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 충격 받다.
제임스 캐머런이 누구지??
어디서 분명 듣긴 들은 이름인데~
아바타? 뭐, 아이들 열광하는 반지시리즈나 SF물쯤 되겠지.
이처럼 내 일천한 영화편력, 실력, 지식으로 이 영화는 영원히 내 관심 밖으로
먼 우주로 사라질 뻔하였다.
그러다 어디서 나무란 화두로 10%쯤의 관심이 생겼고
교황청 성명이란 인터넷 뉴스 대목에서 갑자기 흥미가 동하여
50%쯤의 관심이 생겼다. ‘도대체 뭣 땜에? 때메?~ 때메?~~’
하지만 그 교황청 성명이란 것도 제목 외 읽은바 없고
그러다 평소 대단이 깊이 있는 글 -영화평에서는 더욱, 을 쓰시는
아는 분 블로그에서 영화 내용관 상관없이 인도신화와 아바타의 연관성을
상형문자 해독하듯 찬찬히 풀어내신 걸 주마간산으로 휘리릭
감탄하고는 ‘보긴 함 봐야 하는갑다.’ 비로소 느끼게 되었는데~
더불어
내가 누군가? 공공연 에니미스트라 떠들고 다니는 자 아니던가. 회가 동해
입맛까지 다시며 사전지식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제임스 캐머런이
타이타닉이나, 메트릭스, 아이윌비백과의 연관성도 전혀 모르는
백지상태로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3번은 봐야
영화의 영상기술은 놀라웠다.
기술의 발전, 그래픽, 3D 영상은 내 촌스런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것은 마치 무성영화에서 유성으로, 흑백에서 칼라로의 전이처럼
이 변화는 나 같은 무지몸매에겐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속으로 가만 생각한 게
처음은, 대사위주, 줄거리 위주로 한번보고
다음은, 주변부, 이면을 시각적 그래픽 위주로 한번보고
마지막은, 약간은 꼬부장한 비판적 시선에서 다시 함 봐야~
제대로 다가올 것 같은 이 영상의 현란함.
나는 이 부분을 이 영화 제1의 미덕으로 친다.
불의 의미
하반신 불구의 해병출신 주인공이 아바타화하여
처음 임무수행을 위해 도착한 숲에서 보낸 밤의
어둠에 대항하기 위해 밝힌 불,
아시다시피 이 불은 문명을 뜻한다.
어둠을 밝히고, 무지를 깨우고, 사악한 힘에 맞설, 생명의 빛, 지혜의 불빛.
인류, 현세를 득세한 문명의 독법으로 불빛은 이 범주의 상징성이다.
또한 낮섬은 적. 모든 사물은 나를 위해 존재하므로 일단 경계하고 관찰하며
상황에 따라 방어하고 때론 선제공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이때까지 인류의 생존법.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
이 불이, 불빛이 말썽을 일으킨다.
(밤의)
숲은 고요하고
평화롭고
조화롭고
더없이 밝(았)다.
원래.
역설적이게도.
이 고요를 깨뜨리는 방자한 침입자.
불빛처럼 자기중심으로만 밝은 침입자.
이 불빛은 너무 눈부심으로 외려 혼란이고 불편이다.
하여 이 불빛은 표적이 되어 공격을 부르고~.
깨어지는 평화. 불안해진 대기.
이 부조화를 수습하고 나타나신 숲의 요정, 님프
여주인공 되시겠다. (남여주인공 이름은 모두 까먹었다.)
불빛을 꺼버리자 비로소 찾아지는 안도.
평화. 숨 쉬는 공기. 화려한 자태, 각양각색 제 모습 뽐내는 멋진 신세계.
밤. 여자. 숲 되시겠다.
*
작지만 강렬한 할로겐램프. 지향성. 예각의 불빛. 그 불빛의 폭으로 갇히는 나의
시선. 생각. 의식. 인지. 그리고 또 무엇 무엇들.
광대무변한 이 공간에서……. 결국 불빛의 본질은 구속이다. 불을 끄면
깨어나는 감각. 소리. 느낌. 우주의 넓이. 다가오는 바다___.
**
몬타나를 보려고 많은 방문자들이 드라이브를 하거나 등산, 스키를 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억을 만들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함께 그들의 감각이 채워지길 바라며
굽이치는 평원이나 산허리를 가로질러 움직인다. 이러한 랜드스케이프에선 장소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 힘들일 필요가 없다. 단지 그 소리를 들으려 하기만하면 된다.
공간은 눈에 차오르고, 눈을 감으면 사슴, 늑대, 여우, 독수리, 거위, 물고기, 나비, 거미가
떠오르며, 그 순간 동물들과 함께 하는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눈이 쌓인 강둑을 따라 새겨져있는 발자국들은 밤에 왔다간 방문객들이 누구였는지 알게 할 것이다.
그 자국들은 우리가 사는 장소성의 일부인 것이다.
밤하늘은 바위첨탑위에 길을 만들거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밝은 달빛을 가져다준다. 그 달빛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3차원 세계를 창조하는 별들에 의해 바뀐다. 은하수는 하늘을 가르는
서치라이트처럼 지평선에서 지평선으로 달리며, 서쪽과 동쪽을 구분 짓는다. 고요는 나무를 통해
불어오는 바람소리, 강물 흐르는 소리, 또는 겨울에 움직이는 얼음소리에 의해 바뀐다, 그리고
당신이 움직일 때 마다 전나무에서 솔잎 떨어지는 소리, 혹은 눈 밟는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다.
당신은 ‘공간이 비어있지 않음’, ‘밤이 검지 않음’, 그리고 ‘공기가 고요하지 않음’을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은 여행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카메라도 필요 없고, 책도 필요 없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시간일 뿐이다. - 크락 루엘란(Clark E. Llewellyn) : sky earth east west 중
이 두 문명, 독법의 충돌은 영화 초반부에 구석구석 은유적으로 잘 묘사되어있는데
이 영화를 쭉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하늘의 군대
이 판도라 행성, 생명의 숲에는
두 종류의 비행체가 있는데 하나는 하늘나라에서 내려 보내는
무시무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쇠똥가리 철새이고
(하늘, 절대자, 지시자. 기독교 교리, 문명에 대한 상징쯤 되시겠다.)
또 하나는 먼 옛날 동양 소요유에서 현신하신 붕, 대붕大鵬되시겠다.
**
<북쪽 끝 바다 어두운 곳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리나
되는지 모른다. 곤이 화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의 등은 몇 천리나 되는지
모른다. 성이 나서 날면 그 날개는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거칠게 움직
이면 곧 바야흐로 남명에 날려고 한다. 남명이란 천지(天池)이다. 제해는 괴(怪)를 아는 자이다.
해가 이르기를 “붕이 남명으로 옮길 때 물은 삼천리를 치고 회오리바람을 두드리며 구만리
하늘에 오르는데 일단 날면 여섯 달을 난 뒤에야 한 숨을 쉰다.”라고 했다. > 장자 소요유
그렇담 용호상박 호각지세 좋은 적수가 되겠네.
아니아니 천만에 말씀 만만의 콩떡
아무리 무공이 출중한 노장 도가 신화 속, 아님 쥬라기 백악기에서 걸어 나왔다 치더라도
이 쇠똥가리 철새의 대적은 되지 못한다. 왜 아니겠는가? 얼굴은 철면피, 마음은 철옹성.
한 치 여지없이 단단히 무장했는데.~
천동할 지동설, 발칙한 진화론, 교황청 성명
원래 세상엔 만신이 있었다.
(여기서 만신이란 Female shaman이 아닌 萬神 텐다우젼트갓 되시겠다.)
만신과 유일신
유일신이 강림하사 만신을 물리치고 -어둠과 무지를 몰아내고
비로소 유일하게 되시다.
지구역사 45억, 인류역사 4천만년 중 한 2천년전 쯤부터
하지만 여전히 여기 동양, 일본, 중국, 인도, 네시아에서도
만신은 부뚜막에 숨어 문지방에 걸터앉아 대들보를 타고 정낭에도 숨어 잘살고 있고
더불어 사람들도 잘 산다. -한국은 잘 모리겠다.
모든 생명(나는 무생물까지도) 신성과 영혼이 있어 유기적 관계, 영적소통을 바라므로
그는 친구이자 이웃. -영화에서는 ‘말씀’대신 ‘본다’하고, 촉수를 내밀어 서로 교감한다.
고 한다.
“아니 야들이 지금 무신 말하고 있노?
진리는 하나, 신은 유일하다. 그 옛날옛날옛날 가적부터 그리 열심히 얘기했건만~“
이 연약한 씨앗하나. 풀뿌리 생명.
교황청이 나서야 할 만큼 새천년 화두가 될까?
그만큼 현실은 절박해 파급효과. 생명력. 나아가 파괴력을 가질까?
(그렇담 얼마나 희망적이겠냐만 -_-)
아메리카 인디안과 포카혼타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왜 자꾸 그 옛날 포카혼타스의 진실과
요즘 NGC(National Geographic Channel)에서 방영중인
원시족 런던체류기? 뉴욕방문기? 그리고
서구의 잘 정비되고 정돈된 엽서같은 초지풍경과, 뭍 여론과 감시에서
숨바꼭질하듯 원시 밀림을 갈아엎어 목장과 경작지를 넓혀가야만 하는 제3세계 현실.
그를 비난하고 징치하는 이중적 우리 인류의 잣대, 비애를 본다.
석유의 역사 100년
자동차의 역사로 대변되는
이 인류의 기계문명, 물질문명은
석유란 물질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겨우 100년 남짓이란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인류를 이만큼 편리하고 편안하게 풍요롭게 이룬 일등공신.
고마운 마법의 발판이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고갈되어간다.
기반이 무너질 판이다.
더불어 인류가 피땀을 제공하고 실험한
여러 가지 사회학적 실험 속에 모두가 잘사는, 행복한
가장 이상적일거라 믿었던 공산주의 사회주가 막을 내리고(인간의 속성을 잘 몰랐나 보다.)
자본주의가 유일체제로 남게 되었다.
요새 이 자본주의가 말썽이다. 욕망에 대한 조절기능의 상실.
얼굴 없는 익명성, 세계화에 따른 무국적 무책임. 각 개인은 선한데
집단화된 이 무생명인 자본이란 괴물은 철저한 약육강식과 무한히 탐욕적인
암호 코드만 인식하는 로봇. 기계
이 가공할 위력. 무자비한 횡포. 무한한 허기를 지닌 속성의 괴물을 어찌할꼬?
-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
‘본의가 아니다.’
그렇지 본의가 아니지.
『여기서 본의가 아니란 건 어떻게 해볼 수가 있는 여지가 있음을 뜻한단다. 얘야.
그러므로 안다는 것은 모르는 것에 비해 우성이고, 힘이 있음은 힘이 없음에 비해,
할 수 있음은 할 수 없음에 비해 우월하니. 그물의 조직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신화
처럼 벗겨야 할, 아니 동화 속 태양처럼 따뜻함으로 벗겨야할 본의로서의 의무가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란다.』 멀리 있는 내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이다. 내 어머니처럼.
해법으로 우라늄이 될까?
(전문가로 말하건데 태양열, 태양광, 지열, 바이오매스, 조력, 풍력 등등
구원일 것 같은 이 모든 신재생에너지는 아직은 언론용, 정치적 수사일 뿐
실용과 효율 면에서는 멀었다.)
자연주의 상호주의가, 우리가 짓밟고 지나쳐버린 그 옛날 여리고 수줍은
다른 변방의 가치들이 구원이 될까? 상호보완은 될까? 공존은 가능할까?
영화는 여전히 그 해결자, 구원자로 푸른 나비족 대신 그들 자신을 내세운다.
아니다. 나비족화한 아바타를 내세워
일본 중국 인도 세계인구 70%?의 시장을 겨냥하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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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 필자의 다른 글에서 인용부분
** : 다른 필자의 글 인용부분
변색부분 : 차용부분
*** : 인도신화와 아바타 캐릭터간의 연관관계가 궁금하시다면 ‘다다’란 분의 블로그를 소개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