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차의 계절

우두망찰 2014. 11. 12. 13:15

 

 

 

 

 

 

 

 

 

 

 

 

 

 

 

Accident 3

 

 

“자 지금부터 계산을 한번 해 봅니다”
93-7은? 86
거기서 다시 7을 빼면 79
계속 7을 빼나가십시오
72
65
.
.
.
24곱하기 4는?
57나누기 3은?

 

 

 

 

 

 

 

 

 

 

 

다음 단어를 듣고 생각나는 대로 다 말해보세요
다람쥐
나그네
무궁화
수선화
백합
조각배
.
.
.
다시 한 번 해보겠습니다.
다람쥐, 나그네, 무궁화, 수선화, 쳇바퀴 ....

 

 

 

 

 

 

 

 

이 그림을 자세히 보십시오.
자 됐습니다.
책을 덮고 조금 전 본 그림을
똑 같이 한번 그려보세요.

 

 

 

 

 

 

 

지금부터 이 글자를 죽 한번 읽어 보세요
빨강
파랑
노랑
노랑
빨강
노랑
파랑 파랑......

 

 

 

 

 

 

지금부터는 글자를 읽지 마시고
글의 색깔을 말해보세요
(빨강)노랑
(파랑)빨강
파랑
파랑
노랑 노랑

 

 

 

 

 

 

올해가 몇 년도지요?
오늘은 며칠이구요?
요즘 기분은 어떻습니까?
건강은 전반적으로 어떻습니까?
나이, 학력, 가족력, 하시는 일...
삶이 행복합니까?

 

 

 

 

 

 

질문은 2시간여나 계속되었다.
이런 것도 물어보나 하는 유치부터
제법 골머리를 써야하는 엉뚱한 것 까지

 

자 이제 마쳤습니다.
특이소견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 생각되시면 독서가 일정부분 도움이 되실 겁니다.
언어구사를 비교적 잘하시니 글을 써보는 것도 좋겠구요.
뇌 MRI촬영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추가로 더 검사가 필요할지는 며칠 후 전문의 선생님께 들으시구요
오늘 장시간 대답하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며 그녀는 쌩긋 웃었다.
아닌게아니라 긴장한 탓인지 약간 힘이 들었고
끈을 놓자 비로소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 건 몇 년 전부터였다.
지명이나 이름, 명사는 물론 명징한 단어. 맛깔난 수사. 맞춤법의 혼란
상대는 반가이 인사를 하는데 얼떨결에 반죽은 맞추지만
‘도대체 누구지?’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가장 문제라 생각되는 건 밥벌이 수단, 계약금액을 종종 잊는다는 거.
물론 중요한거야 그렇지 않지만 어느 경우엔 기백을 넘어 기천까지
메모해 놓지 않은 구두합의인 변경금액인 경우에는 ‘그게 어찌 생각나지 않을까?’
당황할 정도로 불과 두어달 사이 금액도 아리까리, 긴가민가하니
‘이래서 사회활동이나 제대로 하겠어?’
은근히 걱정도 되던 것이었다.

‘조기검진으로 약물치료를 하면 진행은 상당히 늦출 수 있다던데’
지인 권유로 예약하고 딱 1년만의 진료였던 것이다. 

 

 

 

 

 

 

병원은 엄청나게 변해있었다.
거대규모인데도 십수년 사이 건물도 몇 개나 더 늘어
계속 몸집을 불리고 있었고, 심심찮게 외국인 환자
무엇보다 처음엔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돌던 그 대공간이
인산인해. 병원인지 소풍놀이턴지 시장인지 분간치 못할 정도로 사람이 들끓었다

가만 분명 여기다 차를 세웠는데. 왜 없지?
정신 차려. 너 정말 문제 있는 거 아냐?  다시 한번 차근차근 생각해 보라구
맞아. 분명. 기억한다고 기둥 숫자까지 확인하고 조기 엘리베이터를 탔잖아
진땀이 났다.
“왜, 무슨 문제가 있으세요?”
“분명 여기다 차를 세웠었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차량위치를 확인해드리겠습니다.”
구신이 곡할 노릇이다.
분명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자동차가 스스로 시동 걸어 자리를 옮겼을 리도 없고
누가 견인하지도 않았을 지하주차장.
“아 고객님 차량은 한층 위 지하2층 바로 위 자리에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 ㅠㅠ. 뭐야 이건 또?’

 


 

 

일주일 후

 

오후 3시 반이랬지. 담담의사는 누구고.
일치감치 찾아갔다.
접수부 앞
“등록번호를 말씀해주세요.”
등록번호는 모르겠고 오늘 오후 3시 반 김 00선생님이십니다.
“다시 한번 확인해 보세요. 문자안내가 갔을 텐데.”
“문자 받은건 없구요. 예약시간과 의사성함은 확실합니다”
마침 창구직원이 인턴 수습사원이었던가 보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고참 사원이 돌아와 성함이며 주민번호 앞자리를 넣자
“선생님, 선생님 예약일자는 오늘이 아닌 다음 주 이 시간인데요.”

 

 

 

 

 

 

그야말로 맨붕이다.
쩝, 분명 사단이 나긴 난 모양이군.
여러 생각들이 스쳤다.
그 사이 가을은 점점 깊어갔고~

 

 

 

 


다시 1주일 후
그 1주일은 이외로 평온했다.
여행도 한차례 다녀왔고
샛노랗던 회화나무 잎사귀는 거의 져 있었다

 

 

 

 

 

 

의사가 내 기록을 검토한다.
십 수년전 이 병원이 개원했을 때부터 내 건강에 좀 큰 이상신호가
있을 때마다 찾아와 남긴 십수 차례의 기록들
그리고 보고서 하나
그 안에 종합한 막대그래프로 정리된 표하나
그건 대체로 10개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각 항목마다 10분 율로 나뉘어진 것이었다.
“이걸 보십시오. 선생님은 열 개 항목 모두 다 양호합니다
그것도 그래프를 보시듯 이 선이 기준선인데 모두 훌쩍 넘겼으니
썩 양호하다 할 수 있습니다.“
기준선이라 한건 10분율 중 4쯤에서 종으로 죽 그어져있고
위의 9개 항목은 대체로 8~9수준
마지막 한 항목만 5~6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이 마지막 항목은 낮아 보이는데 이건 무얼 나타낸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도 기준을 넘었으니 걱정할 필요없겠습니다.
다만, 이건 정신적 멘탈 조사이고, 물리적 뇌 검사는 MRI를 해봐야하는데
본인이 원한다면 모를까 이 정도면 굳이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이 일로 병원을 다시 나오실 필요는 없겠으며 처방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너 머리, 소프트웨어는 이상 없으니
물리적인 뇌, 하드웨어구조는 알아 볼테면 알아봐라 란 말 아닌가

 


 

 

 

 

 

 

 

 

 

 

 

헐, 내가 짱구인가?
그 비싼 돈 들여 기분 안 좋고 공포스런 통속에 들어가게
룰루랄라 나오려는데
“다만~”
“???”

 

다만이라니. 또 뭡니까? 하고 싶은데
방사선과 전문의 소견상 흉부 X-선 사진상
폐하부에 쌀 알 만한 반점 몇 개가 보이니 재촬영을 해보는게 좋겠다는 의견이며
혈액 검사상 혈당수치가 기준치를 살짝 벗어나 올라있으니 이도 다시
전문의와 상의해 보는게 좋겠다는 말씀

‘쳇, 불과 4개월 전 직장 종합 검진시에는
다 이상 없다했는데,...

이걸 고만 무시해? 말어? 

 

이러며 생은 굴러가는 것이니~

 

 

 

 

 

 

 

 

 

 

 

 

 

 

 

 

*****

비록 사이버상이지만 멀리있는 10년지기

호형호재하는 후배가 계절에 맞춰 차를 보내주었다

출근해 커피를 한잔내리는 재미도 재미려니와

하루종일

우려낸 차맛을 보는것도 그 우련한 차빛을보는것도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다.

"어이, 차 잘 마시겠네"

인사를 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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