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기

가을로-19

우두망찰 2006. 11. 15. 17:02

 

 

 

 

 

 

 

 

 

 

 

 

 

 

 

 

 

등받이 없는 의자       -이 승훈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세월이 300년이 넘었다 이제 난 지쳤다 왜 아직도 소식이 없소? 문지기에게 물어도 대답이 없다 겨울 저녁 해가 진다 눈이 내린다 문 앞에 작은 등불이 걸린다 난 문 앞에 앉아 눈을 맞는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문지기에게 다시 묻는다 왜 아직도 소식이 없소? 그건 당신이 바란거야 문지기가 대답한다 문앞에 앉아 300년이 흐른다


 

 

 

 

 

 

 

 

 

 

 



**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기다린 사람은 너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기다린 사람은 나다

지금 서쪽으로 흐르는 강가 갈대숲에 목재로 지은 사각 프론트를 깔고 남국 산 하얀 등나무

의자 두개를 놓는다. 등받이 없이 산 사람이 가끔 와 쉬는 이곳의 석양이 아름답다. 


 

 

 

 

 

 

 

 

 

 

 

 

 

 


***

새는 늘 하류에서 상류로 날아올랐다.

저녁을 먹고 어스름에 강둑을 나서면 죙일을 물에서 외다리 꼬고 서 생각을 마친 새가 소리도 없이 저공비행으로 날아 마침내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새가 나를 지났는가? 새는 왜 아직도 소식이 없소? 묻기 잊은지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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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믿다.

살다보면 때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열서넛 어릴 적이었다.

오늘처럼 차고 맑은 달이 동천에 걸린 날. 또래친구 집에 마실 다녀오는 길이었다.

둥그스럼 -초가지붕. 볏짚가리. 물결치는 산과 언덕 능선. 밭고랑. 논두렁....

들판은 하얗게 서리가 내려 수정처럼 반짝이는데

동리가 깃든 골짝은 달빛을 가득 담아 마치 물 속처럼 고요히 가라앉아 잠들어 있었다.

 

-한번 얘기한 적 있는데 내가 자란 고향은 길이가 약 8키로20리, 폭이 약4키로10리의

전체적으로 고구마 닮은 완벽히 외부와 차단된 분지형 산골마을이다. - 


갑자기 이상한 해조음.

 

뒷산너머 하늘 한 귀퉁이가 까매지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어떤 무리가 하늘을 덮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마을로 내려앉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지붕이고 뜨락이고 마당이고 길이고 논이고 산이고 밭이고 할 것 없이

여름날 소낙비처럼 투둑 투둑 온통 이 놈들로 뒤덮여 갑자기 한걸음 떼기도 힘들만큼

소란스럽고 빼곡해져 버린 것이다. -실제로 발걸음에 툭툭 차이기도 했던 것 같다.

 

무슨 일일까?

무엇 때문일까?

달이 너무 밝아 혹시 이 골짝을 호수로 착각한걸까?

무리에 어떤 급박한 변고라도 생긴 걸까? 이동로도 아닌데.

평소에 그 흔한 오리도 한 마리 지나는 길목이 아닌데. ~~

 

 

 


불과 수분.

너무 빼곡한 탓으로 멀리 날아 피하지도 못하고

손 내밀면 바로 잡힐 듯 지척인 거리에서 수천, 수만, 아니 수십만~

낯설고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어떤 생명들이 지껄여대는 소리.

시선. 움직임.

 

-실제로 시끄럽게 울지는 않았던 것 같고 와글와글 그들 몸짓소리였던 것 같다.

그러다 몇 번의 교신 음으로 일제히 다시 날아올랐는데~

회오리치듯 퍼덕이던 그 날개짓 소리. 바람. 끼룩이던 울음소리.

한바퀴 선회 후 시야에서 사라져 갔는데~  먼 아우성처럼 

 

그 놀랍고 경이로운 일에 망연자실. 나는 그때까지 손 하나 꼼짝할 수 없었고,

날아오른 후에야 막대기를 휘둘러 잡는 시늉을 했다.

-그 시절, 그 나이에는 무조건 잡아야하는 줄 안다. -

그 후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아직도 내 기억에 어제 일처럼 선명한데

지나 생각하니 그건 가창오리 무리였던 것 같다.  

 

 

 


 

 

 

이미지는 가창오리 아님.

 

 

아래는 예전 웹에서 내려받아 논 남의 사진인데

요즘 짬날때마다 나는 이 새보러 다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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