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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스케치-5(끝)

우두망찰 2005. 6. 9. 18:32

 

 

 

 

 

 

 

 


 

 

 

오늘 날 흐린데 무지 덥다.

아침부터 먹고사는 일하나 처리하고

오후에 들어왔다. 午睡 한숨.

-이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삶의 행복지수다.^^

(하긴 어제 밤 열두시까지 운동했으니 육체가 노곤해하기도 하겠지.)


어쨌든

하고자 한 얘기가 날도 더운데

별 재미도 없는 이 여행기를 오늘로 끝을 내어야....

보자, 그런데 벌써 시간이 네시.

 

 



*

슬픔

또는 불행도 그렇듯

살면서 기쁨 또한 예기치 않게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 그 느닷없음에 깊이가 더해져

더 힘겨워하거나 기꺼워하기도 하지만..


이번 여행의 백미, 하이라이트도 역시 그랬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지만 평소 습관대로 멋대로 멈추어

보고 싶은 것 다보고, 할 짓 다하느라

고개 넘어 달궁 마을에 도착한 시간이 거의 아홉시 넘어 일게다.


산채정식으로 아침밥을 먹으며 곰취 쌈이 먹고 싶어 혹시나 하고

도야지고기 구이도 한 접시 시켰다. 역시 따라 나온다.

곰취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이 기막힌 통함. 교감. ^^

 

그러니 따라 당연 한잔 술이 따르지 않을 수 있나.

아침부터 한잔마시기로 하다.

산에 올라야함에도 한잔마시기로 하다.


식사를 마치고 계곡의 구름다리를 건너 산으로 들려는데

문이 잠겨있고 통제란다. -곳곳에 통제천지군.

중얼중얼.

조금 더 내려가 뱀사골로 들 수도 있겠지만 붐빌 것 같아

섞 내키지 않아 망설이는데

“여기서 한 1.5키로 올라가면 xx농장이 있는데

주인께 양해를 구하고 그 길로 한번 가보세요.”

친절한 지역 주민안내. 


두 말할 필요 있나. 바로 실행.

“계세요?”

첩첩산중 괴괴한데. 단 한 채 집마저 비어 있다.

빈집으로

들기도 그렇고, 재차 부르기도 그렇고 하여 쭈볏거리는데

저쪽 나무그늘아래 벌 망을 쓴 할머니

라기는 그렇고 그렇다고 아줌니라기도

약간 애매한 분이 토종벌통 근처서 작업하다 말고 나오신다.


여차저차.

대단히 죄송하지만 댁의 사유지를 지나, 댁네들만 다니는,

댁네들이 개척한 이 골짜기로 좀 들자 청을 하다.

이럴 때 선량하게? 또는 잘 생긴? 이 외모가 한몫하다. 믿거나 말거나. ㅋㅋ


그래 허락 얻어 그 무인지경 원시비경으로 들다.

계곡을 따라 풍부한 수량의 소, 여울, 폭포.

고만 세상을 잊고 싶어진다.


길,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간신히 이어진다.

“쉭” 뱀도 한 마리 지나가고...

등허리에 적당히 땀이 밸 때쯤

정상 갈 것도 아닌데 굳이 기를 쓰고 오를 필요 있나?

대신 주변 나무, 풀, 꽃, 식생에 눈길을 더 주기로 한다.

드디어 길 사라지다.


죽어도 모르겠다.

혹시 남몰래 내려와 목욕하는 하강선녀는 없나?

쓸데없는 생각도 드는데

대신 내가 탁족, 거풍 한번해보고 싶은 생각이 슬그머니 들더란 것이다.

그래서 다음 몇 줄은 비밀이다.

나는 얘기하지 않았고 모르는 사실이니 안 듣고 안 본 것으로 해 달라.

그래 솔직혀니 말해 탁족하다. 거풍도 했다.

아무에게도 허락받을 데 없어 천지신명의 허락을 받고 ^^

기분이 어땠냐

고는 묻지 마시라. 해본 자만이 안다.

친구 놈이 기회마다 자랑한 피레네산맥 정상 산정호수에서의 거풍???

‘어이, 지리산 거풍한번 해봐봐. ㅋㅋㅋ’


*

낮잠 한숨도 잤다.

역시 오늘처럼. 그 전날처럼.

아침 일찍부터 설쳤고, 술 먹었고, 땀 흘렸고

무엇보다 시원혀니 목욕까지 했으니....잠이 꿀맛 같았다.


쏟아지는 햇빛.

간간한 바람소리, 새소리.

쉼 없는 물소리.

세상은 증발하듯 텅 비었다.


그 정적이 무거워 돌아 나오다.

제까짓 게 안 나오고 베길 수 있나?


“고맙습니다. 잘보고, 잘 쉬고 갑니다.”


“어디, 그냥 가실 수 있남요. 점심 안하셨지유?

먹을 건 없지만 점심 들고 가셔유.”


“아니 괜찮아요. 밥 먹은지 얼마지 않아요.

배도 고프지 않고.”


그러나 막무가네.

토종벌 약 백통을 놓아 꿀 농사를 주로 지으며 부부가 함께 산단다.

사는 곳 주변, 도처에 널린 버찌, 산뽕나무 오디를 따먹다

곰이 좋아하는 음식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위의 열매 외 산 딸기, 벌꿀...

그러고 보니 내 입 주변, 손바닥이 버찌, 오디물이 들어

곰발바닥처럼 커멓다.


아줌니가 상을 보는 사이

아저씨가 나무아래서 산나물 한 웅큼을 뜯어온다.

또 곰취란다.

오늘 완전 곰취판이군. ㅋㅋ. 밥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온통 산채투성이 밑반찬에 또다시 밥 한 공기를 다 먹었다.

곰취쌈은 아까 식당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도록 향이 진하다.

곰치를 그냥 데쳐 무친 것. 쌈싸름한 맛. 곰치를 고추장에 무친 것.

향긋한 맛. 아자씨가 곰취 종류, 구별법을 강의해 주신다.

곁들여 더덕, 마가목, 오가피열매로 담근 술을 또 쥔 아자씨랑

한 주전자나 마셔버렸다.


좋구나. 좋아.

그런데 집에는 은제 가지? ㅋ 

할 수 있나. 마셨는데 깨고 가야지.

다시 밑의 계곡으로 내려가다.

이제 본격적으로 길게 한숨 자다.

오후 세시, 네시.

 

“다음에 지나시다가도 꼭 들르서요.”

연세가 예순다섯, 환갑을 넘기고 거친 농사일, 산타는 일을

주로 하시는데도 외모로는 아직 사십대로 보이는 부부.

내 나이를 묻고 아직은 열심히 일할 때라 하여 그 판단력에

더 마음에 들었든 심신 건강한 촌로. 초로? 아니 지리산 사는 청년.

산나물을 좀 파시랬더니 자신들 먹을 것 밖에 채취하지 않았다하시고

꿀한통 사자니 안사도 되는데 안사도 되는데

몇 번이나 사양하시는 걸 억지로 한통 사

이 世間의 武林으로 돌아오다.


일하러


그러니 일하자.  


아차, 밤나무 이야기, 밤꽃 얘기도 빠졌는데..... ㅎㅎ


(파란색부분은 이상국 시인님 시 '선림원지에 가서?'의 마지막 연)

 

 

 


 

<버찌 물속에 잠들다.>


 

<솔이끼 -암? . 별모양 꽃이 보이시나. 원본에는 보이는데^^>


 

<솔 이끼-수? 암수가 바뀐지도. 또 이름이 솔이끼가 아닌지도...>


 

<비밀>


 

<얼커렁 설커렁 다래>


 

<엉클어진 함박꽃나무>


 

<설클어진 산딸나무와 모르는 열맨지 꽃인지를 단 나무>>


 

<아그배?>잎새 수피가 배나무를 닮아 멋대로 추정


 

<토종 벌통들>


 

<산뽕나무 오디> 무지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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