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바다-1 (1~3)
1.오늘 난 한 마리의 고기를 잡았다.
날씨는 맑았다.
바다는 좀체 실체를 들어 내지 않으려는 듯 완강히 푸르다가, 멍든 듯이 검게 푸르다가 한낮 햇살에 겨우 몸이 풀려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이윽고 나중에는 웃기까지 하였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바다의 기색을 살폈다.
물빛이나 파도의 높이, 조류의 흐름이나 속도, 바람의 세기와 방향 등, 그러한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분석되고 조합되어 명확한 해답으로 결론지어 질 수 있도록 예의 주시하며, 숙련된 기법과 경험에 의한 정확한 예측으로 밑밥용 크릴을 간간이 뿌려 주며 망연히 서 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은 잠시잠시 여유를 가져 주위도 둘러보았다.
섬은, 오부능선 정도까지 파도에 씻기워져 벌거벗은 체 강인한 모습으로 드러나 있었고, 그 위로는 모자를 쓴 것처럼 수림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빼곡히 들어찬 이름 모를 키 낮은 상록수림. 그 위로 관을 얹은 것 같은 몇 그루의 소나무들. 그들이 바람에 스러지는 모습과, 바다가 설설 끓는 소리와, 이 모두가 혼합된 그 독특한 냄새……. 그리고 비참하도록 외롭게 푸른 하늘도 보았다.
담배도 피웠다. 외딴섬 외로이 가녀린 담배, 그 연기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만 그래도 담배도 두어 대 피웠다. 발 앞에 부러 버린 꽁초가 문명처럼 이웃이 되어 주었다. 가만히 있으면 온갖 바다의 미물이 모두 나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듯 하다가,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사라지곤 했다.
육지는 산봉우리만 두엇 아스라이 바다 표면의 열 푸른 안개에 싸여 조는 듯 가물거렸다. ‘또 다른 섬들인지도 모르지.’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고 무언가 쉴 새 없이 얘기를 하는 듯 했지만 난 건성으로 들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오늘아침, 그 동트기 전 어둠 속에 잔뜩 웅크려있던 바다와 추위가 생각이 났고. 또 앞으로 며칠을 버틸 나의 비상식량이 뱃전에 와 부딪는 물보라에 젖어가던 모습과. 따끈따끈하던 선실 바닥 온돌의 온기가 따뜻하였다는 새삼스런 생각과. 그리고 너무 멀리 두고 온 듯한 내가 사는 곳. 그 속에서 이루던 생활의 단상들. 주변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의 편린들이 가끔씩 스치다가도 모두모두 그 짙푸른 물결에, 황망한 풍경에 힘없이 떠내려 가 자맥질 몇 번으로 가라앉는 것도 보았다.
여긴 바다밖에 없다. 오직 그들이 이룬 물결과 소리와 바람과 하늘, 햇빛……. 그리고 이들에 바랜 내 희미한 인지.
나는 기다린다.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가끔씩은 의식도 놓고. 그리고 그게 전부인 양 무의식의 행동처럼 기계적으로 정확하니 밑밥을 뿌리고. 낚시를 감고/ 다시 던지고/ 찌를 조류에 태우고/ 의식을 찌에 태워 동 동 동 떠 있게 하고/ 살짝 잠기도록 뒷줄을 조작하고/ 또다시 흘려보내면서….
검은 바다.
고기는 어디로 갔는가. 의식은 어디로 갔는가. 너무도 익숙한 이 냉담에 나는 추호도 흔들리는바 없다. 섣부른 기대는 하지 않을 줄 이미 알고 있다. 고기를 잡으면 어쩌나. 고기가 잡히지 않는 들 또한 어쩌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피는 가라앉고 의식은 들락이고 생각은 텅 비어…….이로서 휴식이 시작된 것이다.
얼굴이 조금 따끈 거리는 걸 보니
웅크린 몸이 풀리면서 양지바른 바위틈에 기대어서 나는 잠시 존 것도 같다. 그 짧은 잠 속에서도 바람은 여일한 음성으로 귓가에서 뭔지 모를 얘기를 계속하고, 파도가 끓고, 바다가 뒤척이고. 검은바다는 쪽빛이 되어 인어처럼 내 앞으로와 눕기도 했다.
잠시의 졸음으로 피로가 씻기고 다시 바다가 분명해 보이면서 자세를 고쳐 또다시 바다를 응시한다.
바다는 점점 깨어나는 듯 하다. 해면을 낮게 흐르던 푸른 안개도 걷혔다. 해초 따개비 따위로 뒤덮여 검게 보였던 바위들은 점점 더 물속으로 내려앉고 바다는 다시 생기를 찾은 듯, 좀 더 힘찬 몸짓으로 자꾸 와 부딪치며 장난을 즐기는 듯 하다. 발밑의 물빛은 포말 때문이 아닐 텐데도 아까와는 달리 조금 뿌옇게 흐려져 있다. 중 들물 때가 된 것이다.
명료한 의식처럼 빨간 찌가 물결을 따라 춤을 추다 살짝 속으로 잠겼다 일어선다.
‘온 것일까?’
머리가 노란 수중 찌가 물 속 저 깊이에서 희미하게 발광하다 곧추 서는 듯 몇 번 흐름을 멈추어 머뭇대더니 희미해진다.
‘그래’
눈에 힘을 주는 순간 어신찌가 급작스런 이별처럼 주저함 한번 없이 깊숙이 내려간다. 반사적으로 추켜든다. 힘이 느껴지고 곧 힘이 실린다. 고기는 아직 구속이 뭔지 모르는 듯 준마처럼 내달린다. 스풀이 몇 번인가 괴이한 소리로 역회전을 했다. 잠시 여유를 보아 드렉을 좀 더 조이며, 나는 물속으로 사라지던 빨간 찌의 환영을 본다. 그리고 잠시. 고기가 달리기를 멈춘다. 멀리 도망가 있다.
‘농어인가? 삼치인가?’
멀리 달아난 폼을 의아해하다 고기의 요동침이 둔탁해, 나의 온통 열려진 육감이 곧 그 종류들은 아니란 걸 감지한다. 가늘지만 강한 줄을 통해 지금 난 그와 대치를 하고 있다. 온 신경 줄이 끊어질듯 팽팽한 낚싯줄에 연결되어 고기와 맞닿아 있다. 근육이, 온몸의 감각이 한 점 남김없이 부풀어 긴장을 하여 그의 실체와 대면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 순간이 나를 무아지경으로 몰아넣는다.
‘그래 물었구나.’
인식은 항상 한 발짝 늦다.
*
2.고기가 크게 요동을 치다가 정면에서 측면으로 방향을 바꾼다. 저항의 실체를 느꼈으리라. 그럴 테지. 고기가 이길 힘은 없는 거지. 이건 애시당초 불공정한 게임이니까.
생명을 두고 불필요한 유희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저항도 좀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고기는 몇 번인가 반전을 시도했지만 나는 그 조금의 틈새마다 여유를 주지 않고 숙연히 릴링을 했다.
더디어 그가 자태를 들어낸다. 찬란한 은빛과 엷은 잿빛의 줄무늬를 보여준다. 감성돔이다. 뜰채를 쥐는 잠시 순간의 여유로 내달리고 뒤집는 놈의 자태가 일품이다. 기회를 보다 한번의 뜰채 질로 정중히 녀석을 모셔 내었다. 눈이 부시다. 한점 티 없이 깨끗하고 늠름한 모습이다. 고기가 칼날 같은 지느러미를 세운다. 튼튼한 뼈대로 무장된 강인한 입이 끔벅인다. 놀라 휘둥그레진 그의 눈은, 그러나 이외로 맑고 투명하다.
나는 항상 이 순간 고민에 빠진다. 나는 그들의 이 귀족적 자태를 대할 때마다, 이 녀석들은 분명 숭고한 영혼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측선이 햇빛에 선명하다. 그의 균형선이다. 균형이 무너진 줄 고기는 아직 모르리라. 그러나 망서려서는 안 된다. 이 순간 보석처럼 빛나는 이 아름다운 생명을 두고 더 이상 망서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바늘을 빼고, 고기를 부표가 달린 살림망에 넣어 다시 바다로 던진다. 순간 고기의 환희를 보는듯하다. 그러나 난생 처음 경험한 생경한 세계로부터 미쳐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둘러친 그물의 부자유를 보리라. 고기는 온 힘을 다해 저항 할 것이다. 그리곤 절망을 하리라. 그의 지능은 남다르니까.
그러한 후 새삼스레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는다.
담배를 꺼내 문다. 잠시 망연해지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실구름 한줄기가 길게 풀려 있다. 왜 나는 다시 담배를 피웠을까? 담배를 끊을 때의 그 당혹스럽던 기억들이 생각난다.
개인적 차가 많다지만 그 금단현상은 대단했다. 정신이 반쯤 나갔던 기억도 난다. 의식은 제어할 수 없는 기계처럼 가끔씩 제 멋대로가 되고, 괜스레 격해진 감정이 아이들 앞에서도 눈물을 찔끔거리게 하고, 그러한 내가 나도 이상해, 이상히 나를 들여다보곤 하던 기억도 난다. 어쨌든 그 열병 같던 일주일이 지난 후, 입맛마저 완전히 변하여서야 난 담배를 끊을 수가 있었었다.
바다는 점차 숨이 차올라 헐떡이듯 요란하다.
'지금이 적기야. 저 녀석은 예신에 불과 할지도 몰라. ‘
머리가 분석하고 행동을 명한다. 그러나 난 그럴 생각이 없는 듯 미온적이다.
'생활이 그러하듯 승부는 그런 게 아니야. ‘
머리가 채근을 한다.
'해답은 알고 있다.'
'기회를 놓치지 마라.'
그러나 마음은 딴청을 부리고 있다. 그리고 변명 같은 말도 부침한다.
'그로서 됐어. 순간의 미묘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았던 선명했던 그 조우. 한순간 폭발하듯 넘치던 긴장. 온몸으로 퍼지던 그 힘의 전율과 군더더기 없이 깨끗했던 승부. 그리고 덤으로 멋진 그의 자태까지 보았으니…….'
일테면 바다는 배신을 하지 않았고 고기도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고 마음이 투덜거린다. 일 깨우쳐진 머리는 전략가처럼 가만히 있다. 그 고기의 자태는 아니 매 순간순간은 눈에 잡힐 듯 선하다.
그러고, 나는 좀더 많이 사위를 둘러보고, 바람소리가 어떤지 잠시 정색해 들어보고, 바다에도 좀더 가까이 다가가보고, 두 다리를 쭉 펴고 편하게 앉았다가 눕다가, 다시 등이 쭈뼛쭈뼛한 낚시용 칼로 담치류나 고동 등을 따다가 파도를 뒤집어쓰고 괜히 왔다 갔다 하다가 낚시는 장난하듯 했다.
그 사이 한껏 부푼 바다를 따라 들어온 잡어들, 일테면 고등어, 전갱이, 학꽁치, 어린농어 등 중층수 이상을 무리지어 선유하는 고기들을 장난치듯 유희하며 몇 마리 잡아놓고, 그도 귀찮아 바위틈에서 주운 큼지막한 고동종류를 통째 끼워놓고 점심을 펴다. 바다는 이제 한결 조용하다. 만조가 된 것이다.
접이식 두레박으로 바닷물을 길어 학꽁치 몇 마리와 새끼농어를 씻어 뼈 체 썰어 놓다. 내 낚시용 칼은 튼튼하다. 알맞은 두께로 섬뜩하니 날카롭다. 고등어는 왕소금을 뿌려 은박지에 싸서 굽고 도시락을 펼치다. 하얀 압축 스티로폼 곽의 노란 고무 밴드묶음을 풀자 두 개가 나란히 자동으로 펼쳐진다. 두 시간 거리의 문명이 문득 이질스럽다. 고명으로 뿌린 참깨에 양념무친 뱅어포, 비닐에 싸인 김과 김치 한 봉지, 우스꽝스레 큰 풋고추 하나……. 신 새벽 해장국 먹던 그 야식 집의 작품이다. 아니, 여기서도 그 흔한 인스턴트 문명인가 보다. 모두들 바쁠 테니. 내가 준비한 원시 야만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예전에 소박하던, 그러나 푸근하던 점심보퉁이 생각이 난다. 어쨌건 성찬이다. 천천히 점심을 들다. P1-1/1-3/1-7/1-8
이 계절 이 정도쯤 바다에서 잡히는 고기의 맛은 거의 아는듯하다.
'먹어둬야 할 것이야'.
머리의 참견에 마음이 대꾸가 없다. 시장기와 함께 식욕이 먼저 동한 것이다. 놀래미의 연하고 달짝지근한 맛. 어린농어의 사근거리는 육질과 제법 억센 뼈의 고소한 맛. 지방질이 많은 학꽁치의 약간 무르고 구수한 맛. 용치 놀래기의 그 고무 씹는 듯한 질긴 맛___.
사실 난 바다에서 갓 잡은 물고기 생식을 맛있게 먹는 나름의 비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준비한 후 한30분쯤 지났을 때다. 바람과 햇볕에 표면의 물기가 마르고, 좀 꼬드레하다는 느낌이 들 때이다. 그때쯤이면 어떠한 물고기도 다 맛이 난다. 그러나 난 오늘 양념을 넣고 통째 비벼 밥처럼 한입가득 우물거리며 씹어 먹고 있다. 식사인 것이다. 야전에서 양념이야 다 그렇고 그런 거니 그 양이 절대적으로 맛을 좌우한다.
바다는 이제 완전히 풀린 듯하다. 바람은 아직 힘이 있었지만 한 결로 길들여져 많이 부드러워지고, 햇볕은 약간의 더위를 느낄 만큼 따사롭다. 둥글게 부풀고 느려진 바다가 마음껏 그의 가슴을 열어 하늘과 맞닿아 정상회담이라도 하는 듯 여유롭다. 햇살이 눈부시다. 원숙해진 바다는 깊숙이 그 빛을 빨아들인다. 모든 것이 정점을 향해 힘껏 달려와서는 지금 막 이 모든 걸 풀어놓은 듯, 충만한 기운이 공간에 가득하다. 시간이
정지한 것일까?
**
시기적으론 아직 이르지만 추석에 심심하실 분들께 심심풀이 땅콩으로 예전에
(보자, F 이후 한참 일이 없을 때이니 한 5,6년? 6,7년 되었나?)
쓴 글 하나 올립니다.
지금보다 한참 젊을 때? 이므로 그 치기만만함에도 이해있길 바라지만, ^^
연휴 편안하시길 바라며, 혹시 혼자이시더라도 너무 외롭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나없이 혼자. 결국은 그런데. 때 되면 다 그럴 진데,
이미 알고 있는 일.
그러니 지금은 나서 즐거울 일만 남았을 뿐.
(좀 깁니다. 그래서 한번에 다 읽기 시간이 그러실테니
끊어 읽기 편하시도록 주제나 상황에 잘 맞지 않더라도 사진이나 번호를
넣었습니다. 쓴 사람으로서의 바람은 다 무시하고 그저 글만이라도 읽어주신다면~~^^)
저는 고향을 가야하는 관계로 3일 쉽니다.
모든 님들 즐.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