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이 피었다.
안즉 봄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벌써 여름 꽃, 나팔꽃이 피었다.
이래저래 경황이 더 없어
한쪽 구석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방치되던 오랜 친구?
자리 옆 화분에 어느 날 빈한한 싹 하나가 돋더니
얼마지 않아 그 작고 여린 몸뚱이에 전혀 예상치 못한 꽃을 피워대는데
놀라워라. 나팔꽃이었다.
얘는 갑자기 어디서 온 아인가?
반가운 마음보다 제 몸 하나 가누기도 겨운 가늘고 연약한 체구로
너무 힘에 부쳐 보여
꼭 누가 시킨 것 마냥 보기 가혹하고 안쓰럽기조차 한데~
‘무에 그리 급해 꽃부터 피워대누... ’
아예 씨까지 새로 맺고 있다.
*
뿐이랴.
지난해 가을, 겨울
이제는 생을 마감했겠거니. 잎을 움츠리기조차
힘에 겨워 축 늘어진 황금빛 잎과 가지를 모두 잘라 뒷정리를 마친 그 자리서
이건 또 무슨 변괴인가?
다 죽은 줄 알았던 그 깡총한 미모사 밑동에서
옳다구나 파랗게 새싹이 돋더니
얼씨구, 이제 꽃까지 피워댄다.
아,아 징글징글하다.
이노메 꽃.
‘미모사, 한해살이 풀.’ 그럼
이 사전적 정의가 틀리기라도, 세상이 잘못되기라도 했단 말여?
지난해 받아놓은 씨.
미모사, 양귀비.
수십 수천. 너의 싹. 후손. 자식.
어디서 이 봄을 피워보냐구?
<가교>
나락을 저어 저어
기어이 건너편 관목밑둥을 잡았다.
분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