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살면서 편지 쓸 일이 생겼다.
편지라?
어떤 소통부재가 있길레 그런 고색창연한 방편을 떠올렸을꼬?
온 마음을 다 모아 생각하되
먼 행성에서 지구를 건네 보듯 객관성을 가질 것
선문답, 잠언 류 말고 구체적이고 직접적일 것.
차분하되 애정을 가질 것
그래 있는 살림 없는 살림 다 싸 짊어지고 찾은 이곳
(나의 비밀 아지트쯤 되겠다.)
지난 밤 천문
기대대로 여름 한가운데인데도 날씨는 그리 덥지 않았고
바람까지 흔쾌히 나뭇잎 웃을 만큼 불어주니 더할 나위 없었는데
정작 중요한 것.
편지를 시작하고 2시간쯤 겨우 1/5쯤 마쳤는데
가만 안 있겠단다. 지금 당장 온 에너지, 연결하지 않으면~
이럴 수가 있는가?
적어도 편지쯤에서는 네다섯 시간 버텨줘야 하질 않겠는가?
와이파이도 안 되고 인터넷 연결도 안 되니 노닥거리지도 않았는데
(이래서 또 패드가 나왔겠지. ㅠㅠ)
허무해져 누웠다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섰다. 잠자다 말다
맴 돌아야 겨우 두 평 안 되는 쪼가리 위지만
혹시 몰라 내놓은 책 한권은 결국 배낭에 넣지 않은게비고
집에는 늦으막이 들어간다 미리 선고해 놓았고
무료 무심 따분 바람.
하늘 구름 적당 얼룩 음악
날씨에 따라 쇼팽 음표는 가벼이 날아 다녔고.
어떤 경계 방어 없이 던져진 얇은 바닥을 통해서는
엷은 풀 비린내, 서늘한 땅 기운.
어쨌거나 갈증도 안 났는데 심심해 마신 얼음물로 못 견딘
내 오줌보 작음의 핑계를 대며 저물기 전 일어섰으니
바리바리 싸 왔지만 이 모든 것 애물단지 맞다.
한사람 아니 한 번 오줌누기보담 못한
자유를 구속하는 소유 아니 욕심, 의심.
누가 가져간다고 100m거리 화장실도 못 갔다 오는
너의 쪼잔함. 바로 네 문제.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 좋은 시간 다 보내고
여름은 쉬 시원해지지 않을텐데
정작 목적, 편지는 언제 쓸꼬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