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징크스

우두망찰 2005. 8. 31. 21:07



내겐 징크스가 하나있다.

바로 13이란 숫자와 관련된 징크스다.

시대가 디지털인가 뭔가로 바뀌다보니

예전엔 가끔씩 달력에서나 마주치던 숫자가

요즘은 도처에서 만나게 되는 게 온통 이 숫자 판이다.

아침 잠자리 머리에서도, 손목에도, 탁상에도, 핸 폰에도, 자동차에도

어찌 이 뿐이랴.

TV에도, 라디오에도, 비디오, 오디오, 웬만한 가전품, 거리의 전광판,

도로의 거리 표지판에서도 온통 숫자 투성이니....

 

그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건

바로 내 자동차에 달린 시계와 핸펀 시계의 숫자이다.

아침에 출근하려 자동차 시동을 거는 순간 살아나는 그 바로 코앞

시계 숫자가 13분, 뭐 이리 가리키면 괜히 마음이 찝찝해진다.

그래서 얼른 시선을 돌리고 안본 척, 못 본 척 한다.

아니, 13에 관련된 종교를 믿는 것도 아니고, 너무 울궈먹어 이젠

식상하기도 한 숫자일 뿐인데 소심하게시리 왜 이러지 하다가도

다시 눈길을 돌려 아직도 13이면 영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다 또 고개를 돌렸을 때 아직도 그 숫자이면

이젠 숫제 초조해지고, 불안해지며 꼭 무슨 암시 같아

하루가 영 불길할 것 같은 예감도 든다.

당연하질 않는가.

그리 쉽게 생각 한번만으로 바꿔질 수 있다면

어찌 그것이 징크스 축에나 들겠는가? ^^ 


그리고 또 하나, 핸펀 시계.

누구에게 전화 걸 일이 있어

무심코 꺼내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 뚜껑에서

깜박이는 시간숫자와 순간적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그때도 아무리 급해도 다시 집어넣고 잠시 기다려

그 숫자가 지나갔을만하다 싶을 때 다시 꺼내 전화를 하게 된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하루에 한번도 아니고

연이어 몇 번이나 우연찮게 그 숫자와 맞닥뜨리게 되는 날은

기분이 숫제 영 개떡 같아진다. 

왜 이러는가? 왜 이리 나약한가? 하다가도 한 번 더 생각을 하면

즉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면 당연 쓸데없다 귀결되지만, 글쎄다.

그 징크스란 놈이 그리 만만할지.

그래 곰곰 생각하게 되었다.

이 징크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그런데 그 묘책은 이외로 간단한 곳에 있었다.

바로 모든 시계의 시간을 2,3분 빨리 해놓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쩌다 무심히 눈길이 갔을 때 이 숫자와

마주치게 되면, 그래서 순간적으로 기분이 이상해지려하면

아, 지금은 11분 아니, 12분이지.

이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징크스의 진가란 또 다른 데에도 있는 법.

즉, 그 오래된 즉시적?, 타성적 트렙에서 쉬 빠져나올 수

있는게 놈의 본질이 아니므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열치열, 이한치한.

바로 그 반대의 숫자에다 치유의 주문을 거는 것이다.

바로 31이란 숫자!


얼마나 효과적이고 공정한 게임인가.

불길의 숫자가 주는 감은 이성적 판단 이전 이미 마음을 훑고 지나간 뒤다.

그래서 구차하게 다시 생각이란 여과장치로 걸러야만 겨우 가신다.

그것도 영 개운찮게.

그러니 이열치열, 이한치한. 이 얼마나 화끈하고 공정한 승부냐?

어느 순간 -그러니까 그리 생각하기로 한 순간부터-

불길의 숫자와 만나는 확률은 기분 좋은 길운의 숫자와 만나는 확률과

같게 되었으니.

13. 너 이놈, 쌤통이로구나. ^^


그래서 라디오 볼륨도 31을 좋아하고 주파수도 93.1도 좋아하게 되었다.

(아니다. 이건 거짓말이다. 31이란 볼륨숫자는 내 회사자동차 성능이 시원찮아

좀 속도감 있게 달릴 때면 이 영역쯤 되어야 그래도 소리가 좀 온전히 들리게 되고

93.1주파수야 음악 한번 들어보려 어거지로 한 10여년 전부터 억지로라도

클래식음악만 나오는 방송주파수로 고정하고 다녔으니, 이  징크스가 생기기 훨씬 전이다.)   

어쨌든

13이란 불길의 숫자가 있다면, 이제 31이란 길운의 수호신도 항상 나를 지키니.

만사 休, 게임 끝.

하다가도 엉겁결에 13이란 숫자를 맛딱뜨리게 되면

나도 모르게 다시 스멀스멀

께름칙함이 살아나니

징크스는 영원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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