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낚싯대를 들어 무릎사이에 끼우고 손을 깍지 껴 받쳐 놓는다.
생각을 지우고 잠자는 감각들을 깨우면 물결이 돌아나가는 힘이 느
껴지고, 낚시바늘과 봉돌이 바위에 쓸리면서 내는 자그마한 소리도
들리는듯하다. 나는 가만히 내 몸을, 피 돌기를, 기운과 기분을, 컨디
션을 점검해본다. 동물적으로.
산뜻하고, 그러나 차갑고 맑아 이성적인 이 물질 - 바람은 건조하고
메말라 있어 그 긍정에 내재한 모순처럼, 약점처럼, 보이지 않게 틈을
노리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감추고 있다. 다행히 감기는 걸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벌거벗고 잠을 자다니___.
낚싯대를 들어본다. 미끼는 그대로다. 그 놈들이 탐을 내기엔 이 미
끼가 너무 부실하리라. 물때도 그렇고. 그러나 나는 그대로 다시
드리운다. 바다가 반짝인다. 얼마지 않아 태양은 곧 그에게 다가가는
길을 이 바다위에 내리라. 누군가의 말처럼.
내가 사는 도시에는 강이 하나있다. 그 도시를 흐르는 강을 따라 난
길을 끝까지 가면 만나는 집이 하나있다. 언덕 위의 집. 그 집의 망원
렌즈로 내려다 본 그 강의 반짝임. 확대되고, 제한되어 시야 가득히.
세상에 온통 그 빛뿐인 양 가득하여 넘치던 그 은빛의 충만함을 난 잊
을 수가 없을 것이다. 강의 하구야 모두 다 비슷하니 그 긴 흐름의 무게
로, 막힘없는 개활로 어딘가 한 자락 처연함과 쓸쓸함의 빛을 감추어
두고 있지만 그날 오후 맑고, 어딘지 우수가 서린 듯 한 전체적 풍경
속에서, 확대되어 다가오던 그 절대적 은빛의 반짝임. 그 속에서 바람을
받아 가끔씩 미끄러지듯 스치던 새들의 유연한 비행.
나는 그날 오후 동전을 몇 번인가 바꾸어가며 그 강을 아니 그 빛을 오래
도록 보았었다. 그리고 일을 하다가도 문득 그 날씨 그 시간쯤이다 싶으
면 그곳으로 달려가고픈 충동이 일곤 하였다. 그러나 여긴 더욱 자유롭다.
스스로를 어색하게 하는 남을 의식하는 부담도 없고, 그 깊이대로 한없이
그냥 내려가 볼 수도 있으니. 나는 이런데서 또 다른 기쁨과 매혹으로 빠져
드는 내 마음의 일면을 발견한다.
작은 물고기들이 끊임없이 미끼를 희롱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한입에
삼키기엔 이 미끼가 너무 거칠고 바늘도 너무 크리라. 내버려둔다. 내가
알기로 연 근해 어족 중 고급 어종 일수록, 지능이 높은 고기일수록 대체
로 입이 작다. 그리고 먹이를 취하는 방법도 아주 용이 주도하다. 웬만한
대물이 아니고서는, 아니 대물일수록 한 번에 덥석 먹이를 취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살피고, 쪼아 보고, 살짝 물어보고, 뱉기까지 한다. 욕심이 지나쳐
사리 분별없이 아무렇게나 덥석 무는 놈들이란 매력이 없다. 쉽게 잡히는
고기 또한 그러하다.
낚싯대를 들어내었다. 미끼를 살펴본다. 딱딱한 근육질만 붙어 있다.
미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지 오래다. 밑 밥 한 주걱을 뿌려 본다. 바다
표면에 동심원 몇 개가 솟구친다. 잡어들이리라. 기품이 있는 녀석들은
결코 가벼이 움직이질 않는다. 마지막 남은 몇 알을 모두 꿰어달다.
낚싯줄이 곧바로 수직을 이룬다. 나는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앉아
있다. 뻗어 나간 대와 드리운 낚싯줄. 그 끝으로 바다를 느낄 수 있어
야 하리라. 구 미터 길이의 이 장대가 그의 품에 비해 새삼 왜소하다.
다시 그 만한 길이의 낚싯줄. 천천히 낚싯대에 상하 운동을 시켜 본다.
잡어들이 이 깊이까지 내려가는 일은 별로 없다. 초릿대 끝이 잠길 만큼
내렸다가 천천히 상승, 몇 놈 인가 밑밥에 유혹되었음인지 움직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약간의 리듬. 정지. 다시 줄을 타고 내시경 카메라를
집어넣듯 온 신경을 곤두세워 본다. 순간 덜컥 걸리는 듯한 낚싯대. 물은
것이다. 낚싯대 끝을 단전에 대고 바다라도 떠올리려는 듯 낚싯대를 세
우기 위해 온 힘을 쓴다. 먼저 세워야한다. 촌각의 여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