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뜨면
물 곰치국 한 그릇 먹어야지
아직 술 덜 깬(아니 밤새 마셨나?)
그 또래 지방학교 동창회 손님이 한 부대로 몰려 ‘이 새끼, 저 새끼’
세월 잊고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그 무리를 혼자 대적하며 후르르 쩝 곰치 국을 마신다.
‘ 어따, 시원타.’ 그 맛 한번 자물시겠구나.
갈까 말까?
산맥은 오부능선 이상 구름을 덮어쓰고 태산처럼 무겁고
아침 텔레비전에서도, 지금 라디오에서도 ‘지금은 태풍경보 중’
갈까 말까?
큰 바람, 태풍은 많은 비를 거느리고 열 시간 쯤 후
저 산맥을 넘어 지금 여기로 지나리라는데.
그러나 바다는 여전히 고요했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으니
에라 모르겠다. 颱風 속으로.
내 자동차가 조금은 빠르겠지.
안전한 고속도로를 버리고 동해 시에서 좌회전
평소 좋아하는 42번 길로 들어선다.
무릉도원(계곡)을 좌로 하고 백복령 오르는 길.
지난여름 상처가 아직도 여전한데 비는 다시 부슬거리고
개미새끼 한 마리 없다. 적막강산.
그런데 이런 화장실이 급하네.
아무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이 생리현상, 다급함에야 댈 수가 없지.
아홉시,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정상 컨테이너 간이매점
간신히 양철지붕 하나 얹은 뒷간으로 든다.
볼일을 봤으니 그냥 갈 수 있나. 몇 번 들릴 때마다
작은 산삼 한 뿌리 캤으니 사라는 둥, 백사 한 마리 술에 담아놓고
얼마라는 둥, 하던 쥔은 보이지 않고 아무도 없다.
“계시우?”
“ 허전.” 것 참.
작은 컨테이너 가게 안에 괴목 조각이 가득하다.
이크, 저게 뭐야. 가만 보니 온통 남자 거시기 아냐?
남근 조각들이 무수하다. 주먹만한 거. 팔뚝만한 거.
어라 저 괴목은 가지마다 앙천하듯 거시기네.
구여븐 애기 것도 아니고, 살짝 비튼 우스개, 풍류도 아니고
저리 정색하고 분기탱천하니 숭칙하기도 해라
지나온 신남 갈남 해신당 마당에도 남근 장승 어른 키만 한 것이
한마당 가득 떼로 서 꺼떡대더니 아, 여기서는 떼로 모여 씅질내는군.
“ 뉘 신지?”
갑자기 한줄기 찬 바람이 서늘히 들며 흰 소복한 여인네 하나
“ 엄마~야” 소리도 없이 들어왔네.
솔잎 차, 벌꿀 차, 칡즙, 산마 즙. 실은 쥔 여자.
“ 커피 한 잔 주셔”
“ 저건 누가 깎았소?”
“ 우리 아자씨”
“ 누가 사요?”
“ 아줌마들이 많이 사요.”
‘ ????....... 재주도 좋으시군.......’
영을 넘었다.
언젠가 너울 치며 서쪽으로 내달리는 저 능선들이 잘 내다보이는
여기 언덕에다 내 삶의 오후 오두막하나 짓고 싶은 곳.
언젠가 꿈속인 듯 만난 그녀.
말갛게 개어 있다.
말갛게 개어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길은 산 아래로 길게 완만히 뻗어 내리고
산정의 나무들은 비질한 듯 가지런하다.
숲은 고요하고 바람은 잔다.
모든 풍경은 물기를 머금어 촉촉하고 비에 젖어 정갈하다.
상큼하다. 선명하다. 투명하다.
모든 게 정지해 있다.
시간도…. 풍경도….바람도…. 마음도….
여행의 시작이다.
여긴 아직 어느 곳에도 연둣빛 촉수도 없고,
난분분 어지러운 도화색 꽃, 그림자도 없다네.
여기는 다만 깊은 검은색. 그윽한 갈색의 나라.
땅이 깊게 숨쉬는 이곳에서 나는 처음 알았네.
감춰둔 생명이 이리도 아름답다는 것을.
솔잎이 저리도 눈부시게 푸르를 수 있다는 경이를.
샹그리라 거짓말. 완벽한 공간으로 완벽히 공간이동. 나는 갔다네…….
(풍경이 하도 차분하고 요염하여 야릇한 色汽까지 느껴지는데.)
길처럼 검은머리 곱게 빗어 내리고.
숲처럼 그윽한 향기 풍기며.
물기처럼 조용히 스며들어서.
솔잎처럼 상큼한 -이름도 ‘솔이’라 예쁜,
여인네 하나 옆에 태우고. -지난 4월에 중 -
그러나 말갛게 개어있지 않았다.
천지는 온통 휘뿌얘서 그녀는 없었고
산은 아직도 깊게 패여 신음하고 있었다.
설악산 아래로 남설악 점봉산 구룡령 넘으면 악산 끝나고
오대산 노인봉 부터 진고개 대관령 내쳐 태백산 소백산까지
대체로 부드런 곡선의 육산인데, 그 속살이 얼마나 부드럽고
깊은지. 토양은 대부분 거죽의 검은 부엽토를 벗겨내면
대체로 희고 배수성이 좋은 사질 양토 마사.
그 육신이 근년의 큰비와 산불, 무분별한 개발로
깊은 상처를 입고 아직도 짐승처럼 끙끙 신음하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그녀소개
소나무
소나무 소나무 소나무
소나무야.
(언젠가 얘기했지만 이 나라 소나무 군락 중 나는 여기 것을 제일로 친다.)
정상 고원평원의 줄지어선 낙엽송 고목 등걸도 한 인물 하는데 (초봄)
이리 비안개에 싸여 있으니 다음에
정선을 지나니
비가 물동이로 들어붓던 쏟아진다.
갈 수 없다.
할 수 없이 차를 멈추고 잠시 뜸한 기색을 노려
비 사이 사이 길가 풍경 들
.
.
.
.
.
.
.
산을 다 내려왔다.
여행의 끝이다.
영월서 단양으로 동강 물길 따라 가노라면
들판에 홀로 잘 생긴 한 그루도 생각나지만
안흥 지나며 찐빵 사다 문득
소나무 보다 더 소나무다운 이, 한 사람 생각나
걸어 다니는 그 인송 만나고 가면
이 길에 모든 소나무들 다 만난 듯 뿌듯하겠네
태풍이 마침 지나가는데
길가에 옥수숫대 우루루 쓰러지는데
찐빵 두 상자 사며 기어이 한 상자 전해주겠다 고집 부려
그 人松 만나 밥 먹고 차 마신 숲 속 통나무 집
건조한 나무향기 진해서 좋았네.
(인송: 국경없는 의사회 일원의 일년에 서너 달은 꼭 제3국 오지에 가
봉사활동을 하는, 어쩌면 사라미 저리 소탈하고 맑을까 그 저의가 심히
의심되어 기븐 나쁜 올드미스. 아니 독신주의 베지테리언 ^^)
다행히 태풍은 아무런 피해 없이 이 한반도를 다소곳 스쳐 지나갔다.
기록을 보니 지난 7월 4일의 일. 이번 주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번 나가
비, 풀 이 따위 비린내, 나무내금새를 좀 쐬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