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내 나이 스무살 때
나 또한 어린왕자를 읽었지
누구나처럼 바지 뒷주머니에
책을 꼽고
다 아는 척
재미있어 죽겠다는 척
역시 명작이야, 아주 감동의 표정이었지만
그 책은 재미가 없었네
알 수가 없었네
이솝 같지도, 탈무드도
아라비안나이트도 아니었어
그래 약간 초조해진 나는
다시 한 번 읽었지만 그것은 사막
어디서나 흔한 금싸라기 몇 알뿐
말들은 감동이 없었네
그 후 서른 즈음에서도 마찬가지였었지
그러다 우연히 지금 다시 그 책을 읽으며
이제서야 그 사막의 윤곽이 보이네
비로소 모래색은 따뜻한 벌꿀 색
어렴풋, 그 속의 스민 야생 사막꽃 향기
길들인다는 건 시시한 일이고
하찮게, 소홀히 여기는 인간된 일의 시작이라 슬프기도 하지만
그것 아니면 버틸 재간 없는 이 지구별에서의 나머지 삶
어린왕자처럼 내게도
그것은 단 한 송이 장미꽃 때문이라
지금 말할 수 있으면 좋겠네