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조 영 환
바람도 없는 사월 중순의 대낮
강진 영랑생가 뒤란의 훤칠한 동백나무가
화장대 앞에서 입술연지를 덧칠하고 있다.
껑충한 키에 진초록 회장저고리를 입은
말상의 서모庶母는 단 한 번도
붉은 눈을 누구에게 들킨 적이 없다.
한겨울의 동백꽃은
동박새 울음 높이에서 핀다.
툭, 툭 검게 타든 눈자위가
볕바른 뒷마당에 떨어지고 있다.
동백꽃은 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동백나무가,
저 가득한 물 항아리의 붉은 물이
바람도 없이 일렁거렸다는 것.
당신에게 가는 누군가의 마음도
그저 엎질러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눈에 동백나무는 동백나무 이전의 나무이고
나는 비로소 내 물 항아리의 연원을 알 수가 없다.
물 항아리의 물이 일렁인다.
저 동백나무는 물경 사백 년을
새붉게 입술만 덧칠하는 연애를 한다.
몸이 잠시의 꿈이 아니라는 듯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진저리처럼 동백이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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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허해
나는 달달한 한국도넛
호떡을 먹고
눈은 움직이고
손은 바빴으나
가만히 앉아
떨어지는 동백 열송이쯤 삼킨
그의 실토가 저 꽃처럼 겹게 붉다
(낭송. 사진. 시 모두 작가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