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지는 마음을 다스리며, 나는 마지막 일몰을 완상하려는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는 시간의 실체가 가장 분명히 보이는 때가 지금이리라.
거침없이 유연하게. 태양은 그 옛날 군주들처럼 한낮 동안은 그의 실체를
바라보는 것을 용납지 않다가 마지막으로 밝은 빛 속에 맑게 그 모습을
드러낸 후, 차츰 주변한 빛들을 거두며 점점 붉어져 다홍. 진홍. 선홍.
종래는 온전한 원의 모습과 크기까지 남김없이 보여주며 바다 속으로
잦아들었다. 잠시 앞이 보이질 않는다. 바다는 아직 번득이는 무거운
눈물을 거두지 않고 있다. 침울한 일몰이었다. 선명한 일몰이었다고 생각을
하자.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희망으로 부풀어 떠오르는 아침 해 일터이니.
나는 도구들을 한쪽으로 가지런히 정리해두고 이제 끝까지 물러나 조용
해진 바다에 고기를 씻고 다시마 같은 해조류 몇 줄기를 걷어 베이스캠
프로 자리를 옮겼다. 올려다본 하늘에 실구름 한줄기가 아직 붉은 노을
로 물들어 좀 전까지 빛이란 실체가 있었음을 상기시켜 준다.
간결한 야간용 장비. 성냥갑만한 몸체에 대추알 크기의 할로겐램프가
붙은 헤드 랜턴을 모자챙에 꼽고 벗어 놓은 라이프 재킷, 힙 커버를 다시
착용한다. 한결 따뜻하다. 취사도구의 오밀조밀한 부식 통을 꺼내며 문득
아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이 시간 집에서의 일상도……. ‘ 잘 있으려무나.’
나는 내일 아침까지 겨냥한 밥을 불에 올리고 고기의 포를 떴다.
양이 너무 많다. 넉넉히 살이 붙은 서덜과 다시마 줄기를 넣어 끓일 준비를
해놓고 한껏 솜씨를 부려 보기로 한다. 남는 건 시간이니. 나는 혼자다. 혼자
라는 이 생각이 그만 반추되면 좋으련만. 나는 도전하듯 헤드랜턴을 끄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예전 인간들은 해가지면 잠을 잤었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 그 원시의
끈질긴 습관의 잔재가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남아 있었음을 내 아
버지로 하여 기억하고 있다. ‘자자꾸나. 어두운데’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옛날 어둠이란 우리 인간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과연 인간은 과학 문명이란 이성으로 이 어둠의 실체를 정복
한 것일까? 혹시 잊어버리거나 외면해 버린 것은 아닐까? 전등불도 라디
오란 초보적 문명도 없었던 그 시절, 그 밤의 호롱불. 귀가 멍할 것 같던
적막. 인간들은 왜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렸을 땐 잠을 잤을까? 세상 많은
것이 신비롭고 경이로와 신화가 살아 숨 쉬던 시절. 혹시 이 어둠은 인간
들에게 본능적으로 두려운 존재는 아니었을까? 아니면 역설적으로 문명
이란 울타리가 오히려 그것을 심화시키고 고착시킨 것일까?
나는 포를 뜬 고기의 껍질을 벗겨 종이 타올 위에 올려놓았다가 보다 얇은
다른 칼로 하나하나 셈하듯 정성스럽게 썬다. 결의 반대방향으로. 긋듯이.
상처 없이 베어지는 아픔처럼 사각이는 이 소리___. 나는 버너 소음으로 하여
살점들이 잘리는 이 소리를 느낌으로 듣는다.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그들의
육신은 영혼이 떠나가듯 피가 모두 빠져 생각으로 괴로운, 마음으로 멍드는
그 영원한 굴레에서 해방된 듯 아직 탄력을 잃지 않고 있다.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미련처럼, 원망처럼 그들의 기름기가 손에 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