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밤 3/4.../끝

우두망찰 2013. 6. 4. 13:40

 

 

 

 

 

 

 

 

 

 

 

 

 

 

 

 

 

 

 

 

 

 

 

꽃 분홍

예쁜 신발을 신은

꼬마요정 아가씨가 뛰어갔다.

마치 긴한 볼일이라도 있는듯

열심히

 

 

아이가 지나간 자리로

초여름 녹음 그림자와

하얀 오솔길이 다시

오후빛에 길게 누운 조용한 공원 

 

아이는 일본 만화영화에서

금방 걸어나온듯 차림도 모습도

이쁘고 앙징맞아 약간 비현실적이란

생각도 드는 순간

타닥타닥

 

 

아이가 다시 뛰어왔다.
나를 지나져 저만치 앞서간다.
신발이, 빗겨 맨 가방이, 덧걸친 얇은 점퍼가 세트인양 비슷하고
보색 대비로 순하고 연한 챙 모자, 하늘하늘 원피스, 종아리가

아까보다 더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네~다섯?
예쁘기도 하구나!
 

 

 

아이가 가던 길을 멈추고 멈칫댔다.
왜일까?
곧 어깨를 들썩이는 듯 하더니
‘아빠~아’
울음을 터트린다.
낮고 겁에 질린 목소리.
순간 아이마음이 구름처럼 그늘져 스친다.

 

 

 

“아가야 그리로 가면 안돼.”
아이가 돌아본다.
눈물이 가득하다.
아이는 순간 당황하고 방향을 잃어

인적 드문 외진 숲길로 계속 들어가려 했다.
주위를 둘러본다.
붐비지도 썩 한적하지도 않은 드문드문 소풍객들.
인근 가족단위 소풍객들.
하지만 이 작은 파장에도 선 듯 아이를 찾는 눈길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가야 그리로 가면 안 된단다.”
‘여기 잠시 있어보렴.’ 이 말은 하지도 못했는데
아이가 다시 울먹인다.
저으기 당황스럽다.
한걸음 더 다가가야 하나?
그럴 형편이 아니어 잠시 망설이는데
“아빠 아니세요?”

 

 

 

 

내가 아이 아빠면 좋기는 하겠다.
하지만.....
“아닙니다. 아이가 잠시 길을 잃은 모양입니다.”
인근 소풍객이다.
또래의 자식을 데리고 소풍 나온 지근거리 젊은 부부
곧 그 젊은 아빠가 아이에 다가가 타이르고 달래고 추슬러 안심시키는듯하다.
솜씨가 자연스럽고 능숙하다.
“애야. 아빠나 엄마 전화번호 알아?”
커다란 전화기를 꺼내 아이에게 대화를 시키고 주변시선도 집중되어
아, 이제 곧 다시 제자리를 찾겠구나.
안도하고 자리를 떠났다.

 

 

 

약간 높은 둔덕 위 자리
나무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는다.
목련, 마로니에, 은행, 느티...

이 나무들은 모두 우쭐우쭐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잎이 많아 그 아래 그늘이 짙다.
그 짙은 그늘아래 파랗게 이끼가 돋아있다.
돗자리 아래로 이끼의 쿠션이 느껴진다.
오후 다섯시. 조용하고 한적하고 평온한
아직 여름 햇볕은 성성하다.

 

 

 

 

 

 

 

 

 

 

 

 

 

2

 

 

 

 

 

 

 

“아악”
외마디에 가까운 비명이 나른한 공기를 찢었다. 
뒤이어 참을 수 없는 오열
단장의 아픔이란 이런 걸까?
마치 심장을 토해내 듯한

고통에 겨운 절규를 움켜지듯 두 손으로 쓸어 담아

당사자가 출입문을 빠져 나간지 1분.

아니다. 겨우 2~30초.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미쳐 알아채기도 전 상황은

창졸간에 벌어지고 끝나있었다.

주말 오전이던가?

 

 

 


서울서 부산가는 ktx열차 안은 빈자리가 없을 만큼 꽉차있었다.
간간한 도시락 김밥냄새. 하품냄새.

너와나의 약간 숨죽인 불편. 답답한 채취.

전동열차 징~한 초음파 소음. 모든게 나른하고 따분한
이 공간은 좀 전의 그 소란을 금방 삼켜버리고 다시 물속인 듯 가라앉는데
복도 쪽에서 잠시 좀 전의 오열의 여파가 간간히 들려왔다.

 

 

 

 

분명 누군가 그 순간 이 세상을 떠난게야.


남편일까? 자식일까?


부모는 아닐 것이고
불의의 사고임이 분명해
외마디 비명을 속에다 담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이 분명해
본능적으로 몸이 알아 그 화기를 뱉어내었으니.....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한다는 연락을 받고
한 가닥 희망의 끈을 간절히 붙잡고
허공인듯 열차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들려온 소식
정말 듣고 싶지 않던 마지막 소식.

 

 

 

 

한 시간쯤 후
D시에서 내리며 어쩔 수없이 눈길이 가 주변을 가늠해보니
4~50대 아주머니.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듯
공허한 눈초리. 탈진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는데...


 

 

 

 

 

 

 

 

 

 

 

 

 

 

3.

 

 

 

 

 

 

3.
장미가 피는 계절
일요일 아침
전화가 온 것은 5시, 여명이 가셔 이미 밝은 아침이었다.
공기 중에 가득한 꽃냄새. 미쳐 잠이 덜 깬 혼몽함.
고요한 아이 숨소리. 젖 냄새. 간밤을 지나온 방안풍경.

달쩍지근함. 이 모두가 버무려진 생활의 냄새.
맞아. 그땐 30대였지.

 

 

 

 

 

“아빠가 움직이지 않아요.”
수화기를 타고 넘어온 약간 울먹이듯한 조카아이 목소리.
“??? .......”
평온하고 일상적인 휴일 아침
째각째각 언제나 여일하여 존재감도 없던 시계 소리가 마치
느린 화면처럼 서서히 멈추어 서는 그 묘한 순간 정적.
‘뭐지?’
....... 
‘설마’
갑자기 비가 오면 좋을 것 같은 건조한 공기

 

 

 

 

 

하지만
사단은 이미 벌어져 있었다.
아니 벌써 끝나고 지나간 후였다.
돌연사. 허트어텍. 허혈성 심장마비. 모두 처음 들어보는 말.
그 어처구니없고 어안이 벙벙하던 시절. 6월부터 8월 사이.
그 여름은 내게 특별히 길었다.
그 아침에 잡아보았던 형 손의 감촉.

주머니에서 나온 유품인 사탕 한 알.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박하사탕 한 알의 표정. 말. 천 마디 말을 삼킨 말.
밤새 안녕? 화인처럼 막막히 내 인생에 아픔이 새겨진 날.

 

 

 

 

 

그 형이 기일이 며칠 전 지나갔다.
그 아침 전화를 걸었던 중학생이던 조카는 이제 그만한 딸을 둔 엄마가 되었고
우리 모두는 그 날의 아픔을 잊고 마치 축제인양 모두 웃고 떠드는 날이 되었다. 
살면서 이런 경우는 격지 말아야지. 우리 모두.
하지만 그런 아픔을 한 번 더 격었다.
그러나 그 역시 흘러갔다.
- 흘러가 잊혀진다. - 
위대한 이 자연의 순환. 섭리.

 

 

 

 

 

그 해 늦여름. 대강의 일들을 정리하고 뒷수습을 마칠 즈음
피곤에 지친 심신을 우연히 숲속 벤치에 누이게 되었는데
그때 맛보던 그 뜻밖의 평안함. 청량감. 위무감.
‘너 괜찮아? 곧 좋아질거야. 이제 다 됐잖아. 애썼어.’
내겐 생명수 같았다. 그 숲의 위로.

 

 

 

 

 


 

4.
이제 성성하던 여름 햇발도 설핏하다.
나무의 그림자가 더욱 길다. 어둠이 내리기 전
인간의 마을로 돌아가야지.
오늘 그 아이. 곧 부모를 만났겠지.

한동안 그 품에서 불안이, 설움이 가실 때까지 마음 놓고 울었겠지.

싫컷 울었겠지.
그리하여 앞으로 가위에 눌리듯 악몽을 꾸듯
깜짝깜짝 놀라 잠이 깨는 일은 없겠지

없을테지
없어야겠지

 

 

 

 

 

 

 

 


5.
Mighty bright
강력한 불빛
말 그대로 아주 작고 가볍고 쓸 만한 독서 등
사진에서처럼 책갈피에 끼워 쓴다. 책은 이병률이 쓴 여행기
(분홍빛에 대한 묘사가 눈부시다.)
몇 년? 전 대형서점 팬시점에서 샀는데

잊어버리고 있다 우연히 발견, 요즘 내 밤을 밝혀주는

아주 좋은 벗이 되었다.
가끔씩 잠이 오지 않는 나이가 되었으면

옆지기에게 방해가 되지 않고
오래들어도 무겁지 않으며

필요부분만 필요조도로 밝혀주는 아주 쓸만한
추천해도 좋은 물품이 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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