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롱이마다 멈추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한다.
정상휴게소는 이제 영업도 하지 않고 썰렁하니 자물통에 채워져 있으며
등산객을 싣고 온 관광버스만 몇 대 나란히 마당에 부려져 졸고 있다.
고개를 넘어도 여전히 봄이고, 온통 봄이다.
외려 더 하겠지.
깊고 높은 골짝들도 어디다 그런 열정들을 숨겼는지
마지막 물기 한 방울마저 모두 모아 산 벚으로 토해내니
그 갈증, 그 열기에 목이 타고 숨이 막혀 정신마저 아득해지는듯하다.
아무데서나 멈추어 보고 싶은 것 다 보고 할 짓을 다 해도
아무도 뭐라지 않는다. 이 여유와 한적이 또한 선경 아닌가.
중간 중간 고개 길에 세워진 차들은 아마 이른 산나물이나
두릅을 채취하는 산 꾼들 차이리라.
고도를 낮추어 가자 나무들 새순이 이제 제법 푸르르다.
자작나무· 낙엽송·노간주·신갈·오리·개나리...
고개를 다 내려와 역시 한가한 길가 과수원을 무작정 들르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나무그늘아래 나이든 주인이 혼자
일을 하고 있다. 나무도 주인만큼 늙었다. 허락 없이 나무를
마음껏 쳐다본다. 주인도 헛기침 한번 없다. 사과나무 고목.
꽃은 이제 망울져있다. 한 일주일 후, 비가 와 과수원 풀들이
초록빛을 더하고. 그 속에서 사과 꽃이 핀다면.....
<봄 과수원으로 오세요.
꽃과 촛불과 술이 있어요.
당신이 안 오신다면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또한, 당신이 오신다면
이런 것들이 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어느 작은 잡지 표지에 난 외국작가 것을 펌>
분홍빛 엷은 화심. 사과 꽃.
봄에는 과수원에 갈 일이다.
사과 꽃 피는 봄 과수원, 그 과수 나무 아래 가 기다릴 일이다.
자두 꽃은 푸르다. 유백색 푸른빛.
배꽃은 희며 그 흼은 박색 소색 창백한 눈물의 흰빛이 아니라
늘 연둣빛 잎이 배경이 되어 언제나 크고 건강하고 꿋꿋하다는
느낌으로 내게 작용한다. (알고 보니 연둣빛 화심 탓이 크네. ^^)
다음은 벚꽃. 희지만 엷은 홍조가 살짝, 끝까지 남아있으며
좀 더 농도가 짙은 것이 사과 꽃 -그러나 늘 선명하고 깨끗해 산뜻하다.
다음은 모과 꽃.
그 다음이 아마 중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복숭아 -도화이다.
무릉도원, 도화선경.
그러나 우리는 도화색, 도화살. 요즘엔 도색잡지 도색필름 등
한참 낮춰 대체로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속안까지 깊게 물든 그 붉은 기가 진달래와는
사뭇 유가 다른듯해 내심 약간 질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구분.
쓸데없는 분별심, 우리의 잘못된 선입견, 편견 때문이리라.
도화는 그냥 도화. 분홍색 작고 여린 복사꽃, 봄꽃일 뿐.
(함에도 조팝은 창백하고, 탱자는 엷으며, 이팝은 왠지 화려하고,
어떤 기품이 그 흼에 스며있는 듯 하다.>
하고 싶은 봄꽃이야기 -흰색. 아그배나무, 야광나무, 함박나무,
쪽동백나무, 귀룽나무, 때죽나무, 팥배나무... 많고도 많지만.
그 중에도 야광나무, 밤에도 빛이 날만큼 희디희어 ‘야광’이란
이름까지 얻은 야광나무 흰 꽃 이야기는 꼭 하고 싶지만....
<목 타는 산 벚>
<가로수 -수피 흰것이 자작>
<과수원>
<사과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