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비가 왔다.
(요새 일복이 터진 건지 -그래도 기뻐해야겠지?? ^^ 퇴근하며
밤까지도 불려 다니니, 자투리 시간 외 뭘 새로 쓰기는 그른 것
같고,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분들께 미안해
잠시 요깃거리는 없을까하고 두리번거리다 이왕 나선 걸음이나
계속 가자. 다 식은 고방 것을 찾아 올리니 대접이 소흘타 너무
꾸짖지 마시고 부디 해량海諒하소서)
간간히 햇빛도 나, 비올 기미 전혀 없었는데
산이 깊어 그런가? 온다던 태풍이 가차웠슴인가?
저수지 뒷산에서 우르르 쾅 천둥 번개 번쩍이더니
온통 푸른 산자락 배경으로 은빛 빗줄기 장쾌하구나.
우산하나 있었으면 그 비 걸음, 나들이 행보
강약 리듬, 수직의 유려한 몸짓, 소리까지 다 보고 듣고 싶었는데
왕 버들도 다 못 보고 쫓기듯이 내려왔구나.
다행히 빗줄기 사정을 봐줘 (산에서만 노닐어)
뒤꽁무니에 매달고 뛰어 왔구나.
생쥐 꼴은 면한 몸으로 차안으로 피신해 바람을 맞는다.
소나기는 이제 저 멀리 인적 없는 산속을 소요하니
근처에 얼음골이 있어선가
골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시원타 못해 서늘하던지
일거에 차안의 잡 냄새, 후덥지근함을 다 날려버린다.
그 푸른 바람에 두둥실 몸 띄우고 잠시 잠이나 잘까?
그러나 연 이틀 설쳤지만 자미 오지 않았다.
어디로 갈까? 원래는 산을 오르려 했지만.
지도를 본다.
이 길은 가봤지만 또 한번 가보고 싶고
이 길은 안 가봤으니 그래서 또 가보고 싶고
이 길도 가보고 싶고 저 길도 가보고 싶고
이 길도 있고 저 길도 있고 이런 여기 또 요 길도 있네!
아, 길은 이 네 마음처럼 많기도 하구나.
청송을 거치지 않고 주왕산 뒷길 돌아 임하댐 상류 길로
영양 일월산 917지방도타고 왕피천 계곡을 뒤로 들렸더니
비가 너무 많이 온다. 그리고 길을 잃어버렸다.
이름도 모르는 길을 헤매다 넘은 그 수많은 고개
풍경들
스쳐 지났지만 마음속에 스몄으리.
서두르지 않고 안달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으며
발길 닿는 대로 가다보니 갑자기 ‘영덕’ 팻말이 나온다.
이게 아닌데…….
그러나 시간이야 아직 이지만 짙은 구름 벌써 어둑하고
산사태,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지?
살아가기로 했으니 약속을 지켜야지.
예서 만다.
대신 휭하니 준 고속도로처럼 뚫린 7번 국도에서
사이사이 보석처럼 숨겨진 지방 해안도로를 들며나며 올라갈까?
하늘에는 짙은 암운
빗줄기는 하염없고. 바다는 무슨 색이지?
바다는 늘 하늘색을 닮는다. 그러니 회색.
태풍이 온다는데 호수처럼 침묵하고 거리도 풍경도
수중처럼 가라앉아 한없이 침착하다.
그러면 마음은?
마음이사 뭐 오전 국도 변 고개 휴게실에서 산 건빵 한 봉지
산간마을 지나다 이천 원 주고 산 빨갛게 익은 자두 한 봉지
번갈아 먹으면 되지.
그러고 보니 점심도 먹지 않았다. 어떠랴. 배고프지 않는데.
아, 그럼 거길 가서 저녁 먹자. 어둡기 전에 도착하자.
지난여름 함께 들린 망양정 해변을 빠져나와 씽하니 내달린다.
울진 지나며
비는 그쳐있는데 이제부터 7번 도로상 제일의 절경들이
안개비에 모두 숨어 고개를 외로 꼬고 잠들어 있다.
“ 할매, 잘 있었습니껴?”
“ 하이고, 오랬만이시더.”
칠순 할마시 둘이서 장사하는 바닷가 가게
고작 테이블 여섯 놓고 하는 조그만 횟집가게.
일년에 서너 차례.
그가 이 집을 다닌지도 벌써 십년 세월이다.
“ 또 혼잔거보니 낚시 온 개비네. 뭐 주까?”
“ 아니, 아무거나. 주고 싶은 대로.”
“ 짝은거 소짜 하나 하까? ”
“ 알아서. 묵을 만큼.”
항상 반복되는 똑 같은 말, 이 장단인데.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는 통상 저녁에 도착한다. 목적지가 꼭 여기가 아니더라도
근처에 오면 여길 들러 신문 보듯 이런 저런 얘기, 저녁식사 곁들여
소주 한잔 마시고 건너 민박집 빨간 창 2층 방에서 잠자고
다음날 아침 다시 들린다.
“ 밥 ”
이른 아침을 먹고.
할머니가 싸주는 삶은 소라, 문어 따위 안주류와 소주 한 병을
아이스박스에 챙겨 그는 어부처럼 바다에 나간다.
도미 굴. 이름이 말해주듯 동해에서 드물게 귀한 고기도 나는
한참 절벽 단애로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진종일 바다와 씨름하다 설핏 오후가 이울면 집으로 돌아오듯
그는 다시 이집으로 돌아온다.
할머니가 일하는 고무다라 옆에서 엉덩이 부딪히며
냄새 풀풀 나는 손도 얼굴도 대충 씻고 다시 “밥”
“ 보자. 이 꽃새우 팔팔뛰네. 오메, 할매. 오늘은 줄도미 배대미
새끼도 다 있네. 고 참 새꼬시하면 맛있겠는걸.”
이 정도면 고것들은 항상 고스란히 그의 접시에 담겨 나온다.
그의 하루 수확물은 잘 손질되어 소금 쳐서 다시 아이스박스에
들어있고.
오가는 길, 이 동네도 그럴 듯 치장한 집들 많이 들어섰지만
새뜻이 단장한 연이은 이웃가게 젊은 여주인 눈웃음도 색초롬하더라만
그는 항상 여기 오면 이 집에 온다.
(사실 바른 말로 다른 집으로 외도도 해봤다. 그런데 얼굴 이쁘다고
속내까정 다 이쁘더냐.ㅋ)
옆 테이블에는 영 너머 태백에서 왔다는 초등 딸, 아들 둔 일가족이
이거 먹어. 이거 잡숴보세요 식사를 하고
바로 앞 테이블에는 예순 나이 근동 초로 부부 세 쌍이 어찌 저걸
다 먹을까 싶을 만큼 푸짐하니 벌려놓고 형님아우 왁자하다.
근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소주를 마신다. 지독했다.
그 넘의 여름감기.
추적추적 비는 다시 내리고 어둑살 내리고. “매운탕 주까?”
“그러지요.” 지금쯤 회 맛이 나야 정상인데 비 탓으로 상대습도
100%. 대기 중 습기가 스며들어 자꾸 물러지는듯하다.
그래서 비 오는 날 생선회 먹으면 안 된다.
“아자씨. 이 술 한잔 드셔 보시요.”
간간히 말 주고받던 옆 테이블 일가족 손님이 나가고 나니
앞 테이블 한 아짐씨(요샌 예순도 아짐씨다.)가 페트병을 들고
잔을 건넨다.
“ 뭔 술이래요?” 방언을 흉내 내니
“ 이거 좋은 술이래요. 저 아주버니가 담근 토종 벌집 술.”
한 아자씨 손을 들며 한마디 덧붙인다.
“ 쭉 들고 한잔 더 하시오.”
달짝지근 술 같지도 않아 거푸 두 잔을 더 얻어 마셨다.
뭘로 보답한다? 음식은 넘치도록 푸짐하고 술도 댓 병이니…….
“ 할머이 담배 ”
자매는 아니고 동서지간이라 했는데 윗동서 할머니 이제 귀를 더 먹은가 보다.
있을 리도 만무고.
“ 이거라도 피세요. ” 여벌의 담배 갑을 건넨다.
“ 워디서 왔더래요? ”
“ 멀리, 00에서 왔심더.”
음식을 반도 못 먹었다. 술도 남고. 항상 그렇다.
이를 때마다 생각나는 것 ‘둘이면 딱 알맞을 텐데.’
“ 할머니 월마? ”
아랫동서가 웃으며 “보자, 소주 하나 마셨지? 이만삼처넌.”
원래는 삼만삼처넌 받아야 맞겠지만. 삼마넌 건네며
“ 나머지는 할머이 용돈. ”
“ 비도 오는데 오데서 자노?”
“ 가다보면 있겠지요.” 길을 나선다.
참 난감할 때. 이럴 때. 낯선 외지. 밤. 비. 술.
에라이, 술도 그만하고, 꿉꿉하고 어둡고 경찰도 없는데 운전하자.
(이러면 안 되겠지만.)
한 시간을 달려 삼척 새천년 해안 도로로 들어
도착한 어느 바닷가 밤. 높은 방에서 내려다 본 해변
Strange on the shore.
그러나 기력 딸리고, 흥미 예전 잃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고만 고놈의 모기 한 마리 땜에 깨어
서너 시까지 잠 못 들었으니
그 밤에 무슨 일 있었을지
이 푸른 담배연기 외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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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노트북 꺼내 숙제했다.
그리고 이제 담배 안피운지 반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