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장마7

우두망찰 2010. 7. 8. 20:15

 

 

 

 

 

 

 

 

 

 

 

 

 

 

 

                       나는 나무 한 그루를 심고 싶었다.                     





나는 나무 한 그루 심지 못했다

내 취미가 나무 심는 것인데도


나는 무얼 하며 살았을까?


생각해 보면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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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後記 >

- 원래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처음 눈을 맞추고 서로 웃었을 때

  어쩌다 혼자 깊이 생각해 볼 때에도

  나는 나무 한그루를 심고 싶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나무 한그루 심질 못했다.

  나무를 심는 기쁨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

  얼마나 가슴 뿌듯한 것인지 잘 알면서도


  나무는 보이지 않게 소리 없이 자란다

  나무는 말없이 속 깊게 자란다

  세상 소중한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하게 자란 나무를 대할 때나

  울창한 숲에 들어 그들의 향기를 맡을 때마다

  나는 한 그루 나무를 심지 못한 나의 잘못을 뉘우친다.

  그것은 내 인생이 잘못되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쓸쓸하게도 한다

  

  그렇다

  한 그루 나무를 심지 못한 인생이 무슨 값어치가 있을까

  한 그루 나무를 키우지 못한 영혼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나는 지금도 생각을 한다

  나무를 한 그루 심는다면 참 좋을 것이다

  나무를 한 그루 심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세월은 가는데

  내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늘 푸르게

  푸르게 아쉬움으로만 자란다.  -


 



*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더 전 어릴 때는 친구 녀석 하나가

전국일주를 거의 무전여행 수준으로 하고 그를 바탕으로 군대를 갔는데

그것을 못하고 청춘을 보내버린 나는 녀석이 전하던 바람 같던 말

수렴동 얘기를 늘 가슴 한 켠 잠재된 의식으로 품고 살았다.


다큐의 내용은 대체로 그 계곡에 의지한 오세암이나 봉정암에 이르는

그 길을 다니는 사람들 얘기였다.

또한 근세사에 한 획?을 그은 전직 대통령, 민족운동을 열심히 하였다는

승려시인분도 그곳하면 쉽게 떠오르고

지금은 작고한 이문구님의 매월당 김시습이란 소설에 김시습이 차 솥 단지 하나

나귀에 싣고 관동지방을 유랑하며 마지막에 설악 마등령을 넘으며 흘리던

눈물이 생각난다.

 

 

 

 

 

 

 

 

 


*


가을과 겨울사이



어제 아침 백담사 계곡을 갔었드렙니다.

비가 오고 있었고 가을이었지요.

약간은 철 지난 단풍이 온 산과 계곡을 물들이고 있었답니다.

가을이었으니 당연한 게지요.


그곳은 정적도 적막도 아니게 참 고요해서,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해서 실비도 참 가지런히 내렸답니다.

물기 머금은 소소한 공기, 대지는 촉촉이 젖어서 부드러웠고.

한걸음 물러선 단풍은 보다 원숙해진 모습으로 너그러워 보였습니다.

상쾌했었고 고즈넉했고 차분했습니다.

그리고 낙엽냄새가 진했습니다.

비가 오고 있었고,,,,가을이었으니,

이 또한 당연한 게지요.


저도 참 오래도록 고요한 마음으로 그 산길을 걸었답니다.

모롱이를 돌때마다, 새로운 단풍 터널이 나타날 때마다

탄성은 조용히 마음의 파문으로 번지고, 숨죽인 화려는

그윽한 느낌으로만 다가왔겠지요.

긴 시간, 긴 거리를 함께하며 몇 마디말만 오간걸 보면

아마도 우린 비슷한 느낌이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비가 와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별하지 않더라도, 일정한 거리로 벌려 정지된 조각 군상의

모습 같더라도 모년 모월모일. 우리는 그 공간에 함께 있었습니다.

같은 공기를 숨쉬고, 같은 하늘아래 잠시 함께 있었습니다. 큰 인연입니다.

그 거리로 벌려선 넉넉함으로 친구들께 따뜻한 우정을 보냅니다.

동반자, 반려자, 또는 ‘절친한’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그건 쑥스런 것이지요.

삶의 길에서 만나 잠시 길동무가 되고 동행이 된 친구들께 감사의 정을 실어 보냅니다.


저는 그게 좋습니다.

굳이 함께하지 않아도 일정거리 떨어져 가끔 바라보고 가끔 느끼며,

때론 가까이 때론 멀리.... 참 좋지 않아요?


나무들을 봅니다.

널찍이 벌려서 여유로운 저마다 아름다운 나무들을 봅니다.

함께 어우러져서 더욱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나무들을 봅니다.

나무들은 네 탓 내 탓을 하지 않지요. 시시비비, 분별도. 그래서 무심하지요.

그래서 나무처럼 무심하지요.

그러나 저마다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나무들을 봅니다.

아름다운 생명들을 봅니다.


가을이었습니다. 


사람사이를 봅니다.

사람사이를 돌아봅니다.

사람관계를 생각해 봅니다.

사람도 나무처럼 혼자서 꿋꿋이 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 사람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봅니다. 사람 운명이 그런걸요.

그러나 무심히, 나무들처럼 무심히 서로 관심을 갖고 둘러보아야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함께 있어 아름다운 나무처럼, 사람사이도 바로 그런 사이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봅니다.


가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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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기별 없이 문득 가을여행에 초대해주고

술 사주고, 밥 사주고, 함께 잠자고,

함께 어우러진 시간들이 좋았습니다.

조금쯤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조금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 만큼 빈, 마음의 여유로움으로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속에 그냥

빠져 있었던 순간들이 참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속초부두. 그 구질구질한 갯가동네, 갯배 부두.

물 묻은 선술집에서 물 묻어나는 어둠을 배경으로 주고받은 의미 없는 말들의

시간들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 세꼬시 회맛 정말 쥑여 줬습니다.

언제 한번 먹으러 갑시다.        



<어느 해 친구 사무실 나들이행사에 초대받아 계곡을 함께 걷고 나서 그 멤버들게 보낸 편지>

 

 

 

 

 

 

 


*

이리하여 걸어서 두어번 나도 백담사까지는 다녀보았는데

거기까지 

항상 백담사에서 더 깊은 안으로 사라지던 작은 오솔길에 대해 

연모만 간직하고 있다, 지난 유월 처음 그 길을 가보았던 것이다.

 

 

 

 

 

 


그날 

숲으로 난 그 계곡길 10여 키로를 걸으며 참 많은 것이 생각나고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그 첫 번째는 그 길에 대한 찬탄과 길이 현재로 이어지기까지의 도정에 대한 상상

다음은 매달 한번씩, 1년을 다녀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작년에 교동도를 그리하리라 생각한적 있었는데 그리하지 못해

그곳은 이제 ‘계절에 한번’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생각해보면 불과 수십년 전까지 서울에서 여기로 이르는 길은

왕복2차선 외줄기였었다.

하므로 출발하여 통상 너댓 시간은 조히 걸려야 올 수 있었던 곳

그 용대리 입구에서 다시 두 세시간 걸어 백담사

거기서 다시 십수키로를 더 들어가야 위의 봉정암이 나온다.

그러면 새벽에 출발하여 바지런을 떨어도 꼬박 하루가 걸려야 갈 수 있었던 곳.

지금도 그러한데 그 시절 이 골짝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을까? 인제원통

용대리 까지만도 첩첩산중. 다시 백담사까지 닿기에도 세상의 끝인듯 했을텐데

거기서 다시 십 수키로를 더 걸어 들어가야 하다니

이 멀고 험하고 외진 곳을 왜 사람들은 그리도 끈질기게 다니곤 했던 것일까?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30분 간격, 버스 1대분량으로 골짝으로 드는 사람들>

 

 


번뇌와 욕망. 원망과 질투. 갈등과 아픔.

세상과의 단절. 단절의 속리俗離. 연緣과의 거리를 두자면 시간이 필요하고

내속에 삭음질이 필요했을 것이다.

내 안의 가득찬 이 모든 무거운 것들은 하염없이 걸으며 걸으며 뒤집어보고 되짚어보고 

곱씹어보고 

돌아보고 응시하며 결국은 잘게 부수어 한줄기 바람결에 흘려버리니

한줄기 맑은 계곡물에 씻어버리니 비로소 가벼워지는 마음 맑아진 정신.

이 길이 바로 삼천배 수행이구나.

비우고 비우고 난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효험이 없을리 없을터

부처님이 외면할리 없을터

그래서 얻게 된 명성 <거기 부처님은 참 용해!>


아니었을까?

고행의 수행길이 꼭 스페인에만 있지는 않을터

 

 


 



*

그날의 걷기를 마치고 다시 용대리 버스차부 앞 식당

해가 기울어가는 오훈데도 드는 사람만 있고 나는 사람이 없어

“ 그 암자에 하루 방문객이 한 2백명은 되는갑소? ” 식당 쥔에게 물으니

그 냥반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하는 말

“ 이백명?  많을 땐 2천명, 3천명까지 이를 때도 있는디~”

“ 아니 무슨 암자가 얼마나 크길레 그 인원을 다 수용한다 말이오? ”

“ 앉아서 서로 등을 기대고 의지해 하룻밤 새우잠을 잔다하오. 하지만 요새는

인터넷 예약으로 하루 상한 1500명까지만 받는다니 예약 않고 가면 꼼짝없이

한뎃잠을 자야 하는거라우.”


“!!!!!”

 

 

 

 

세상 참 살기 힘드구나.

사연도 많구나


그 길을 이번에 함께 가보기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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