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
어쩌다 보니 생명 하나가 품안에 들게 되었다.
그 연유를 이 공간에 비교적 소상히 소개한 적 있고, 선보인 적도 있는
바로 이 녀석 미모사이다.
처음에는 일년생 초본으로 알았다가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이듬해 봄. 다 죽은 줄 알았던 시든 줄기가 다시 생명의 푸른 촉수를
내밀었을 때에 그 경이!
처음 연분홍 귀이개 솜 방울같은 꽃을 피웠을 때의 환희!
그 핀 꽃을 혹시나 하고 손으로 쓰다듬은 결과로 맺은 작은 꽁 깍지
열매를 보았을 때의 감동!
그러다 다시 관심부족이어선지 요즘 같은 어느 해 가을날
구석자리에서 시들시들 메말라 가길레 이 또한 생명에 모진 고문일지 모른다
과감히 싹뚝 자르고, 화분도 내다 버리게 되었는데....
하지만 녀석의 나와의 질긴 연은 여기까지가 아니었던가 보다.
책상머리 문구소품을 보관하는 어느 바닷가서 데려온 굴 껍질 집속에
조히 2년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 같은 녀석의 2대, 씨앗들이
볼 때마다 눈을 또록또록 뜨고 말을 거는듯해
외로 꼬고 모로 꼬고, 외면을 하다하다 더는 참지 못하고
다시 화분 하나를 구해 그 씨를 뿌리게 되었는데, 스무 몇 알 중 열댓 알.
기실 그 속내는 혹시 요즘 계란은 수정이 되지 않는 무정란이 많은데
이 씨앗도 벌 나비의 도움이 없었으니, 내 손이 약손? 아니 조물주 손이 아닌 이상
겉보기만 멀쩡한 요즘 GMO식물같이 생산력은 없을지 몰라 하는 궁금증과
어디 한번 할테면 해보시게 하는 묘한 기대감이 더 컷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구서 일주일이 가고, 열흘이 가고, 보름이 가고.....
어릴 적 어깨너머로 바라본 시골출신 특유의 생명의 응답속도의 직감으로도
이 시간이면 벌서 싹이 나고도 한참을 자랐을 시간인데
그러면 그렇지 하고 물주기를 포기하려는 순간
신기하기도 해라
처음에는 푸른 안개기운인가 했다.
빼꼼히 여린 싹 하나가 경천동지할 힘으로 이 지구를 밀어내듯
제 몸의 몇 배의 바위덩어리를 들어 올리고서 방긋, 세상에 얼굴을 내미니
“에게, 겨우 하나야?”
뿌린 씨앗, 드린 공에 비해 못내 서운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다시 녀석과 나의 동거가 시작되었는데
성격이 좀 까탈스럽기도 하여 조금만 관심을 게을리하면 시큰둥
풀죽이고 잎을 다 떨구는 앙탈을 부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정말 지난 여름 며칠의 연휴에선가 돌아와 보니 가혹한 여름 창가 햇살에
녀석이 아예 널브러져 이 세상과 하직하는듯해 ‘키웠으면 채금 져야지’
하는 유행가 가사도 생각나고, 죄책감에 쬐금 괴로웁기도 했는데
신난고난 역경을 이기고 다시 살아났지만 이후로 녀석의 그 세는 표나게 꺽여 있었던
거딘 것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변고란 말인가?
봄에 파종을 하고 여름이 되었으니 아무리 못되어도 석달열흘, 넉달열흘은 되었을텐데
이것 봐라! 제법 텃세를 부릴만한 우거진 먼젓번 녀석의 그늘 아래 다시 한 녀석이 촉을
반짝하고 튀우니,,, 분명 다시 봐도 이 녀석, 미모사 종자가 맞다. ㅠㅠ
나 참, 여기까지면 내가 맹세코 이따위 시시한 글을 여기다 쓰지 않는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이제 가을까지 다 가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잎을 떨구고
지난 시간을 반성할 이 엄숙한 순간, 판세에
다시 이.거.뜰.봐.라
사진에서 보다시피 나도 모르는 새 또 한 녀석이 언제 비집고 들어왔는지
불면 훅 꺼질 것 같은 자그만 팔을 내밀어 흔들며
연약한 미소를 살살 지으니
에구 징해라
이 목숨
이 산 것들의 푸른 목숨
이 오상고절에 꽃까지 피웠다.
자세히 보면 화면 중앙 맨 아래쪽에
새로 난 쬐그만 녀석이 보인다.
또 하나
죽었다 다시 살아나 애물단지가 될 공산이 다분한
이름은 까먹은 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