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적어놓고 보니
연애하는 것처럼 참 멋진 제목이다.
약속이라니~
몇 번의 거짓말을 한 적 있는데
바로 이 섬, 교동도와 수렴동에 대한 올해의 약속이다.
(어쩌면 이 교동도는 작년 것인지도 모른다.)
한 달에 한번 가겠다고
마치 멀리 둔 애인에게 한 약속처럼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마음 한구석 늘 찜찜했는데
올 겨울 들고 최고로 춥다는 어제 일요일 아침
안 그래도 연일 혹사하는 몸에 이상 징후가 감지되어
병원 가 카메라 집어넣어 속내도 한번 들다보고
피도 한 대롱 뽑아 이리저리 살펴봤는데
결과는 이상 무.
아직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고마운 줄 아니 좀 아껴보기로 한다.
그래 짬 날 때마다 운동인데
< 춥고... 겨울. 들어가는 사람도 차도 없다>
아니다.
그제 주말 밤. 새벽까지의 음주 후 귀가길
집 앞 국밥집에서 홀연 술이 깨어 뜨거운 콩나물 국밥 한 그릇 홀로 해치우고
무슨 청승에선지 또 차안에서 영화 한편을 보게 되었는데~
뭐야 이거, 열 번쯤 새어나오는 신음을 어금니로 짓씹고
눈 뜬 아침
안되겠다.
맺힌 것들은 풀어야
그러기엔 이 날씨가 최적이군~
(중무장했지만
전날 음주로 눈동자가 다 풀렸다.-요즘 배운 셀카질)
하지만 읍내에서 또 국밥 한 그릇을 먹고 (이 국밥집 괜찮다)
하점 지나(하성과 함께 하점이란 이 지명, 특별한 관심이 있다.)
창후리 선착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1시
요즘의 사태를 반영하듯 검문이 좀 빡센데
<모 미술관 불타는 인민페 영상작품을 찍은 것이니~>
‘카메라, 군 초소나 해안가는 찍지 말 것이며, 5시 막배이니~’
월선포 선착장에 도착한 시간이 벌써 2시
속에 있는 것 털어내려면 개 발에 땀나게 한번~
아니지 등줄기에 땀 베이게 한번 패달을 저어줘야
<여름의 그 들머리 과수원>
( 누구 마음인지 이상하게 자작 한 그루가 서있다
섬에 유일할 것이다.)
(서해 염전 소금창고들처럼 이 섬의 양철로 된 정미소들도
다 삭아내리기 전 자료로 찍어둘 가치를 느낀다.)
(가장 단순한 집의 원형질의 모습. 묘한 감흥을 준다)
했는데 그림처럼 또 이것저것 해찰하느라 그러지 못했고
섬의 끝부분에 도착해서는 또 전혀 기대치 않은
수없이 밀려오는 새떼들의 파도를 마주했으니
<결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새떼들을 한 30분 지켜보다>
장석남 시인의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이든가
하는 시가, 시 제목만 생각났는데 짧은 겨울 해
시간도 없어 그제서야 정신 차려 스피드를 한번 올려보니
30km. 몸 풀기는 조금 미진한 거리
4시10분 다시 월선포 선착장 도로 도착
거기서 무의미하게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 다시 뭍으로
(여기도 아직 섬이군 ㅜㅜ)
섬에 가야 섬을 볼 수 있다
섬 끝머리
그 은빛 바다 눈뜰 수 없는 미지, 미시에서
거짓말처럼 날아오는 새
빈 들에 서 준비없이 그를 지켜보다가
삶은 때로 이런 격랑도 예비 되어 있나니
그저 바라보고 맞을밖에
나는 꼼짝도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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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떼들에게로의 망명 / 장석남
1
찌르라기 떼가 왔다
쌀 씻어 안치는 소리처럼 우는
검은 새떼들
찌르라기 떼가 몰고 온 봄 하늘은
햇빛 속인데도 저물었다
저문 하늘을 업고 제 울음 속을 떠도는
찌르라기 속에
환한 봉분이 하나 보인다.
2
누군가 찌르라기 울음 속에 누워 있단 말인가
봄 햇빛이 너무 뻑뻑해
오래 생각할 수 없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저 새떼들이 나를 메고 어디론가 가리라,
저 햇빛 속인데도 캄캄한 세월 넘어 자기 울음 가파른
어느 기슭엔가로
데리고 가리라는 것을 안다
찌르라기떼 가고 마음엔 늘
누군가 쌀을 안친다
아무도 없는데
아궁이 앞이 환하다.
<1992년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
쌀 씻어 안치는 소리를 들었어야 했는데
나이들어 처음으로 하루 종일
이어폰을 끼고 있어 이 소리를 듣지 못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