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이 흐린데
출근하여 雨前 한 봉지를 뜯다.
근 일 년이란 시차를 두고도 진공 포장된
용기 안에 갇힌 향기 입자들이 여전히 또록또록하다.
그 한줄기에 끌려 우선 깊이 흠향하고
알맞게 따순 물을 부어 차를 내린다.
지난봄 밝은 햇살, 건조한 바람. 속속들이 스민다.
오늘처럼 습기 많은 날
이 차와 날씨는 궁합이 참 맞는 것 같다.
*
“나, 학교 안 갈레.”
마른하늘 날벼락도 아니고
불과 며칠 전 여름방학 때까지 일언반구 내색 한번 없던 둘째아이가
문득 내뱉은 2년 전 가을 초입 우리 집 얘기다.
꿈 많은 고1. 도심 속 이색지대처럼 드물게 산으로 둘러싸인
자그맣지만 조용한 마을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장 말 많다는 동네.
높은 빌딩 그늘이 학교 앞마당까지 드리우는 상급학교에 진학한지
겨우 반년. 약간은 다른 이질문화가 분명 있었을 터임에도 아이가
쾌활히 너무 잘 적응하는듯해 이만저만 염려는 그야말로 붙들어 매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아이와 나의 집요하고도 끈질긴 탐색전,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근 한 달간의 회유와 설득. 부녀관계, 나아가 나이마저 접고 유례없이
깊고 진지한? 대화의 장도 여러번 가져보고, 난생처음 학교도 찾아가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변을 총동원 설문도 해보고
그러나 결국은 실패.
“내 꿈을 사마.”
오히려 아이에 설복당해 녀석이 하자는 대로 꼼짝없이
학교 그만두는 그 엄청난 일에 동의하는 무책임한 부모가 되었다.
(이에 관한 2년 전 나의 장편의 주절거림이 있다. ^^)
하여간에 여차저차 검정고시를 거쳐 작년 이어 올해 제 나이에
다시 입시를 보게 되었는데
‘가’‘나’‘다’중 비교적 안전 지원한 이모대 법대는 논술 전 이미 기본
성적으로 사전 합격통지를 받았지만, 들기가 요즘은 우리나라 최고가는
대학만큼이나 어렵다는 그 S교대는 상향지원도 상향지원이지만
써놓고도 논술답안을 시간부족으로 다 옮겨 적지 못하고 겨우 1/2만
쓰다 말았다 하니...
학교, 적성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정작은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물러나야함이 (본인은 물론이려니와) 못내 아쉽고 허탈하던 차
지난 설 전 전날 마무리로 한 참 바쁘던 때였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그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합격”이라고.
솔직히 말해 그 순간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참 감사하다.’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오래도록 머물렀었다.
아이의 적성, 특성을(강한 개성) 생각한다면 입학 성적이 높다 해
마냥 즐거울 일만도 아닐 것이나, 그간 혼자서 한 공부가 대견스럽고
무엇보다 자신의 부족을 자신의 특기(논술/면접)로 극복한 그 결과가
무척이나 고무적이어 기뻤다.
그래 뭐든 할 수 있는 거야. 마음을 다한다면.
그리고 앞으로 네가 살 미래를 생각한다면 정말 그렇고 그런
무난한 웰빙, 적당한 안주가 아니라 이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기대지 않을 시간, 영혼의 자유를 살 기틀을 스스로 마련하였으니
최종적으로 네가 어디를 택하든 날아 보거라. 마음껏.
네 꿈을 펼쳐라.
*
차를 한 모금 마신다.
입안이 개운하다.
입춘, 우수 경칩. 이제 봄인가?
딸아이가 시험 본 날은 13일, 금요일 (언젠가 여기 쓴 13, 내 징크스 숫자의 날)
오늘은 1월 31일, 그 징크스 역전의 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 날.
오늘 기분 좋으니 이제 이 징크스도 풀리려나. GG
이크, 할 일 늘어놓고 사내가 아침부터 웬 수다람. 것도 팔불출로.ㅋㅋ
(위 사진은 2년인가 3년전인가 이맘때 시울님이랑, 또 다른 직업 친구들
프랑스 아이들 둘, 이리 여행간 전남 대흥사 요사채 앞뜰 사진.
뒤
사진은 요즘 내 책상머리 화분에 고개내민 이름모를 잡초싹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