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
저것 봐, 저것 봐 네 보담도 내 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겄네 (박재삼/ 울음이타는 가을 강 中)
*
흐르는 것이 물 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
일이 끝나 저믈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구리고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정 희승/저믄 강에 삽르 씻고 中)
*
10월
- 고개를 넘어서니 거기엔 벌써 시월이 와 있었다. -
이른 아침
강변을 달려 너를 만나러 가는 세상은
온통 이슬에 젖고 안개에 휩싸여 있다.
보이질 않는구만 보이질 않아
사람도 길도 전망도
그러나 차 한 잔 마시고 돌아서면 어느새 양광(陽光)
안개는 이미 산허리에 걸려있고 햇살 밝게 빛난다.
그렇지 가을은 기다림의 산물
산은 온갖 열매 익은 향기로 가득하고 들판은 곡식들 여무는 소리
아직 세상은 인적 없이 비어있고 또 어디한곳 빈곳 없이 풍요롭다
계피 향. 타닥, 낱알 도처에서 터진다.
투둑, 알밤 떨어지는 소리
토독, 꿀밤 떨어지는 소리
톡, 메뚜기 뛰는 소리
깔아라 저 영글어 황금빛 들녘 지나 갈대 숲 너머
하얗게 달구어져 적요로운 자갈밭에 돗자리 한점
그대 발을 벗어 여기 드시렴.
이제 우리의 점심보자기를 펴자구나.
잘 익어 단내를 풍기는 과일도 몇 알 깎아놓고
찐 밤 한주먹도 내어놓고
만만의 콩떡, 오곡 찰밥 도시락, 열무김치, 콩자반도 내어놓고
잘 익어 진홍빛 포도주도 한 병 따고
맑고 시린 강물 앞 울로 흐르고
서걱서걱 갈 숲 뒤울 두르니
우리 집, 가을볕이 따사롭구나.
한줄기 바람 시원하구나.
소리 없이 강물 깊게 흐르는구나.
<중략>
그래 예까지 왔구나.
강물이 흐르듯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흐르고
저 강물처럼 지금 우리 여기이구나.
어드메 쯤인가?
안개는 미혹이고 허망
생각하면 아직도 오리무중
까만 콩깍지 녹두알 마음
이제 가을인데
영글어 튀지 못한 마음
어쩔 수 없지
저 강물처럼 서늘히 푸르러 깊어가는구나.
그러고도 쉬지 않고 흘러가는구나.
구름도 따라 흘러가는 구나
나뭇잎 아직 푸른데
아 어느새 정오를 넘어 시월이구나.
(2005년 10월)
한강의 달빛(음 팔월 열엿새. 마눌 차에 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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