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스페인
피레네 산맥에 산불진화용 헬기가 떴다.
경고방송이 나가고
야단법석이 났는데
사태가 수습되고 원인을 알고 보니
한국교민이 지천에 널린 산나물 고사리를 뜯으러 산으로 가
밥을 해먹다가 고만~
“하여튼 알아줘야 해요. ㅎㅎ ”
십수년 전 스페인 여행시 가이드가 들려준 얘기.
“니들이 산나물 맛을 알아!”
4. 워싱턴
버지니아인가?
아무튼 도심공원에 우리나라 강원도 산간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거대한 참나무들
이른 아침 부지런하고 열심히 산 태가 역력한 동양 할머니 한분이
차곡차곡
떨어진 도토리를 줍고 있다.
“아유 많네. 어쩌면 이리 실하기도 할까?”
그 모습을 지긋이 지켜보던 건너편 벤취 백인 할아범
두 사람 사이가 가까워오자
미소를 띄며 은근히 할머니에게 수작을 붙이는데
“호, 재미있으신가 봅니다. 무엇에 쓸 것인지 물어봐도 실례가 안 될지?”
신이 난 할머니.
도토리 묵 만드는 법과
그 맛에 대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설명하시는데~
가만히 듣던 그 냥반
“그람, 그 맛난 걸 만드는 재료를 저한테 파시지요.
어때, 10불이면 되겠습니까?”
할머니 오늘 아침 웬 재수냐며 10불을 받아들고 좋다가도
의아했는데
왜냐하면 그 공원에 널린 게 도토리였기 때문.
봉지를 받아든 할아범
애써 모은 그 도토리를 다시 공원 여기 저기 뿌리며
“제가 지금 다람쥐 모이를 주고 있지요. ㅎㅎ”
-오래 전 다이제스튼가 샘터 비슷한 책에서 읽은 얘기-
5. 그러면
오월 산을 오른다.
나날이 푸르름을 더해가는 신록이 눈부시다.
어디선가 향 한줄기가 스며들고
가만 저게 뭐지? 온통 푸른 초록의 바다에 섬처럼 흰무리로 군집을 이룬 것은?
아항, 아카시군.
작년보다 세력이 훨신 커진걸 보며 새삼 그 엄청난 번식력에 놀라는데
‘저러다, 저 녀석 일색이 되는 건 아닌지?’
아닌게아니라 한때 이 아카시는 숲을 망치는 대명사. 암이나 버짐처럼 천대받은
때도 있었다.
마치, 지구란 별에서 요즘 인간이 그러듯이~
가만 들다보면
위에 열거되어 무지막지 말의 칼날에 난도질당한
저 선량, 장삼이사가 무슨 그리 큰 죄가 있을까만.
수렵, 채집본능. 먼 원시의 부름.
굶주림에 대한 공포. 초근목피로 연명한 잠재의식의 발로.
더하여 요즘 전 지구적 대유행 자연식 건강식 채식열풍에
거기다 근면성실이란 인간적 덕목까지 더했는데~
누구라 이 소박한 나물 따는 즐거움을 탓할 수 있으리?
밀도
총량
나아가 좀 더 끔찍히 화학적으로 농도의 문제.
너무 많은 것이다.
너와 내가 자연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원하는 풍족한 목가적 삶을 누리기엔.
지구가 비좁고
특히 민족성관 무관하게 우리나라는 더 비좁고
그건 바로 두말하면 잔소리. 우리 인간이란 종이 너무 많기 때문
(최근 100년 동안 지구 인구는 5배나 증가하여 현재 약 70억에 이른다.)
그 70억이 너무 빼어나게 잘나
지 잘난 줄 만 믿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니
어찌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으리
백번양보해도 꽃처럼이나, 꽃 만큼이지.
물론 내가 물과 종과 속의 분류상 동물이고 인간이니 어찌 인간이 더 어여쁘지 않으리요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우리가 함께 비좁더라도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최소한 품위는 유지하며 새끼 낳고 가끔 미소도 주고받으려면
내가 소중하듯 남의 권리도 소중한 것처럼
이제 짐승과 식물에도 그 인격권?까지 부여하여 자리를 마련해주고 내어주는
양보와 배려 없이는 다 망할 판인데~
문제는
지구란 별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우리 인간은 바로 암세포와 같다는 것이다.
다른 생명을 죽이고 지구를 죽이고 종국엔 자기 자신마저 죽이는
다만 하나 희망적인 것은 ‘지금과 같다면’ 하는 단서조항이 붙는 것이지만.
몸을 낮출 필요가 있다.
하고보니 많이 보고들은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 오래전 우리 선조들이 그랬고, 동양사상이 그랬고
인디언이 그랬고 따라서 서양사상이 그랬고, 요즘 궁민핵교에서도 그러는~
아카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산을 다 망치는 줄로만 알았는데, 콩과 식물로 토양을 기름지게 하고
건들지만 않으면 잘 융화하고, 향긋한 밀원만 아니라 경제적 가치로는 여타식물의
몇 배가 되는 대단히 유용한 익수라는데
사람도 그런 향기를 뿜을 수 있을까?
사람이니까 가능할 것이다.
- 사족 -
(예전에 한 토막. 갖다 붙인다.)
아카시 꽃이 한창이다.
퇴근시간, 무심이 차를 내리면
갑자기 온 몸을 휘감아드는 향기.
-집이 우연히 산 아래다.
매년
꼼짝없이 당하면서도
대책 없는 이 기습이 전혀 싫지 않음은
아마 망설임 없이, 눈치 보지 않고 파고드는 이 막무가내
건강한 향기 탓이 크리라.
어두운 밤
결코 밝지만은 않을 기분
몸은 대체로 축 쳐져 있음인데, 느닷없이 안겨오는
이 황홀한 영접을 누군들 마다하랴만
하여, 한낮에도 결코 화려하달 수는 없는
자신의 존재를 새삼 각인시키고,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中略-
그리하여 밤이면
형체는 빛을 따라 어둠 속으로 소멸되지만
대신 향기는 낮 동안의 휘발을 멈추고
대기의 정령, 지표를 따라 내려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이윽고 사람들 코끝으로 살아 드는 것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