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바자 울
(탱자나무 울타리에 대한 기억.)
작년 늦가을 고향 선산서 묘사지내고 나서
시골집(폐가)을 들렀었지요.
겨우 2년만인데 온 마당에, 장독대에, 심지어
높은 뜨락까지도 그 놈의 개망초, 우슬, 쑥부쟁이 잡초들이
한길이나 자라 있었습니다.
석류나무 아래 어머님 키우시던 小菊들은 저들끼리 지천이고…….
짚동으로 싸 겨울을 나던 사랑채 아래 치자나무는 이미 말라죽고
뒤울로 돌아드니 대밭은 이제 돌담 경계를 허물고 뒤란을 채우다시피.
그래서 사슴벌레를 잡으며 놀던 구지 뽕 고목 아래 너럭바위,
그 뒤켠으로 탱자나무들이 이젠 대숲 속에 서있었지요.
돌보는 이 없어 멋없이 키만 자란 그 울 아래에 이르니
오, 놀라워라! 이게 뭡니까? 글쎄 그 노란 탱자열매가 떨어져
골이진 낮은 곳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꼭, 토종닭 몰래 낳은 계란처럼 그리 소복하니 쌓여 있었습니다.
늦가을 오후. 햇볕도 노랗고, 탱자도 노랗고
속이 다 빈 고목을 넘어 이제는 고사목 지경에 이른
늙은 모과나무와도 인사를 했지요. 그 아래 낙엽들.
그 붉고 푸르고 노란, 깊은 융단위에 떨어진 모과빛깔도 그랬지요.
크고, 어느 한곳 성한 곳 없이 할퀴어지고, 울퉁불퉁했지만…….
온갖 벌레가 편안히 포식해 그 흔적, 상흔이 마치 난해한 추상화 같았지만…….
- 그러나 그 향만은 어떤 개량종도 따르지 못할….
한바구니 가득 담아와 겨울이 다 되도록 우리 집 식탁에 놓아두었습니다.
온 집안을 향기로 채우며, 꺼멓게 색이 다 바랠 때 까지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
지금, 봄 이지요
생 울 바자 얘기를 했었지요.
혹시 탱자 꽃을 기억하십니까?
혹시 탱자 꽃향기를 기억하십니까?
혹시 탱자나무 잎을 먹고살던 파랗고 이쁜 애벌레를 기억하십니까?
꽃잎이 다섯 장. 애기 손톱 같이 작고 하얀 꽃.(어느 분 詩)
무서운 가시 속에 숨어살지만 이외로 순한 모습으로
잘 생겼던 호랑나비 애벌레
< 여기까지 꽃산딸>
*
경사지에 집짓기
집지을 대지를 고를 때
네모반듯하고 평탄한 땅만을 찾지 마십시오.
나름대로의 장점도 많지만 그건 참으로 심심한,
재미없는 집짓기가 될 것입니다.
모양이 좀 어긋나더라도, 경사지라도, 어쩌면 가파르다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위가 하나 떡하니 버티고 있어도 좋고…….
등이 굽은 소나무, 튼실하니 잘생긴 참나무 한그루가 있어도 좋겠지요.
<참나무>
그리 생긴 땅은 값도 쌀뿐 아니라 평지보다 전망이 확보되고
작가의 상상력도 무한히 자극해 이외로 개성 있고 멋있는 집이
탄생할 가능성이 훨 높습니다.
<소나무와 첫 별>
거실로 들어온 바위
또는 집을 뚫고 나와 자라는 나무.
집을 관통하여 흐르는 개울.
가능하면 처음 생긴 땅 모양대로, 그 자연 그대로.
<모과>
재료 또한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향토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싸리울, 토담 울, 생 바자 울.
오늘은 생 바자 울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왜냐믄 오늘 조경 설계하는 뇨자분과 한 두어시간 얘기를 나누었거든요.
<생울 바자. 쥐똥, 마가렛, 꽃잔디>
*
꿈이 하나 있습니다.
어찌 꿈이 하나뿐이겠습니까 만 하여튼^^.
그 중 하나가 바로 앞서 얘기한 그 고향집 폐가에다
마찬가지, 오랜 전 사람의 온기가 식어 이미 무너진 앞집
몇 채를 거두어 거기다 집을 하나 짓는 것이지요.
풍수 지리적으로도 좌청룡 우백호임이 분명한 좌우 야산엔
늙은 소나무 몇 그루 세월을 드리우고 있고,
배산임수.
송림 울창한 주산, 안산 산세가 뚜렷하니, 그 배사지의 안온함이라니.
<2장 귀룽나무 -지금 집 앞. 29일 촬영>
*
대지는 대체로 종적으로 한 4단 15m, 횡적으론 2단 5m정도.
단이 진 경사지.
오랫동안 짜 맞춘 머릿속 생각으론 이상적 모양새군요.
역사가 깃들고, 담쟁이 넝쿨이 지나는 계절 변화를 시시각각 보여줄
그 옛날 자연석 석축들은 그대로 두고라도 원하는 집 몇 채는 알맞게
앉힐 수 있을 것 같군요.
먼저 대숲으로 둘러싼 가장 높은 터엔 2층으로 발코니가 길게 나앉은
단출한 작업실 한 채를 내고. (물론 내부 통로 지붕은 천창-sky light,
발코니는 여름철 천막을 치기에도, 가을날 따가운 햇살을 우련
피하기에도 유용할 원주기둥 몇 개를 세우고)
한단 내려앉은 서쪽 땅에는 공동 기거용 회랑 채.
다시 한단아래 동쪽으로는 자그마한 게스트 하우스 한 채.
제일 아랫단 팽나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그 그늘 아랜 함께 모여
쉬며 얘기 나눌 정자하나를 둘까요. 건너편엔 농기구 수확물을 보관할
광 한 채를 지을까요.
외로 삐져 나앉은 왼쪽 모서리는 서너 평 황토 찜질방도 하나들이고
싶군요. 장작불 때는. 멍석을 깐. 창이 조그만. 어머님 자궁 속 같은.
물론 이 모든 집들은 붉은 벽돌로 포장된 램프(ramp)路,
지붕 있는 회랑으로 서로 연결될 것이고.
아래 마당엔 뒷산에서 흘러드는 냇물을 끌어들인 자그만 수영pool.
수로와 사이드 덱(side deck)은 오석 포장으로 햇빛을 모아 따뜻이.
오버 플로우(over flow) 수로는 햇빛이 반짝이게 흰색 세라믹.
중간마당엔 밤에 모여 앉을 등받이 편한 긴 좌식 돌 의자를 둥글게 놓고,
폴리싱(polishing)화강석 프론트(front), 길게 빼고.
다리 뻗거나, 비스듬히 눕거나, 그도 아니면 고추를 말릴.
의자 뒤로는 가끔씩 가벽. 햇빛 가리게. 그 벽에 기대어
아래 돌 책상. 밤을 위한 낮은 촉, 벽 등 한 둘.
<여기까지 아그배나무>
중앙엔 화톳불 피우는 1m원주의 모래 구덩이.
감자 고구마, 구워 먹을 수도. 모깃불, 피워도 좋고…….
내가 간다면 모닥불로 뎁혀진 그 하늘 아래 돌바닥에서
즐겨 잠을 잘 것 같은 그런…….
서쪽으로 면한 경계선 따라서는 단풍나무를? 그 그늘엔 비비추, 맥문동을.
감나무는 앞 담장 앞으로 열 지어. 좌우 모서리엔 대추나무 한그루씩.
중간경사지 따라 높은 곳엔 석류나무 댓 그루를. 좌우엔 紅梅 한그루.
그 아래엔 수국을. 좌우엔 난초를. 나리를. 접시꽃을.
길가 좌우엔 채송화를. 그 너머엔 꽃 잔디를…….
<수국>
아, 너무 복잡하군요.
빈 땅엔 그냥 패랭이, 민들레 지천으로 자라게 남겨둘까요.
그 보다 푸성귀 키울 채마밭. 아궁이 재, 음식 쓰레기를 묻어 썩힐
거름자리도 있어야겠군요. 그 거름자리에다 구덩이 파고
호박 넝쿨도 몇 올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