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4계 (라)

우두망찰 2005. 11. 9. 15:38
 

8월15일. 바람불어 좋은 날

 

 


웬일인가? 

그 조용하던 동네가 사람으로 넘쳐나고 있다.

 

 

생각하니 휴가철이네. 골짝마다 사람들이 들어차고

산도 마치 시골 잔치집마냥 기분 좋게 들떠 많은 꽃들을 피워

반기고 있다. 왜 아니리. 상호 존중과 배려가 밑바탕이 되는데~

 

 

 

 

그러나 오후가 되자 산은 바로 본연의 표정으로 무심해졌으며

많은 바람을 풀어 갈기를 다듬고 있었다.

 

 

 

 

 

 

 

 

 

여름이 물러가는가?

이 바람 속이라면 종일을 서있어도 좋겠다.  

 





8월20일.  黙


먹장구름, 돌풍을 뚫고 묵묵한 걸음으로 산을 오른다.

한없이 담담할 묵. 한없이 답답할 묵. 한없이 무거울 묵.

 

 

 

 

그러나 산은 끝내 숨긴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 환한 햇살

찬연한 웃음을 머금어 반겨주었다.

 

 

 

 

9월25일. 입추 

 

가을. 추수.

인간사 일을 매만지고 틈을 낸 시간이 이날

축복받은 날이다.


*

산은 온갖 열매 익은 향기로 가득하고

들판은 온통 곡식들 여무는 소리

아직 세상은 인적 없이 비어있고

또, 아무 곳도 비지 않아 풍요롭다.

계피 향 타닥, 낱알 도처에서 터진다.

투둑, 알밤 떨어지는 소리

토독, 꿀밤 떨어지는 소리

톡, 메뚜기 뛰는 소리


깔아라.

저 영글어 황금빛 들녘 지나, 숲을 지나

하얗게 달구어져 적요로운 하늘가 바위 위에

돗자리 한점

 

 

 

 

 

 

 

 

 

 

 

 

그대 발을 벗어 여기 드시렴.

이제 우리의 점심보자기를 펴자구나.

잘 익어 단내를 풍기는 과일도 몇 알 깎아놓고

찐 밤 한주먹도 내어놓고

만만의 콩떡, 오곡 찰밥 도시락, 열무김치,

콩자반도 내어놓고

잘 익어 진홍빛 포도주도 한 병 따고


가을볕이 따사롭구나.

한줄기 바람 시원하구나.

소리 없이 구름 깊게 흐르는구나.

비스듬히 누워 한잔 먹다

하늘을 올려다보다

잠 오면 한 숨 자고

이윽고 서늘하면 내려가야지


그래 예까지 왔구나.

강물이 흐르듯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흐르고

우리의 인생도 흘러

생각하면 아직도 오리무중

까만 콩깍지 녹두알 마음

이제 가을인데

영글어 튀지 못한 마음

저 하늘처럼 서늘히 푸르러 깊어가는구나.

그러고도 쉬지 않고 흘러가는구나.

구름도 따라 흘러가는 구나


나뭇잎 아직 푸른데

아, 어느새 정오를 넘어 시월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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