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걷혔다.
땅의 기운이 식어 더 이상 품을 수 없어
한숨으로 토해 놓는 게 가을 안개
이 한숨마저 얼어붙어 서리가 되면 비로소
그의 번뇌도 멈출 것이다.
여하튼 신 새벽 배웅의 길을 마치고 돌아오다
홀연 안개에 미혹되어 꿈속인 듯 헤매게 된 낯선 벌판에서의 몽유.
도시 가장자리로 밀려난 날품 삯꾼의 고단함이 아닌 정겨운
이웃 간 두레나 품앗이면 좋으련만~
안개처럼 한 겹 얇은 삶의 비밀은 누구에게도 쉬 그 속내를 내보이지를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밝은 가을해가 늦으막이 중천에 떠오르고
사과 한 상자. 감 한 상자. 고구마 한 상자. 모과 석류 탱자
참기름 깨소금 도토리 묵 한판. 온갖 가을열매를 차 터지도록 실어주는
인정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따글따글 가을 볕, 가뭄에 온갖 결실은 이제 수확의 때를 놓쳐 고스라질 형편.
골짜기, 들판마다 아직도 넘치듯 그득한데
생산자도 소비자도 수확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이 자본에 예속된 현실.
골짜기마다 힘에 겨운 늙은 농부 얼굴.
(이러다 수확을 포기하는 논들도 있다)
그래도 자작을 보아야겠느냐?
돌아오는 길, 손바닥만한 산골 소류지
서늘한 얼굴에 깃든 은사시 환영
충북 괴산군 이류면~
자작 아직 이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