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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

우두망찰 2006. 3. 31. 21:02
 

순간의 실수로 가리 늦게 범죄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일방통행 외길을 잘못 들어 얼떨결에 광양 컨테이너 부두에 이르다.

부두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데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고

대신 무시무시 큰 트럭들이 ‘부앙’ 경적을 울리며 위협하며 지나친다.


갑자기 스필버그 데뷔 영화가 생각나고 (끝없이 쫒기는 현대인의 심리

-강박관념을 낮선 트럭 추적으로 영상화 한 영화)

네비게이터 이때 안 써 묵고 뭐하는지 몰러. 비로소 하동을 누르니.

길 찾기 만은 道士란 평소 자존심 금간 건 둘째 치고, 순전히 감각적

내부본능과 첨단 위성신호 외부정보가 서로 헤게모니 다툼을 하는지

점입가경. 난데없이 광양 제철소 정문 지나고, 임직원 사택, 공원, 아파트

단지까지 뺑뺑 돌아서야 겨우 진월 망덕 넘어가는 강변국도에 서다.

띄엄띄엄 숙소불빛. 거기서라도 멈출걸.

제기랄. 때 맞춰 변도변 둘째 시디가 침울하게 끝나다.


위허위, 굽이굽이 산굽이를 돌고 돌아 섬진강 다리를 넘으니

시간이 아홉점? 열점? 주위는 물먹은 어둠인데 가로변에 숙소불빛은

눈 씻고 봐도 없고, 제첩국 입간판 불빛만 군데군데 요란하다.


오매불망, 일편단심. 드디어 숨겨둔 그 애인 몸매 조망이 완벽할 

것 같은 풍광 수려 강변 xx호텔 문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열다.

고요~


썰렁. 이상한 사람 다 봤다는 듯 로비를 지키던 종업원.

“벌씨로 다 찾는디요. 광양으로 다들 자러 나갔어요.”

“???........으음, 그럼 구례부터? ”

완전 촌놈 다 됐다.  배도 고프고.~


다시 에잇.

사나이 지나온 길 후회는 엄따. 돌아가지 않으리.

이번에도 너를 몬 만나지만 언젠가는 기회가 닿겠지.

그러고 보니 가로연변, 숙소가 없는 게 아니라 간판불빛을

모두 꺼버려 안 보이는 거더라. 다 찾다는 반증, 귀찮게 하지 마란 마리지? 

그러게, 붐비는 곳은 안 된다 했잖여. 


구례 지나고... 지난번처럼 지리산 온천지구가 생각났지만

여기가 그러니 거기 또한 불문가지..

이 밤에 산을 넘기는 더더욱 그렇고. 어쩐다?

한번 오기 결코 쉽지 않은데 한수 이남 제일이라는

이 강산 수려 구간을 부러 눈감고 외면해 지나는 꼴이라니.....



*

아갈 수 없다면 다음은 남원이다.

그래 이번 길은 이 산도, 애인도 나를 거부하는 거야.

순순히 마음 고쳐먹고 남원에 이르다.

시간도 이윽하고, 고생도 그쯤에서 끝났으면 그나마 또 얼마나 다행이련만.

이건 또 뭔 일인가?        


시내를 두 번이나 돌았건만 보이는 불빛은 어찌 하오리까, 여인숙

수준의 누진 곳뿐이다. 할 수 없이 지나는 택시를 잡고 도움을 청하다.

그런데 그 기사님, 내가 일삼아 두 번이나 돈 그 강변을 가리키지 않은가.

자세히 보니 여기도 불 다 껐네. 허걱, 전부 숙소 -여관들.

그렇다면 혹시? 불길한 예감이 정수리를 휙 스쳤지만

설마하고 첫 번째 추천 관광 지구로 드니, 역시나.


도대체 이기 무신 일이고. 허겁지겁 두 번째 추천 터미널 주변으로 가니

비로소 순천, 광양서 내가 그리 매몰차게 외면한, 것도 겨우 하나 남은

그 요란 요상 불빛이 얼마나 반갑든지...    


세 번째 시디는 언제 끝난지도 모르게 끝났는데

분명 바가지가 분명한 그 수부에서 수작을 끝내고 나오는 그 짧은

사이에도 연이어 차량이 다섯 대나 들고....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었는데, 저녁도 못 먹고 그날 하루 피곤한 심신을

잠시 쉬려 누웠다 나도 모르게 잠드니.

다음날 아침


그랬거나 어쨌거나

남원 왔으니 추어탕은 먹어야지.


눈뜨고 보니 주차 차량 거개가 강원, 경남 등 외지 번호판.

미처 몰랐다. 본격적 꽃놀이 철도 아닌 간절기, 우리나라 주말

나들이객이 그리 많은지. 숙박수요가 그리 많은지.

대부분 머쓱한 가족 친지 연인 친구사이. 간밤에 지은 죄가 얼마나 많은지

대체로 애써 외면하고 서둘러 피하고 서로서로 어색하니. 하하. 숙박업자 님들.

생각한번 고쳐먹으면 부자 되기 식은 죽 먹기 아닌 것 같으요?

왜, 올 오어 나싱. 五星 아니면 바로 러브호텔로만 치달리시는지?

것도 안 좋고 망하는 쪽으로만 올 인하시는지? 중간을 만들어요. 중간을.

휠씬 싸게. 수더분하게. ‘여관’ 이 글자만 돼요. (안되면 내가 다 책임진다.)



추어탕 먹었으니 부벽루? 아니 광한루나 들려볼까? 

머리 털 나고 첨인데. 변사또 강간객 걸음으로 나들일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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