달하겠는가?

촛불 몇 개로도 얼마던지 근사할 수 있는 기술도 있을 텐데...


.


(이 분뉘기 대체로 좋다.)


 

*

비가 와 날이 찹찹하니 '팔월 즐기기' 얘기가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샌다.

‘고마해라. 마, 재미없으니.’


아 참, 이번 주말 같은 날씨면 아무 동해 바다를 가도 한적하고

좋을 것 같은데. 휴가도 안갔으니. 아니 못갔으니.

하여간에 내일 일은 내일 결정하자.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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