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세 가지 香
일삼아 꽃을 찾아다닌 적 없는데 -그래서 향기도 몰랐는데
올해 두 번 그리하고
첫 번은 삼월 초 섬진강 - 피기 시작한 매화향이 진했고
두 째는 어제 유채,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바람결에도 지지 않을
만큼 향이 강했다.
마지막 세 째, 지난 주말은 우연히 그리되다.
그 마지막 향 이야기 -갈渴
(‘목마를 갈’인데 위에 초두 변을 붙여야 ‘맑을 갈’이 된다니
기실 틀린 글자다.)
몇 년 전
정확치는 않으나 한 십년 되려나?
다큐멘터리를 하나보게 되었다. 아마도 KBS1 환경스페셜.
한 은백의 서양 노인이 명동 한복판 꽃집 초분 앞에 쪼그려 앉아
주인과 그 식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까만 비닐 봉다리에 작은 종묘분 몇 개를 사들고 가는 것으로
그 프로그램은 시작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니다.
실은 대단히 흥미로웠고 감명 받았으므로 뇌리에 박혀
일삼아 찾아도 보았고 근처에 갔다 부러움과 동경으로
그 곳을 보라보았던 적도 있다.
바로 천리포 수목원.
그를 일구고 가꾼 민병갈씨 이야기가 오늘의 이야기이다.
선생은 -
이미 고인 되셨고 이방인이지만 선생이란 호칭으로 불러 마땅하며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담아 나도 그리 부르고 싶다.
다음은 지난 주말 그곳 회원의 날 자리에 초대받아 가서 산
그분의 간략 일대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 -김영사 刊 책을
돌아와 읽고 그분 행적을 보다 소략히 추린 것이다.
- 1945년 9월 미 해군중위로 처음 한국에 발을 딛다.
- 제대 후 유엔 고문관으로 한국에 근무.
- 48년 한국은행 초청으로 다시 한국에 오게 되었고
이후 정년까지 한국은행에서 근무.
- 이후 증권사 등 제2금융권에서 근무했는데
- 승부사적 기질도 있어 한때 큰 돈도 벌었다.
- 평생 독신, 검소 절약한 생활을 했고
- 죽기 3일전까지 기저귀를 차고 출근 했다.
선생이 이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향리 소재 현
천리포 수목원자리 땅을 사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즉 근처의 유명한 만리포 해수욕장에 휴가를 갔다
이 지역 노인장이 딸 혼사비용이 없다고 내놓은 땅 6000여 평의
하소연을 듣고 할 수없이 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목원을 시작한 것이 1970년, 그의 나이 50이 넘은 때다.
이후 그는 모든 재산, 수입을 쏟아 부어 각고의 노력 끝에
이 수목원을 일구었는데~
現在
- 면적 18만 7천여 평
- 7개 분원으로 나눠져 있고
- 평소 2만여 평의 본원만 개방
- 식물 종 약 1만 3백여 종 (약 2백만평 국립광릉수목원 식생이 3300여종인 것을 보면)
- 세계 12번째 유명식물원으로 등재? (아시아에서 첫 번째)
- 이중 목련 관련 세계 제1의 수목원으로 세계 총 500여종 목련 중 이곳에 430종 보유
- 또한 호랑가지나무 400여종 (미국의 공식적 호랑가시나무 수목원으로 등재)
- 동백나무 400여종
- 단풍나무 200여종 등으로 세계 유수 식물원
- 또한 보이기 위한 나타내기 위한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좋아 사랑을 쏟아 부었으며 비영리사업으로 식물에 해될까
비 개방으로 있다 IMF 이후 제정적 압박으로 할 수 없이 회원제로 개방.
운영비 일부 충당
- 1979년 백인남성 최초로 한국인으로 귀화
(민병갈이란 이름은 그의 한국은행 시절 절친한 친구 전 한국은행장
민병도씨와 관련있으며 고향 펜실베니아 민씨로 등재하려다 안 되어
여흥 민씨로 입적. 마지막 ‘갈’은 그의 영문이름 ‘칼’과 무관하지 않으며,
또한 한자에 대한 깊은 소양으로 ‘맑을 갈’을 선택. 이후 모든 sign에서
영문이름 대신 이 이름으로 서명했다 함)
- 평생 독신
- 종교 : 만년에 원불교
- 2002년 歿
- 유산 : 미국 가족과 친지에게 하나도 상속하지 않고 100% 현 수목원 재단에 기증.
(현 재단이사장 유한 킴벌리 사장. 생전 존경하는 인물 1순위가 유한양행
유일한씨였다 함)
- 유언 : 자신의 뼈를 식물의 거름으로 써 달란 유언을 남겼으나
-아마 최초의 수목장인듯?
그의 양자 등의 주장으로 매장. -분묘. 현 식물원 내 위치.
- 소신과 철학?
글쎄다. 일천한 지식 -겨우 책 한권 본 것으로, 그 분 스스로 말하지 않은 이상한
것을 이러쿵저러쿵하면 그야말로 평소 그분 지론, 소신에 누될까 염려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순전히 내 좋도록 상상력 동원 유추해 보면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성격 까칠한 나도 존경의 념까지 갖고 그를 바라보게 되지 않았을지 ^^
그는 식물의 영혼을 믿었으며 아침마다 인사를 건넸다.
그는 아주 초기 원시적인 애니미즘적 사고, 성향의 사람으로
사람을 위해 세상만물, 동식물이 존재한다는 좁은 의미의
사람우선 인본주의와 일정간격 거리를 둔듯했으며,
그것은 결국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식물위에 사람 없다는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보다 진일보한 사상.
전통적 동양 도가사상.
만신에서 유일신으로 다시 데카르트 이후 인간중심으로 먼 길 에돌아
최근 다시 제자리로 온. 과학발전, 지구 위기와 더불어 다시 각광받게 된
생각. 환경주의, 생명존중사상에 맞닿아 있지 않을지.
(실제 그는 농약은 물론, 나무가지 하나 자연상태에서 치지 못하게 했다 하며
그것이 7~80년대의 일이라고 생각해보라.)
더불어 현실적인 부분. 언행일치한 부분.
실천력 추진력. 이성과 합리. 청교도적 성실과 근면함.
무엇보다 끝까지 자신을 버리고 자연에 식물에 몰아 동화해 갔다는 점.
이 땅에서 이룬 걸 그 몇 배의 가치로 이 땅에 다시 고스란히 돌려줬다는 점.
그럼 천천히 그의 자취를 함 따라가 보자.
가능하면 한 일년. 사시사철 때마다
거미줄 다칠까 거미 밟을까 길을 돌아갔다던 그의 발걸음 따라.
참, 그의 향기 ‘갈’, 세번째 향은 목련이다.
이건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인 직접 표현인데
목련을 가장 좋아했으며
어머니 이름을 붙인 신품종 목련을 거처 옆에 심어 아침마다 대화를 나누었다 한다.
수목원에는 사철 내 목련이 핀다지만 절정이 약간 지난 그날
목련향이 참 그윽하고 깊었는데~
그때까지 목련 향이 어떤지, 있기나 한지도 나는 몰랐다.
<사진 모두 목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